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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적 가치를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 - [이신부의 세·빛] 십자가로 인한 구원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4-12 18:45:22
  • 수정 2019-04-12 17: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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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금요일 : 예레 20,10-13; 요한 10,31-42



독서와 복음 모두 오늘 말씀은 예언자는 예언자대로, 구세주는 구세주대로 그 신원을 의심당하고 정체성에 시비를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가 죄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거꾸로 고발을 당하는가 하면, 구세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예언자가 동시대인들에게 하느님의 사람으로 입증되는 방식은 그가 명성을 얻었는가의 여부가 아니라 그가 동시대인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심지어 박해까지 당해도 끝까지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처신했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후자이면 그가 비록 당대에는 치욕스럽고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하더라도 동시대인들은 물론 후대인들의 기억 속에서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과 이 목숨을 부지하는데 필요한 현세적 재물과 그리고 이 재물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는 권력이나 영예 같은 현세적 가치들보다 하느님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행동적 증거를 통해서만 예언자는 비로소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까닭입니다. 


현세에서 고난을 피할 수 없는 이러한 예언자의 일반적인 운명을 예수님께서도 맞닥뜨리셔야 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가르쳐주시고 그 뜻에 따라 좋은 일을 많이 하셨어도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모함을 받으셔야 했던 사정에는 이런 연유가 숨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시고 예수님께서 하느님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는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자원해서 받아들이시고 부활하신 이후일 수밖에 없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십자가로 인한 구원을 확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이치는 예외 없이 적용됩니다. 목숨과 재물과 권력이나 영예를 하느님보다 우선시하지 않는 단호한 태도만이 예언자적 노선을 걸을 수 있게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사도시대의 이상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누누이 강조하신 까닭도 그래서입니다. 


우리 교회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이 현세적 가치들을 하느님의 뜻으로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일에 용감하게 투신해야 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비록 그런 선택 때문에 박해를 받아야 한다고 해도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그 선택을 주저할 수 없습니다. 구세주의 신성이 입증되는 길, 교회가 그리스도의 교회로 우뚝 서는 길, 그리스도인들이 그 이름에 걸맞는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바로 현세적 가치들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데 수반되는 십자가를 짊어지는 데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양립할 수 없는 현세적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모두 붙잡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구원과 선교와 부활은 멀어집니다. 예언자의 예언자적 면모가 드러나는 길, 구세주께서 당신의 신성을 입증하는 길은 바로 하느님을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신앙을 증거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또 믿음이 없거나 약해서 하느님 믿기를 망설이고 있는 이들로서는 현세적 가치를 소홀히 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목숨이 소중하고 그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 주는 돈이 중요하며, 그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직업과 명예와 기술이 또한 중요하고, 이 모든 현세적 가치들을 보장해 줄 것 같은 권력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한 처지에서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도 하나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현세적 가치보다 더한 하느님 신앙을 증거할 때라야 비로소 그들은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고, 믿게 될 것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모시는 태도가 그래서 중요하고, 현세적 가치를 하느님에 우선하지 않고 대하는 자세가 동시대인들의 눈에 그래서 중요한 겁니다. 이 모든 이치를 간추려서, 십자가로 인한 구원을 확신해야 함을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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