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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불 신학자 김경곤 인터뷰 : 가톨릭교회, 성 윤리 전담기관? - 인터뷰 10회 재불 신학자 김경곤
  • 김근수 편집장
  • capress@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5-08-26 16:58:06
  • 수정 2015-11-05 17: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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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수 편집장) 가톨릭프레스 독자들에게 선생님 소개 인사 한 말씀 해 주세요.


▶ (신학자 김경곤) 저는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역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에 살고 있습니다. 프랑스 제7대 도시이자 유럽의회가 자리하고 있고, 김근수 편집장 역시 독일 유학시절에 다녀갔던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가 작년에 ‘꽃보다 할배’ 출연·제작진이 다녀갔다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인해 갑작스레 유명세를 타게 된 그 도시입니다. 저는 지난 1991년 독일 유학을 시작한 이후로 유럽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독일에선 철학, 가톨릭 신학, 종교학을, 프랑스에선 중의학과 사학을 공부했습니다. 15년 전부터 고등학교에서 종교 문화 교사직을 역임하고 있으며 최근엔 대학교에서 불교사, 동양종교사, 종교사학 기초개념 등의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 최근에 책 두 권을 번역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 내용을 간단히 소개 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번역소개 한 『세계 종교 올림픽 (원제 : 임금과 현자와 익살꾼 광대 - 종교 대회, 1998년 작)』과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 (2014년 작)』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공주와 예언자 - 소설로 풀어본 세계화 (2004년 작)』라는 작품과 함께 인도계 스위스인인 샤픽크 케샤브지 Shafique Keshavjee의 ‘삼부작 소설’로 불립니다. 저자 샤픽크 케샤브지는 참으로 독특한 경험과 경력을 지닌 분입니다. 1955년 케냐에서 인도인 부모 슬하에 태어나 영국에서 몇 년간 살았고 아홉 살 무렵에 스위스로 이주하게 되어 지금껏 살고 있습니다. 사회·정치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종교학자 엘리아데 Mircea Eliade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개신교 목사직을 수행하면서도 종교 간의 대화에 깊은 관심을 두었고, 또 스위스 제네바 대학교 신학과에서 종교신학 교수직을 역임한 분입니다. 현재는 모든 직책을 놓아두고서 집필과 강연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www.skblog.ch 참조) 종교 간의 대화에 대한 저자의 관심과 참여의 결과물이 바로 『세계 종교 올림픽』과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먼저,『세계 종교 올림픽』은 세계 5대 종교와 무신론의 핵심 내용을 간결하게 소개하면서 이 종교·사상들이 서로 대화하게 될 때 제기되는 문제점들을 총괄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 내용을 추리소설이란 기발한 형식을 빌려 흥미진진하게 풀어갑니다. 여기에 저자 특유의 유머와 재치가 가미되어 금상첨화를 이루며 그야말로 선례가 없는, 재미있으면서 진지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그래서 종교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 불어권 지역에서 20만부가 넘게 팔린 화제작이 되었고 또 20여개 국어로 번역소개 되기도 했습니다.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는 그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는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었는데 그중 시몽이라고 하는 아들을 사별하게 됩니다. 백혈병에 걸렸던 셋째 아들 시몽이 2005년에 만 13세라는 어린 나이로 부모 곁을 떠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경험이후 저자는 ‘죽음’을 주제로 한 저술을 구상한 듯하며, 약 10여 년 간의 숙고와 성찰을 통해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를 빚어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무신론자인 생물학 교수와 요가 지도자인 인도 여성 철학자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 여성 신학자가 등장하여 바로 존재의 의미와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 각자 자신의 입장을 ‘진정한 진리’, ‘진리들 중의 진리’라고 여기며 그 사실을 증명하려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지만 역시 저자 특유의 재담과 필치로 또 한 편의 흥미 있는 추리소설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두 서적은 종교인, 비종교인 심지어 반종교인 역시 모두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자신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타자의 입장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래서 적어도 자기 입장만이 논리적이고 옳다는 식의 독선에서 벗어나라고 촉구하는 서적이기 때문입니다.


- 유럽에서 불교가 매력 있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유럽인들은 이미 기원전부터 불교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불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의 일입니다. 그 이전에 불교는 사실 종교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먼저 학자들이 불교를 연구대상으로 삼았고, 19세기 말, 20세기 초부터 소수 유럽인들이 불가의 수행·실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불교의 유럽 유입이 외국불자들, 즉 포교승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유럽 지식인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한국에 천주교가 외국 선교사가 아닌 조선 지식인들에 의해 도입되었던 것과 유사한 점입니다.


