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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자기 집안 어른들을 책임져라” -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인터뷰 ②
  • 염은경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7-05-01 13:02:34
  • 수정 2017-05-10 14: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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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 ⓒ 곽찬


옳고 그름의 판단은 ‘종교’와 ‘역사’에서 시작된다.


(신성국 신부) 저는 가톨릭신학교를 다녔습니다만 대학교 때 까지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사를 배운 적이 없습니다. 항상 고조선에서 시작해 조선 후기에 끝났습니다. 의도적으로 비중을 두지 않고 안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고, 이것이 역사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임헌영 소장) 대학도 그랬습니다. 서울대학교 사학과에서 조차도 3·1운동에서 끝냈습니다. 현대사를 안 가르쳤습니다. 자기들의 범죄사이기도 하니 안 가르쳤는데 최근에는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종교’와 ‘역사’ 두 군데서 나옵니다. 현실적인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역사고, 영혼과 인간 자체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저는 경상도 사람인데 경상도와 호남 쪽 지역감정이란 것을 저는 ‘역사의식의 차이’로 봅니다. 단순한 지역감정이 아니라 역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에 선악의 판단, 정의와 불의에 대한 판단 기준이 없는 것입니다. 


(신성국 신부) 사실 저는 안중근 의사를 통해 역사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친일을 공부하고 한국사와 친일교회사를 알게 되니 왜 교회가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임헌영 소장) 역사를 알면 정의와 불의를 알게 됩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대부분 박정희가 친일 했다는 것을 모르는데 그 이야기를 해주면 거짓말이라 하고 진실을 알게 되면 회의감을 가집니다. 


저희 연구소 회원 중 한 분이 대방동 박정희 동상을 밧줄로 끌어 내려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구미에서 사람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올라와서는 ‘재판도 필요 없다, 죽여라’ 면서 난리가 났습니다. 그 와중에 재판 모두발언에서 제가 박정희의 일생을 읊었습니다.


막 떠들던 사람들이 조용해 졌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를 붙잡고 “아까 하신 말씀이 정말입니까”하고 묻는 거예요. “제가 왜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라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 버스가 안 올라왔습니다. 이것이 역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입니다. 


▲ 민족문제연구소 역사자료관 ⓒ 곽찬


일제 친일파가 어떻게 독립한 나라의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고 하지만 그 때는 다 몰랐습니다. 출마했을 때도 그저 훌륭한 군인, 국민을 생각하는 군인으로만 알고 그런데 실제로는 친일하고 여순 사건에도 가담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이 내가 알던 박정희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역사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신성국 신부) 일본 가톨릭교회는 구세주 강생 대희년을 맞이해서 가톨릭교회가 당시 침략 정권에 어떻게 부역 했는가 등 한국 침략, 중국 침략 같은 만행들을 기록해서 책으로 냈습니다. 매우 구체적으로 진정성 있는 반성과 사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가톨릭교회는 통과의례처럼 종이 한 장으로 반성문을 제시하고 끝냅니다. 안타깝습니다. 역사에서 반성은 매우 구체적인 진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헌영 소장) 누군가는 친일 가톨릭교회 역사를 써 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 연구소가 한 일이 국민 전체를 계몽하기 위한 친일 청산 운동이었다면, 민주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는 촛불정신이 각 분야별로 이어져 운동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법조계, 교육계, 종교계 할 것 없이 각자 과거를 충분히 반성하고 관련한 집회나 강연들이 성행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무기를 통한 ‘전쟁 억제’는 ‘평화’가 아닙니다.


(기자) 더 나아가 이제 본격적으로 통일시대를 준비해야겠지요.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역사문화 운동’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임헌영 소장) 민주화가 되면 모든 국민들이 통일을 열망하게 됩니다. 통일이라는 것이 지금까지는 정치적인 통일만 생각해 왔는데 저는 경제적인 접근이 제일 먼저 시작되면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한국 경제 위기의 출구가 거의 없다고 보는데 우리는 가장 좋은 노동력을 북한에 두고 활용을 못 하는 것입니다. 개성공단부터 공단을 늘려나가기 시작하고, 함께 일하면 이보다 더 좋은 교류가 어디 있겠습니까. 


가톨릭은 가톨릭대로 평양에 가서 미사 드리고, 불교는 불교대로 법회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사실,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역사 교과서 같은 것 까지도 민주화 시절에 진척이 됐다가 중단이 된 상태입니다. 통일은 서로 왕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 경북 칠곡군 왜관읍 미군부대 벽면에 붙은 손팻말 ⓒ 최진


독일의 경우 동독사람들이 서독에서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동독작가들이 책을 못 내면 서독에서 출판을 했어요. 그런 식으로 책이고 신문이고 서류 교류하다보면 저절로 되는 통일, 그것이 평화통일이라고 봅니다. 그야말로 무기를 통한 전쟁 억제는 평화가 아닙니다. 그건 전쟁을 억제한 것이고 억제된 것은 언젠가 터집니다. 무기를 통한 억제를 평화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게 중요한 대목입니다. 


