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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짖는다고 모두 돌아보면, 해 지기 전에 산을 넘지 못한다 (지성용) 초월은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가는 길 2022-05-23
지성용 edit@catholicpress.kr


▲ 틱낫한 스님 (사진출처=Plum Village)


틱낫한의 입적과 전국승려대회 


지난 1월 무소유로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한 생을 살아갔던 한 승려, 수도자의 죽음이 온 세계 뉴스로 전파되었다. 1926년 베트남에서 태어나 23세에 승려가 된 틱낫한은 시인이자 교사, 평화 운동가였다. 1963년 반전 운동에 참여했다가 남베트남 정부에 의해 추방당했으며, 이후 주로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불교 원리를 정치·사회 개혁에 적용하는 참여 불교 운동을 전개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던 수도자였다.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틱낫한은 이후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여생을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2018년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그는 사후에 시신을 화장해서 전 세계에 있는 플럼 빌리지 명상 산책로에 뿌려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생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틱낫한은 국내에도 <화>, <틱낫한 명상>,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 등 다수의 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같은 날 대한민국의 승려 5천여 명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모여들었다. 전국승려대회였다. 종교편향 정책에 대한 항의집회였다. 그 편향이라고 말하는 내용인즉 대통령이 천주교 신자라고 바티칸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등의 종교 행위가 문제라는 것이고, 여당 국회의원이 사찰에 들어가는 입장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적절치 않은 ‘봉이 김선달’ 발언을 문제 삼아 발기(勃起)한 것이다. 그리고 조계종 스님 말씀이 기사화됐다. “종단에서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강도 높게 따르게 해서 경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코로나19를 이유로 2020년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한 달 미뤘고 연등회는 취소했다” 경제적 피해가 많았다는 이야기였다. 


대통령이 바티칸에 가서 미사 한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바티칸은 엄연한 하나의 국가다. 가톨릭국가에 가서 그 예절에 따라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외교 행위다. 그리고 경주불국사에 들어갈 때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명동성당 들어간다고 돈을 받지는 않는다. 사찰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재정은 국가에서 여러 가지 명목으로 보조하고 있다. 그동안 불교는 이병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템플스테이를 포함해서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아왔다. 그런데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를 빌미 삼아 종교 편향 운운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방역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생명이 소중한가? 경제적 피해가 문제인가? 소상공인의 울부짖음이야 이해한다. 하지만 종교가 ‘경제적 피해’를 운운한다면 더 어려운 대중들의 고통과 생명은 돌보지 않는다는 것인지 의문이다. 결국, 이런 요설들은 방역 때문에 연등회 수입도 못 잡고, 법요식도 못해 수입이 줄었다는, 곧 ‘장사(?)를 못했다’라는 말밖에는 되질 않는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더 많다. 


최근 종교의 정치개입 문제가 심각하다. 일광 조계종이라는 종파 소속 무정법사. 유정법사. 건진법사 등등 특정 후보의 선거운동에 개입한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개신교 목사들의 노골적인 정치개입을 바라보며 한숨만 나온다. 종교가 무엇인지, 무엇이 종교를 가능하게 하는지 자성하고 돌아보아야 한다. 스님들은 부처 출가의 근본정신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교회도 마찬가지다. 십자가 없는 복음, 희생 없는 종교는 위선이고 해악일 뿐이다. 절에서는 부처가 출가하고, 교회에서는 예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천주교는 교회 내 일치뿐만 아니라 종교 간 평화로운 공존도 모색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 종교의 부끄러움 모르는 질주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는 세상을 바르게 바라보고 살아가는 안목과 지혜를 주어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눈먼 이들의 도시와도 같다. 안 보이는 것인지 안 보려는 것인지 너무나 명백한 현실과 진리를 바라보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 


결국, 그 뒤에는 검은 속내가 숨겨져 있다. 종교가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잃어버리게 된 데는 우리 종교인들의 책임이 무겁다. 우리들의 무서운 침묵과 방관, 왜곡된 지향, 분별없는 행동은 깨어있는 시민들에게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만들었고 결국, 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서서히 퇴출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종교가 세속을 떠났다가 다시 속세로 돌아온 것은 깨달음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본을 보이기 위함인데 이제는 차라리 속을 다시 떠나야 하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어디가 성(聖)이고 어디가 속(俗)이랴! 성속일여(聖俗一如)라 했지만 너무나 분명한 세속의 이익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은 이제 멈추어 서서 돌아보아야 한다. 떠나야 산다. 종교는, 그리고 종교인들은.


일그러진 공정과 정의, 촛불개혁은 진행형인가?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서로 쓴다. 윤석렬 검찰총장 재직 시 특수활동비가 147억이었다. 사용 내역은 불분명했다. 그의 아내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가담한 정황이 드러났는데 실현된 이익이 35억으로 추정된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구속되었는데 그녀는 조사도 안 하고 무사하다. 그의 장모는 사위가 행정원장인 병원의 운영으로 건강보험료 22억을 가로 챙긴 것으로 재판을 받았으나 무죄다. 그러나 언론은 조용하다. 그런데 대선당시 이재명 후보의 부인이 고깃값 11만 8천 원을 법인카드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언론이 2주 내내 떠들어댄다. 