이미 19세기 중엽에 오귀스트 꽁트 같은 지식인은 불교를 유치한 그리스도교와는 다른 합리적인 종교라고 보았고 쇼펜하우어는 불교를 최상의 종교라고까지 말합니다. 하지만 불교는 일부 지식인들에게만 알려져 오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특히 1960년대 이후로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영국에서는 식민지 개척의 역사로 인해 남방불교, 즉 스리랑카 상좌부 전통 역시 도입되지만, 일반적으로 유럽에 널리 알려진 불교는 북방불교인 일본 선불교와 티벳 불교입니다.


물론 동남아 상좌부 전통 역시 전쟁 난민들, 정치 망명객들과 함께 유럽에 유입되지만, 그들은 유럽인들을 대상으로 대외적 포교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신도 공동체 내부에서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반면 일본 선불교는 몇몇 일본 선승들의 포교활동에 힘입어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고, 티벳불교는 망명객들과 함께 자연스레 유럽에 유입되어 활발한 교류 및 포교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선불교 종파들 중에서도 특히 도겐 선사를 창시자로 하고 좌선을 중요시하는 조동종(소토슈)이 유럽 선불교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티벳이 유럽인들에 의해 식민지화 된 적이 없고 또 유럽인들이 중국의 식민정책에 반대하기 때문에 티벳인들은 유럽사회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따라서, 양자 간의 교류는 상대적으로 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 그런데 무슨 이유로 인해 불교는 유럽인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고 있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특히 인간의 주체적 위상, 명상 수행 및 체험의 중요성, 영적 지도자와의 긴밀한 관계를 통한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수행 지도, 불교 교리의 합리성, 생명존중과 비폭력성, 개인의 자유와 근기에 대한 배려와 존중, 관용성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교 내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이런 면들을 불교에서 발견하고서 불교로 개종을 하거나 불교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유럽인들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편으론 일본 조동종에서 제시하는 명상·좌선 수행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론 예식과 명상수행과 교리를 병합하고 있고 또 현 14대 달라이 라마의 인간미와 평화주의를 통해 투과되고 있는 티벳불교가 유럽인들을 매료시키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불교는 평화적·관용적·비독선적인 종교라고 여기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흥미로운 현상이지요. 마치 유럽에서, 특히 프랑스 사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가톨릭교회를 한국인들이 긍정적으로 보는 것과 유사한 현상입니다.


- 그렇다면 유럽에서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어떠한가요?


아주 방대한 질문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논문이나 저서를 집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범주를 어떻게 정해야 할 것인지도 문제이며, 또 유럽 각국마다 종교에 대한 관심도가 동일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몇몇 서유럽 국가에서 종교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간략하게 소개한 후 몇 가지 주요 경향에 대해 제 개인적 관점을 피력하겠습니다. 초·중·고등 교육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종교 교육 양상은 현재 유럽인들의 종교에 대한 관심의 절대적 척도가 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아주 중요한 단면을 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그것은 종교 교육이 종교와 국가 간의 역사적 관계에 근거하고 있으며, 또 이에 대한 시민들의 의식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 교육은 거의 모든 서유럽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국가에 따라 차이점을 볼 수 있습니다. 크게는 그리스도교 신앙교육에 중점을 둔 종교교육과 다양한 종교들에 대한 인식에 중점을 둔 종교교육이라는 두 가지 유형을 구분할 수 있으며, 또 다시 의무적 교육인가 아니면 선택과목으로 채택하느냐의 차이도 있습니다.


먼저, 영국과 스코트랜드에서는 각각 성공회와 장로교가 국교이지만, 1988년에 제정된 교육법에 의거하여 다원주의적 종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즉 학생들은 종교 수업 중에 그리스도교 외에 현지에 존재하는 유대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시크교 등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종교 교육은 16개 연방정부의 책임 하에 이루어지고 또 헌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습니다. 단 교육 내용 결정은 교회 책임자들이 담당합니다. 학생들은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중 한 종교를 선택하여 수업을 받습니다. 그렇지만 종교 수업 대신 철학·윤리수업을 선택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부모의 허락 하에 아예 종교수업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01년 이후로 이슬람을 종교 교육에 추가해야 할 것인지 아직도 토론이 지속되고 있지만, 함부르크나 헤센 지역에서는 각각 2012년과 2014년에 이미 이슬람 종교 교육을 허용했습니다.