강력한 무기 핵을 갖다 놔라, 사드 갖다 놔라 하고 안 쳐 들어온다 하고 서로 욕하고 그러면 무기를 통한 전쟁 억제지 평화체제가 아닙니다. 결국 평화체제는 무기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류, 협력, 공존으로 이루어집니다. 경제적인 단계부터 문화, 종교, 교육 등의 단계를 거쳐 민족의식 단계까지 가면 저절로 교류와 공존이 가능합니다. 함께 살아도 별 지장이 없습니다. 


(신성국 신부) 남한은 현재 완전 섬나라입니다. 대륙으로 진출을 못하고 있는데 경제적인 측면 하나만 보더라도 통일을 해야 합니다. 일본처럼 섬나라로 살고 있는 것이 비정상이고, 이런 비정상 상태에서는 정치도 사회도 정상이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임헌영 소장) 분단 냉전이 있는 한 올바른 민주주의가 힘듭니다. 독재정권들은 일부러 냉전체제를 유지하고 ‘북한이 쳐 들어온다’고 이용했습니다. 박정희 때부터 선거 있는 해가 되면 매년 신년사에 ‘향후 2, 3년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자료를 찾아보니 20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향후 2, 3년이 위험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북한 군사력은 우리 선거 때만 되면 강해집니다. 핵무기도 어마어마하고 당장 쳐들어 올 것처럼 느껴지는데 선거 끝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죠. 참 이상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아무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촛불이 역시 위대합니다. 


▲ ⓒ 곽찬


(기자) 한창 대선후보들의 정책토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회복과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임헌영 소장) 저는 이 시점에 후보들에게 너무 구체적인 정책들을 다그쳐 묻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사드를 무조건 들여놔야 한다’는 사람들의 의견은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합니다. 사드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북핵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다 아는데 굳이 왜 들여놓아야 하는 것인지, 우리나라에 아무런 이익이 없는데 왜 우리 땅을 제공해야 하는 것인지는 물어야 합니다. 


‘평화통일’은 헌법에 명시돼있습니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명시 돼있습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북한이 언제 우리나라에 쳐 들어온다고 했습니까? 북이 무슨 장거리, 중거리 실험을 했다면 그게 실험이지 선제공격은 아닙니다. 북이 실험한 것을 우리나라에 선제공격한 것처럼 모든 언론들이 아무런 저항감도 없이 보도합니다. 이른바 진보언론이라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 번 거꾸로 생각해봅시다. 


예를 들어 북한이 중국이나 러시아와 함께 우리나라 동해안 한쪽까지 내려온다면 우리나라와 미국과 일본이 가만히 있을까요? 또, 만약 북한 동해안에 동경을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사드 같은 감시기지를 만든다고 하면, 우리나라와 일본이 가만히 있을까요? 역으로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젊은이들이여, 자기 집안 어른들을 책임져라


(신성국 신부) 소장님께서는 매년 3월26일이 되면 효창공원 안중근 의사 추모제에 꼭 참석하시는데, 역사학자로서 안중근 의사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임헌영 소장)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들도 존경한 인격자잖아요. 판사도 존경하는, 간수도 존경하는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위대함, 애국자로서의 위대함, 이론가로서의 위대함을 다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동양평화론’이란 글은 우리나라의 어떤 일류학자도 쓰지 못하고 그런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국제 학자였습니다. 대단한 분입니다. 


(신성국 신부) 대선을 앞두고 촛불혁명의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겠습니까?


▲ 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년 추모식에 참가한 청년 안중근들 ⓒ 곽찬


(임헌영 소장) 우리나라는 미디어에서 젊은이들의 생각을 ‘다르다’고 말합니다. 세대별로 다르다고 강조를 많이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강조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그것이 고정된 관념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노인세대들을 고정된 관념으로만 묶어내는 경향이 있는 것이지요. 


저는 젊은이들에게 딱 한 가지만 말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자기 집안 어른들을 책임져라”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없습니다. 싸우고 토론하고 그래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노년층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은 국가안보입니다. 지금처럼 허위로 가득한, 전쟁위기로 몰아 마치 남북한이 싸울 것처럼 만들어서 애국심을 유발하려는 국가안보를 젊은이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6·25전쟁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자유로운가, 자유로운 정권에서 살고 있는가, 노년층이 돌아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과연 6·25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이 현재 우리가 사는 모습을 모면, 자신의 희생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할까. ‘내 죽음이 헛되지 않았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것을 생각해볼 수 있게 젊은 사람들이 함께 대화해야 합니다. 


민족의 통일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올바른 민주정권이 들어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살길이고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마지막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귀한 시간 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이 뜻대로 잘 세워지고 동아시아 평화정착을 위한 민족문제연구소의 활동이 열매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18년 상반기 개관을 목표로 한창 준비 중인 ‘식민지역사박물관’은 부산교구 송기인 신부님의 조용한 후원에서 시작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하셨던 송 신부님은 사제생활동안 받은 월급을 모아 전액 민족문제연구소에 기부하셨고, 그 돈을 씨앗으로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이 시작되었다. 


임헌영 소장은 송 신부님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전하며, 동시에 아직 건립기금이 다 채워지지 않아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 바로가기 (민족문제연구소) / (건립기금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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