우리는 불을 켰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며 불을 켰다. 2016년-17년 그렇게 촛불은 광화문 광장에 타올랐다. 박근혜를 파면하고 우리는 끝난 줄 알았다. 알아서 하겠지. 그러나 사실 그때부터 우리는 시작했어야 했다. 85%의 국민적 지지를 가졌던 그때 했어야 했다. 모두가 지치기도 했지만, 민(民)이 주도하는 개혁정책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진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민은 또 배제되고 당(黨)이 모든 열매들을 독식하고 주도했다. 촛불집회가 시작되는 초반에는 보이지도 않던 당(黨)들이 국민들이 나서니 뒤늦게 따라 나와 정치적인 열매들은 모두 다 따먹고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리스도교 안에서 개혁이란 말은 ‘회개’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다. 길을 바꾸는 것이다. 돌아서는 것이다.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려야 했다. 그러나 민(民)이 개입할 여지나 공간은 생소했고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민이 들어갈 자리를 요구하고 개입하며 견제하고 일상의 모든 공간으로 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논쟁과 다툼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싸움은 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역사 안에서 큰 변화는 언제나 청년 학생들과 의인들의 ‘나’만이 아닌 우리를 위한 희생에서 가능했는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나를 위해 싸우고 있었다. 


나를 위한다는 것은 결국 너를 위한 것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희망해야 한다. 언제나 어디서나 끝까지 희망하며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 안에는 완성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있다. 그것은 이미 우리 안에 내재된 초월을 향한 열망들이다. 희망을 고문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꾸는 꿈은 망상일지 모르나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억한다. 깨어있는 시민의 힘. 조직된 시민의 힘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다. 시민들은 연대해야 한다. 공동체의 역사와 가치를 지키고 나의 존엄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 연대하고 조직해야 한다. 신영복 선생님은 늘 하방연대를 말씀하셨다. 우리는 끊임없는 네트워크와 연결망을 촘촘히 더욱 촘촘히 얽어야 한다. 


깨어있는 시민을 위한 교육이 시작되어야 한다.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시작해야 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시작해야 한다. 우리들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일들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2년은 하늘이 준 기회다. 우리들이 꿈꾸던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어나갈 시기다. 실기(失期), 기회를 놓치면 많이 어려워질 것이다. 힘내야 한다. 


너무 흔들리지 말고, 가야할 길을 가자


복잡한 봄의 생각을 뒤로하고 영화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노마드랜드>.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유랑생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다음 다시 시작하는 삶, 스스로 무너뜨릴 수 없었기에 무너지고 나서야 떠나는 삶은 그들에게 자유였다. 물질적인 풍요와 안전, 소속에 대한 요구들이 우리를 도시와 지붕 아래 묶어 두었지만, 그들은 아름다운 산과 바다, 계곡과 흐르는 물을 마주하며 인간으로서의 가장 풍요로운 삶을 살아간다. 영화 내내 보이는 끝없는 길과 높은 산, 흐르는 물은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했다. 


부동산 공화국인 대한민국이 바라보기에는 너무나도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었고 언뜻 우리 사회의 부동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돌아보고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너진다는 것, 막다른 길에 닿는다는 것, 쓰러지고 부서지고 넘어진다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말할 뿐이다. 길 위에서의 새로운 만남과 동행 그리고 이별,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우리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 영화 <노마드랜드> 스틸컷


이야기는 논픽션이었고, 배우는 펀으로 등장하는 배우 프란시스 맥도맨드 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현실에서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 결여되어도 너무나도 진실인 이야기들이었다. 복잡한 시대상황 가운데서도 멈추어 서서 우리가 가는 길을 돌아보고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돌아볼 때다. 정치과몰입이 때로는 근본을 잃어버리게도 한다. 


역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내 자리에서 가장 필요한 진보를 이루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영성이란 무엇인가? 세상 모든 만물, 피조물들의 연결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다. 그것들의 얽힘과 설킴을 풀어내 수 있는 능력이며, 사실들의 종합을 통해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다. 초월한다는 것은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꿰뚫어 보는 것이며 가장 핵심으로 가장 본질로, 가장 중심으로 들어가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radical) 해법을 일상 안에서 실천하는 삶이리라! 


토론도 비판도 사변도 많지만 정작 실천하지 않는 모든 말들은 힘을 잃어버리는 공언(空言)이 될 뿐이다. 크고 작은 부대낌에 너무 흔들리지 말고, 우리들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가자!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고, 개가 짖는다고 모두 뒤돌아보면 해가 지기 전에 산을 넘어가지 못하리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공동선> 2022년 3-4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필진정보]
지성용 신부 : 인천교구 송림동성당 주임신부, 인하대학교 인문융합치료 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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