벨기에에서는 공립학교일 경우 가톨릭·개신교·성공회·정교회·유대교·이슬람 종교 교육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윤리 교육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두 유형 모두 헌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고, 종교 교육의 내용과 교사 선발은 해당 종교기관의 책임 하에 이루어집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현재까지 사회 윤리 교육과 가톨릭 종교 교육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되어있는데, 룩셈부르크 정부는 2016년부터는 양자를 통합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종교단체 대표자들은 이 계획에 반대하고 있으며, 가톨릭 종교 교육 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종교들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과거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에서는 현재 공립학교에서의 종교 교육은 폐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학생들의 종교 문화·지식 결여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져 프랑스어·역사 수업 중에 세계 종교의 역사를 학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 시기적으로 독일의 점령지였던 알자스와 로렌 지역에서는 아직도 종교 교육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이 두 지역의 경우, 초등학생들은 가톨릭·개신교·유대교 종교 교육 중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윤리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중·고등학생들은 부모의 동의하에 종교 교육을 면제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서는 경우에 따라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 종교문화 교육이 실시되기도 합니다.


현재까지도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의 경우, 대다수 학교에서 가톨릭 종교 교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부모의 동의하에 종교 교육을 면제받을 수도 있습니다.


유럽 최고의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에서는 가톨릭 종교 교육이 1998년 이래 공립학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타종교 교육도 7명 이상의 학생이 있을 경우 가능하며, 그것도 아니면 윤리 교육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경우, 1984년 이래 가톨릭이 국교의 위상을 상실했지만 가톨릭교회는 지금도 특권을 누리고 있는 실정이며, 공립학교에서는 종교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종교 수업은 선택 과목이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페인에서도 가톨릭이 1978년 이후로 더 이상 국교가 아니지만, 정부와 가톨릭교회는 여전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종교 교육의 내용은 바티칸의 동의를 얻어 규정되고, 공립과 사립을 구분하지 않고 종교 교육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권에 따라 그 의무성이 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06년 사회당 정권 하에서 종교 교육은 선택과목이 되었지만, 2013년 우파정부에서는 이를 다시 의무화 했습니다. 2014년부터는 가톨릭·개신교·유대교·이슬람 종교 교육 중 한 가지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문화·사회관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경우, 국민들 절대 다수가 정교회에 속해 있기에, 정교회 종교 교육이 2011년까지 의무적이었습니다. 단 타종교 소속 학생들에게는 정교회 종교 교육이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성직자들은 종교 교육을 다시 의무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교리교육식 종교 교육을 폐지하고 다양한 종교들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열린 종교수업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자면, 현재 서유럽에서는 전통적이고 배타적인 그리스도교 종교 교육 보다는 다원주의적인 종교교육을 희망하는 시민들이 증가하고 있으며, 아니면 아예 종교 교육을 배척하는 사람들도 과거에 비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교 교육에 대한 서유럽인들의 입장은 그들의 종교에 대한 관심도를 드러내는 요소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전통을 고수하려는 입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반면, 자기 종교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타종교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종교분쟁이 빚어내는 테러사건들이 빈번해지면서 극단주의나 배타적인 근본주의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아예 진부하고 우민화 성향을 보이는 종교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종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중에는 기성 그리스도교에서 만족감을 얻지 못하고서 나름대로 ‘자기만의’ 종교 생활을 하거나, 동양 영성, 신흥 종교 등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교회나 종교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일종의 ‘영성 짜집기’를 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유럽인들이 종교나 영성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 개인 차원의 ‘자기 실현’, ‘인생의 의미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와 영성의 ‘탈제도화’와 ‘개인화’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지요.


단, 한 가지 예외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유럽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입니다. 이제 유럽사회의 한 구성원 집단을 형성하게 된 무슬림들은 대다수가 그들의 신앙을 고수하며 상당히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을 종교 자체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기 보다는 무슬림들의 사회·문화적 소속감과 결속력의 표출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즉, 본래 지식인 계층이 아닌 단순 노동자·농민 출신의 무슬림 이민자들이 서유럽 사회에서 경제·사회적으로 하층계급을 형성하고 또 소외당하고 있기에 자신들의 ‘전통적 문화유산’인 이슬람교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지키려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일리가 있는 분석이라고 생각되는데, 사실 서유럽 주재 무슬림들 중에서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접근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또 이런 태도는 이민 2, 3세대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젊은 무슬림들조차 이슬람에 대한 비판의식이 거의 없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종교전통을 유지하려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그들은 서구식 문화 및 정치·경제 체제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비판의식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서구사회에 기거하면서 말이지요. 그래서 예를 들어, 금년 1월에 파리에서 발생한 ‘샤를리 엡도’ 주간지 테러 사건에 대해 상당수의 무슬림 청년들이 ‘테러를 당해도 당연하다’ 내지 ‘정부에 의해 조작된 일이다’라는 식의 입장을 표했던 것입니다.


