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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실패도 신앙 농사를 비옥하게 하는 거름 [이신부의 세·빛] 믿음과 실천으로 얻는 목숨 이기우 2022-02-18 0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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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간 금요일(2022.2.18.) : 야고 2,14-26; 마르 8,34-9,1


믿음과 실천으로 얻는 새 목숨이 부활 신앙의 은총이라는 메시지가 오늘 말씀의 맥락입니다.


평소에는 군중에 둘러싸여 많은 도움을 주시느라 사제 간 대화를 나누기 어렵던 차에, 모처럼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시는 스승의 질문에 제자들은 즉시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과 느낌을 정리하느라 우물쭈물 하는 사이에 베드로가 먼저 용기를 내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 장한 신앙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칭찬하시거나 고마워하시기는커녕 뜻밖에도 엄중한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군중 속에서나 이방인들 가운데서 작은 믿음의 고백이라도 들으셨을 때 크게 기뻐하시던 평소의 태도와는 다른 결정이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5)고 십자가의 의미와 중요성에 관해 강조하심으로써 구도의 죽비를 내리치셨습니다. 그는 사도가 되도록 불리운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제자는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스승을 따라 오는 것으로 족하지만, 사도는 스승의 십자가를 본받아 또 다른 스승으로서 리더십을 보여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십자가는 오늘 독서에서 사도 야고보가 강조하는 바, 믿음과 실천이 한데 만나야 가능한 부활의 조건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십자가를 짊어질 리가 없고, 실천하는 않고 머릿속이나 입으로만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믿음이 생겨날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짊어지는 십자가는 정직하게 우리네 영혼을 착실하게 성장시키고 성숙시킵니다. 


그런데 실천한다는 것은 넘어짐을 수반하기 마련입니다. 판단 착오, 시행착오, 오해받음과 몰이해에다가 미숙함도 건너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속성이 그러하고 사람의 한계가 또 그러합니다. 걸음마의 완성은 잘 걷는 게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 번의 넘어짐 끝에 또 다시 시도한 일어남으로 인간이 비로소 성취를 해 냅니다. 


성취를 위해 필요했던 백 번의 넘어짐은 허사가 아닙니다. 무릇 모든 사람에게 십자가는 이 넘어짐의 교훈을 줍니다. 그 넘어짐 속에는 갈등도 있고, 번뇌도 숨어 있으며, 시행착오와 실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모든 실패의 넘어짐이 우리를 착실하게 성장시키고 성숙시킵니다. 믿음의 키를 성장시키고 영성의 깊이를 숙성시킵니다. 이를 합해서 내공(內功)이라 합니다. 


이 내공은 정신의 의식이 성장하고 영혼의 영성이 성숙하는 데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하며 다른 사람들과 맺는 인간관계에서도 얻어지고 또 발휘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또는 기도하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는 가운데 성령께서는 일과 인간관계에서 모두,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성찰하고 통회하는 작은 연옥 체험을 주십니다. 이미 마음속에서 작은 심판을 받으며 우리가 정화되고 또 성화되는 은총을 받습니다. 실천이 가져다주는 영적 유익이 이것입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이 위대한 고백을 예수님께 바치고 나서 결정적인 순간에 넘어졌었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힘드셨던 순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심장이 요동치고 허파가 짓눌리는 순간이 아니라, 가장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셨던 그 순간이었을 지도 모릅니다. 가장 먼저 신앙을 고백하며 충성을 다짐했던 수제자가 스승을 제일 먼저 배신하였습니다. 어쩌면 용감했던 신앙 고백보다도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하던 비겁한 체험이 더 베드로의 신앙을 키워준 십자가였을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에 갈릴래아로 그를 찾아가서 다시 한 번 신앙 고백을 다짐받으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완성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넘어짐도 체험하고, 부활하신 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러 오신 발현까지 체험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신앙 고백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늘 넘어지기 일쑤인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생각합니다. 우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갈등에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번뇌를 뿌리칠 필요도 없습니다. 시행착오도, 실패도 다 우리의 신앙 농사를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거름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다시 얻는 새 목숨으로 부활을 약속하는 희망의 종교이면서도 또한 십자가의 지렛대로 헌 목숨을 버리게 함으로써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현실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세상에 나가 실천을 하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일꾼으로 삼으시기에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야고보의 권고를 들려 드립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마르 8,36)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4)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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