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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의 권위와 매력이 약해진 원인 [이신부의 세·빛] 다윗과 요나탄, 예수와 바오로 2022-01-20
이기우 edit@catholicpress.kr



연중 제2주간 목요일(2022.1.20.) : 1사무 18,6-19,7; 마르 3,7-12

 

이스라엘의 마지막 판관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사무엘은 사울에게 임금이 될 수 있는 하느님의 축복을 전해주면서부터 본의 아니게 예언자 역할까지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이 예언자로서 사울에게서 하느님의 축복을 거두고 대신 다윗에게 전하는 순간부터 사울과 다윗의 사이는 악화되었고, 사무엘은 물론 다윗까지도 목숨의 위협을 느낄 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살벌한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 놓은 인물이 사울의 아들 요나탄이었습니다. 그는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수도 있었던 왕자였는데도, 다윗을 끔찍이 아꼈습니다. 어쩌면 사무엘의 예언을 듣고 하느님께서 다윗을 보살피고 계심을 눈치챘는지도 모릅니다만, 정치적 경쟁관계로 놓인 까닭에 정적일 수도 있었던 다윗을 아껴준 요나탄의 우정은 성서 전체를 통털어 가장 아름다운 관계였습니다. 그리하여 요나탄의 적극적인 보호로 다윗은 사울의 위협에서 살아남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둘의 우정을 야곱 시절에 있었던 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벤야민과는 같은 어머니를 둔 형제인 요셉이 이복 형들의 질투를 받아 이집트로 팔려가게 되었을 때 구덩이에 던져 넣어 굶겨 죽이려던 형제들을 설득하여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기자고 제안하여 요셉의 목숨을 살려준 사람이 다름 아닌 유다였습니다(창세 37,26). 


자기 지파 조상들끼리 거의 5백 년 전에 주고받은 이 옛날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던 벤야민 지파 출신 요나탄이 유다 지파 출신 다윗에게 아름다운 우정으로 되갚은 것이라는 해석인 것이지요.


그런데 유다 지파와 벤야민 지파 간에 5백 년 만에 은혜를 갚았다는 이 우정의 관계는 다시 천 년 후에 유다 지파 출신의 예수님의 노선을 벤야민 지파 출신의 사울 즉 바오로가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계승하는 역사적 우정의 관계로 재현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전해주는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땅 안에서 유다와 갈릴래아 같은 이스라엘 전국은 물론이고, 요르단 건너편의 이두매아 지방과 갈릴래아 북쪽의 티로와 시돈 같은 해안 지방에서까지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와서 치유와 구마 기적으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몰려온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신 데 비해 바오로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공동체를 거점으로 해서 소아시아와 그리스 등 로마 제국의 영토 전체를 무대로 삼아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공동체들을 건설함으로써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치유와 구마 기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신 데 비해 바오로는 노동하는 생활의 모범과 공동체를 세워주는 생활의 모범으로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신앙의 가르침은 공통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쳤고,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둘 다 하느님 나라라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진리라는 점에서는 공통이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활동 사항을 중계방송 하듯이 선교하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실천했고 사람들에게 복음적 체험을 제공함으로써 체험 안에서 진리를 믿게끔 안내했습니다. 


바오로는 자기 발로 직접 찾아갔고, 직접 천막 만드는 노동을 하며 감화를 주고자 했으며, 편하게 세례를 주는 대신에 어렵사리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생활을 하도록 직접 모범을 보였고, 한 번 인연을 맺은 공동체에 대해서는 떠난 후에도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냄으로써 지속적으로 유대를 맺었습니다. 


치유와 구마 행위는 우리의 힘이나 능력만으로 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아프거나 마귀 들린 이들이 교회에 신뢰를 두게 하기 위해서는 사도 바오로가 보여준 바와 같은 직접적 행동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복음선포에 권위와 매력이 약해지게 된 배경에는 위에 언급된 바, 예수님의 복음선포 활동이나 바오로의 직접 체험 활동이 없이, 이 활동들에 대한 중계방송식 보고만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유도 일어나지 않고 구마도 없습니다. 직접 찾아가는 일도 없고 오히려 찾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노동하기보다는 노동하여 신자들이 번 돈 중에서 일부를 봉헌 받고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지도 않으니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생활의 모범도 보이지 못하고 말로만 도덕적 훈계를 할 뿐입니다. 게다가 지속적인 신앙의 유대는커녕 떠나면 그뿐이어서 세례나 교적에 대한 부담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오늘 미사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매력이 사라지고 권위가 약해진 원인으로 나타납니다. 다윗과 요나탄 사이의 그 아름다운 우정을 선망하면서, 또한 그 만큼이나 아름다운 예수님과 바오로 사이에 계승된 역사적 우정 즉, 복음선포의 진정성과 영적인 매력도 다시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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