- 프랑스 혁명에 대한 당시 가톨릭의 태도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프랑스 혁명이라고 하면 먼저 시기적으로 1789년에서 1799년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즉 국민의회를 지키기 위해 조직한 민병대가 무기를 얻기 위해 1789년 7월14일에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한 때부터 나폴레옹이 1799년 11월 9일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기 전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혁명 이전까지 프랑스는 신분제·봉건제 사회였습니다. 절대군주인 국왕 아래 세 가지 신분이 존재했는데, 바로 성직자, 귀족, 평민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에 속한 성직자들은 국민의 2%에 해당했지만, 프랑스 국토의 1/10 정도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십일세 징수, 국민 교육 담당 등을 통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성직자들은 귀족들과 마찬가지로 면세 특권 역시 누렸습니다. 평민들은 부르주아와 농민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이 국민의 96%를 차지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은 바로 이런 특권 사회가 빚어낸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을 개혁하려고 했던 평민들의 의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평민 대표자들은 1789년 국왕 루이 16세가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집한 삼부회의, 즉 신분제 의회를 탈퇴하여 국민의회를 소집하게 되었고, 이 국민의회가 혁명의 동인이 됩니다. 그리고 이 국민의회에 의해 1789년 8월 4일 봉건제가 폐지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바로 1139명의 국민의회 의원들 중에는 291명의 성직자 의원들 (그중 주교는 46명)이 있었고, (고위 성직자인 주교들을 제외한) 그들의 대다수는 변혁에 찬성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국민의회는1790년에서 1791년에 걸쳐 그동안 정치적·종교적 특권을 누려왔던 가톨릭교회의 재산을 몰수하였고, 종교세를 폐지하고, 성직자들을 국가의 봉급을 받는 국가관리로 규정하는 성직자 민사기본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 민사기본법은, 시민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본당 신부를 임명하고 주교는 간접선거를 통해 임명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들은 국가에 충성할 것과 민사기본법에 대한 동의 선서를 요구받았는데, 단지 50%를 약간 넘는 수의 성직자들만이 이에 응하여, 성직자들은 결국 선서파와 비선서파로 양분되었습니다. 특히 귀족 가문 출신들이 대다수였던 고위성직자들 중에서는 극소수만이 (135명 주교 중 단지 4명만이) 선서를 했고, 이 비선서파 성직자들은 반혁명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물론 교구 사제 같은 하위성직자들 중에는 농민이나 농노 출신들이 있었고, 이들은 반대로 혁명을 지지했습니다. 비선서파 성직자들의 반혁명 운동과 외세와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1792년부터 반그리스도교적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이로 인해 교회 파괴 내지 용도변경, 성직자 강제 결혼, 미사 금지, 교회력 대체 등의 조치가 취해집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절대다수 비특권계층이 극소수 특권계층의 지배를 거부하고 반기를 든 사건인 프랑스 혁명 와중에, 일반적으로 특권계층에 속했던 성직자들 역시 혁명의 당위성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양분되었던 것입니다.


