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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칼럼] “넘어진 곳, 거기서 일어나자” - ‘교회정신’ 아닌 ‘예수정신’으로 살아가기
  • 편집국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6-12-23 15:04:53
  • 수정 2016-12-23 15: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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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온 나라에 촛불이 밝혀졌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촛불을 켜 들고 박근혜 조기탄핵과 국정수습을 정치권에 주문하지만 왠지 모를 답답함이 마음에 가득하다.


2016년은 우리 사회의 민낯이 처절하게 드러난 한 해였다. 사실 출발은 ‘정운호 게이트’로부터 시작한다. 돈 많은 화장품 회사 대표가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수십억의 돈을 뇌물로 준 정황이 드러나면서 관련된 법조인들의 이름이 하나 둘 거론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했던 홍만표 검사의 비위정황이 드러났고 이것이 진경준을 거쳐 우병우에 불똥이 튀면서 다시 청와대와 조선일보의 싸움으로 번져나갔다. 


송희영 주필의 위기로 잠시 주춤거리던 < 조선일보 >가 차곡차곡 모아둔 최순실 관련 자료들을 하나 둘 내던지며 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순간 < JTBC >에서 태블릿 피시가 등장하며 사태는 겉잡을수 없는 국면으로 흘렀고 여기에 그 동안 국정농단의 근저에서 부역하던 이들과 희생자들의 고발이 이어지며 촛불정국, 탄핵심판의 국면이 만들어 졌다. ‘사건’만 따라가기에도 숨 가쁜 한 해 였다.   


고통과 상처가 분노로 터져 나왔다


▲ 시민들은 촛불을 하나씩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 곽찬


국민들은 사회의 총체적 비리와 부패에 “이게 나라냐!”라며 거리로 뛰어 나왔고 그 동안 눌러두고 있던 사회 각계각층의 고통과 상처가 분노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제 성탄 장식이 거리를 밝히며 크리스마스 캐럴이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기간 내내 종교계 특히 천주교는 예상 외로 조용했다. 거리와 광장에는 미사를 지내는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있었지만 교회는 침묵했다. 길거리에 230만 촛불이 모이는 동안에도 천주교계의 반응과 대응은 시민들에 대한 어떤 지지나 동의도 표명하지 않고 성(聖)과 속(俗)의 경계를 그어 놓고 성의 성역에 숨어 있었다. 국면이 수습되는 시기가 오자 몇 교구의 주교들이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씩 툭툭 인심 쓰듯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말하며 기쁜 성탄을 맞이하자고 한다. 


이 천년 전 이스라엘의 성탄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로마의 식민통치와 세리들의 강탈, 바리사이들이 장악한 회당의 도덕적 요구 앞에서 민중들은 마음 기댈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최소한의 의식주가 결여되어 생존을 위협받았고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는 재물을 마련할 돈도 없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번민의 삶 속에 들려오는 소리는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세례자 요한의 소리였다. 


재물을 바치지 않고도, 회당에 나가지 않아도 요르단 강에 나가 물로 씻으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과 더불어 메시아가 올 터인즉 하느님 나라, 하느님의 통치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은 그들의 고통 속에서 들려오는 실낱같은 불빛이었고 희망이었다. 도무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이 어두움을 걷어 낼 누군가가 오고 있다는 메시지는 그들에게 ‘다시 살아보자! 기다려 보자!’는 마음을 가지게 했고 다시 살게 했다.  


삶의 고통의 한 복판에서 성탄은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었다. 벗어나고 싶은 세상에서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이었고 가능성이었다. 예수는 바로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가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우울과 무의미를 활력과 의미로 바꾸어 낼 기회였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둠과 암흑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촛불로 만들어낸 탄핵정국을 엉뚱한 사람들이 누리려 흑심을 품고 사방에서 스물 스물 머리를 들고 일어난다.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시킨다고, 최순실을 처벌한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모든 모순과 부조리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모두가 지켜본 청문회에 등장한 뻔뻔한 법조인들과 ‘모르쇠’로 일관하는 수많은 증인들, 그들은 모두 한국사회의 ‘엘리트’들이었다. 그런 검사들과 판사들, 병원의 의사들, 대학의 교수들, 고위공무원들과 공직자들이 초지일관 ‘알지 못 한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강조한다. 이들의 협력 없이 이런 허수아비 정부는 유지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들이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우습게 만들어 놓았다. 


이제 희망은 우리들 삶의 자리에서 찾아 시작해야 한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정의와 공평, 평화와 공동선을 찾아나가야 한다. 우리 삶의 자리를 정화하지 않고 희망을 발견할 수는 없다. 


▲ ⓒ 곽찬


교회 안에서 희망 찾기


가톨릭프레스는 교회 안에서 희망 찾기를 시작한다. 교회의 부정과 비리,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고 보도하여 교회가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할 것이다. 교회가 침묵했던 이유는 정권과 권력의 시녀 역할을 부족함 없이 수행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회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다시 보자. 서울대교구의 서소문 성지개발, 꽃동네, 인천교구의 병원문제, 대구 희망원 사태, 부산 해운대성당 사태까지 모두 폭탄을 하나씩 안고 버티는 분위기다. 


그 이면에 ‘잘못된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닐까? 희망의 중심에는 예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예수가 있어야 할 곳에 번영과 성장, 확장과 풍요로움이 있기에 예수의 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참된 희망은 ‘예수의 정신’에서 오는 것이다. 교회정신을 말하며 예수정신을 내려놓는 교회 지도자들은 이번 성탄을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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