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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쿄 교황, 로마 교구 본당 찾아 고해성사 집전 “주일마다 미사 참례한다고 정의로운 사람 아냐” 끌로셰 2023-03-21 14: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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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코로나19 이후로 처음으로 지난 17일 로마 교구 본당을 찾아 고해성사를 집전했다. 이날 고해성사에 앞서 행한 강론에서 교황은 “본당에 나가고, 주일마다 미사를 간다는 이유로 자신을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느끼는 이들”이 “진정으로 주님과 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독백을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교황은 “자기 자신으로 가득차고, 자신의 종교적 ‘가치관’으로 가득 찬 사람은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이며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우긴다”며 “이런 일이 본당에서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가. ‘내가 사제를 돕고, 내가 헌금을 내고, 내가, 내가, 내가...’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이런 사람들은 체면을 살린 것에 만족한다. 기분이야 좋겠지만 이런 사람은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기에 하느님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소위 ‘제대로 된 신자’, 그러니까 본당에 나가고, 주일마다 미사에 간다는 이유로 자신이 정의롭다고 느끼는 이들은 자신이 정의롭다고 뽐낸다. ‘나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자아’로 하느님의 자리를 채운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기도를 암송하고, 성스러운 행위를 다한다고 한들, 진정으로 주님과 대화하고 있지 않다. 이런 사람은 독백을 하는 것이지, 대화나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도를 위해 성전을 찾은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9-14)를 들어 ‘준법’, ‘정통’을 주장하며 남들을 업신여기거나,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행태를 경계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있었다’는 태도를 두고 교황은 “그는 하느님께 기도했으나, 실제로는 자기 자신을 드높였다. 그는 사원에 드나들고, 규범을 준수하고, 자선도 했다. 형식적으로 그의 기도는 흠잡을 곳이 없고, 외적으로도 그는 아주 신실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위선으로 자기 유약함을 가렸다. 이렇게 우리는 삶을 꾸밀 때가 많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결국 “바리사이는 은총으로서 하느님의 구원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에 대한 보상으로서 이를 요구한 것에 가깝다”며 “‘나는 내 의무를 다했으니, 보상을 주시오’라고 한 것이다. 바리사이는 하느님의 제단에 고개를 곧게 들고 첫째 줄에 있는 자기 자리를 차지하고자 주저 없이 나아갔지만, 결국에는 너무 나아가는 바람에 하느님 코앞에 서게 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교황은 바리사이와 반대로 세리는 “멀찍이 서있었다”고 덧붙였다. “세리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뒤에 머물렀다. 하지만 바로 이 거리가 죄인으로서의 세리의 존재를 드러내며, 이를 통해 세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강복과 자비로운 포옹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하느님께서는 세리가 멀찍이 서 있으면서 하느님에게 자리를 내어주었기에 세리를 찾아올 수 있었다”며 “이것은 우리 가정, 사회, 교회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니던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 공간을 마련해둘 때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 공간은 각자가 숨 쉴 수 있는 건전한 공간을 말한다. 이 대화, 이 만남은 거리를 좁히고, 가까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는 세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전의 구석에 서 있으면서 그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죄인으로서의 모습을 받아들인 것이다. 거리를 둠으로써 세리는 하느님이 자신에게 다가오실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나는 자만심이 가득한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낫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가?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구해주셨고, 저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저 사람들과 같지 않음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교회에 나가고, 미사에 나갑니다. 저는 결혼했고, 교회와 결혼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이혼한 사람들이니 죄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이러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지옥에 갈 것이다.”


교황은 “하느님께 다가가려면, 주님께 ‘저는 죄인 중에 첫째입니다. 제가 더 큰 더러움에 빠지지 않은 것은 당신의 자비가 제 손을 잡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으로 인해 저는 살아있으며, 당신으로 인해 부서지지 않았나이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의 유약함을 드러낼 때 하느님은 우리와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바닥을 칠 때’ 그리고 진심으로 그분께 우리를 맡길 때 우리에게 손을 뻗으시어 우리를 일으키실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바닥에서’ 우리를 기다리신다. 예수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바닥에 가닿고자’ 하셨으며, 우리의 심연까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우리 육신의 상처를 만지고 우리의 가난함, 인생의 실패와 유약함과 태만으로 인해 저지르는 실수를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바닥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고해성사를 청하는 신자들을 향해 “바리사이와 세리는 둘 다 우리 안에 살아가고 있는 만큼 자기 양심을 돌아보도록 하자”고 말했다. 


“외관의 위선 뒤에 숨지 말고, 자신 있게 우리의 어둠과 실수를 주님의 자비에 맡기자. 우리 실수와 비천함, 심지어는 우리가 부끄러워서 공유할 수 없는 것들까지도 떠올려보자. 하느님과 함께한다면 이를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 우리가 고해할 때 우리는 세리처럼 바닥에 가 닿는 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도 주님께서 꿈꾸신 우리의 인생과 우리가 실제로 매일 살아가는 삶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게 된다. 바로 그때 주님께서 다가오는 것이며, 그분께서는 거리를 좁히고 우리를 일으키신다.”


그리고 교황은 “우리가 헐벗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축제의 의복을 입혀주신다. 이것이 바로 고해성사이며, 고해성사란 이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해성사란 축제와 같은 만남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고해성사란 두려워해야 할 인간 세계의 법정이 아니라, 위로받고 나오는 하느님의 포옹”이라고 비유했다.


교황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들며(루카 15,20-22) 고해사제들에게 “부디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항상 용서하라”며 “사람들이 자기 말을 하게 하고, 당신들은 예수와 같이, 여러분의 시선으로 이를 어루만지며, 여러분이 이해심을 드러내는 침묵으로 이를 받아들여라. 고해성사란 고문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주려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시듯이,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모든 것을 용서하라”고 당부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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