- 그렇다면 프랑스 천주교회의 현재 처지와 동향은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과거에 프랑스의 종교 지형은 가톨릭교회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고 또 프랑스는 « (가톨릭) 교회의 큰 딸 »이라고까지 불렸었지만, 현재 프랑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비종교적인 국가가 되었습니다. 과거 프랑스에서 가톨릭교회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했었지만, 현재는 정치와 종교가 명백히 분리되었고 사회는 점점 개인화·다원화되고 있습니다. 과거에 가톨릭교회는 프랑스인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었지만, 현재 프랑스인 대다수는 더 이상 가톨릭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며, 단지 소수만이 아직도 가톨릭교회에 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 프랑스 사회생활은 가톨릭교회에 의해 주도 되었지만, 현재 종교 전통은 그런 위상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이고 가톨릭교회 자체도 분절과 변화에 직면해 있습니다. 과거에 무신론은 소수 지성인들만이 대변했지만, 현재는 프랑스 인구의 거의 1/3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톨릭교회가 거의 유일무이한 종교적·영성적 지평이었다면, 현재는 타종교들의 현존과 공존이 점점 확연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도 계몽주의에 의해 도입된 신앙에 대한 이성의 우위성, 정교분리 정책, 과학기술의 발전, 분업화, 인간 개인 위상의 변화, 대중문화 형성, 경제 성장, 세계화 등에 의해 유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생활은 점점 개인적이고, 자율적이며, 주체적인 신앙생활로 인식되고 있고, 자녀들에게 자신의 종교를 강요하려는 부모의 수는 급감하고 있습니다(그리스도인들의 4%만이 자녀들의 신앙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리고 신앙인들 역시 아주 유동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즉, 어느 한 종교에 막연하게 의무적으로 머물지 않고 본인에게 적합한 종교를 찾아 쉽게 이동한다는 뜻입니다. 무조건적, 전통적 선택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의 영생을 얻기 위해 아니면 죄의식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행복, 인간의 자기실현, 자기완성이 종교생활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적·종교적 변화를 배경으로, 프랑스인들은 가톨릭교회에 대해 긍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 사회학자들의 설문조사 결과 (1998년)에 의하면, 설문대상자들의 50% 정도가 가톨릭교회를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교회라고 생각하는 반면, 단지 1/3 만이 가톨릭교회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가 제3세계 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올바른 지적을 하고 있지만, 반면 교회가 제시하는 성 윤리나 정치적 입장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 설문 응답자 대다수의 의견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 놓인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현재 위기상태에 놓여 있고 일종의 제도적 해체와 변화 과정 중에 놓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적·사회적 지배 종교에서 소수 종교가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1981년에는 프랑스 국민의 71%가 가톨릭 신자라고 밝혔지만, 1999년에는 53%로 줄어들었습니다. 1981년에는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미사에 참석하는 인구가 국민의 18%였는데, 현재는 12%로 감소했고, 그나마 매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인구율은 8%에 그치고 있다. 18세에서 29세의 젊은이들 중에는 매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사람은 2% 밖에 되지 않습니다.



1965년에는 사제수가 41,000명이었는데, 1975년에는 35,000명으로, 2000년에는 20,000명으로 감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1/3만이 66세 미만입니다. 1983년에는 본당수가 37,500개였고 그중 14,200 본당에 상주 사제가 있었는데, 1996년에는 본당수가 30,700개로 줄었고 단지 8,800 본당에만 상주사제가 있습니다. 영세자 수와 혼인성사율은 오랫동안 유지되어 오다가 현재에는 급감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말까지는 유아의 80%가 영세를 받았었는데, 2000년에는 그 수가 50%로 줄었습니다. 본당 유형 역시 재구성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자기 본당이 아니라 타 본당에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변화로 인해 프랑스에서는 ‘가톨릭교회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하는 종교 사회학자도 있습니다.


그 외에도 프랑스에서 가톨릭교회는 현대 사회와 그 문제들 앞에서 예언자적 역할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전통 고수자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가톨릭교회가 마치 일종의 ‘성 윤리 전담기관’이라도 되어버린 듯한, ‘동성애자 결혼 반대 운동 기구’라도 되어버린 듯 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신학 연구와 관련해서는, 예전과 같이 유수한 신학자들을 배출하며 신학의 선두를 달리던 교회가 아니라 겨우 현상 유지를 위한 안간힘을 쓰는 상태라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물론 예전처럼 제정적인 지원도 여유도 없고 또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현재 자의반 타의반 ‘변화’와 ‘변혁’의 시대적 요구 앞에 서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다음 주, 김경곤 신학자와의 인터뷰 2회가 이어집니다.




[필진정보]
김경곤은 종교사학자. 독일 마인츠 대학교에서 문학사와 가톨릭신학 석사학위를, 독일 본 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등학교에서 15년 동안 종교문화를 가르쳐오고 있으며,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불교사, 동양종교사, 종교사학 기초개념 등에 관한 강의를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선불교와 그리스도교에서 본 인간과 구원. 보조 지눌과 카를 라너 비교 연구』가 있고, 「법화경언해 연구」, 「한국 여성·남성상 형성에 있어서 유교가 미친 영향. 조선시대 여성교육서를 중심으로」, 「나사렛 예수와 보살. 종교사학자가 본 길희성의 보살예수론」 등의 논문을 저술했다. 옮긴 책으로는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 『세계 종교 올림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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