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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철) 독실한 천주교인 ‘빠루’를 들다. - 바람소리 35. 무지無知와 막지莫知가 만나서 하는 일
  • 김유철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5-03 10:37:17
  • 수정 2019-05-03 10: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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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지정이 의결되자 원천무효라고 주장했다. (사진출처=오마이뉴스 남소연 기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말한다


특별히 요한복음에서는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목 메이게 하는 대목이 무려 25군데나 나온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 했는지 혹은 사람들이 미처 그의 깊은 뜻을 일상 속에서 새기지 못했는지 알 수 있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는 거듭해서 말했고, 그의 말을 전했던 요한도 반복강조의 의미를 고스란히 담은 모양새다.


최고의회 의원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힘주는 사람들이고 자신의 지식을 뽐내는 사람들이다. 예수도 그들을 만났던 모양이다. 그 중 니코데모란 유다인들의 최고의회 의원과 하신 말씀이다. “너는 이스라엘의 스승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요한 3,1-8) 예수를 안타깝게 하는 니코데모는 도처에 있다.


▲ 요한복음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부분이 25군데 나온다.


‘빠루’가 거기서 왜 나오는가?


4.27 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는 중요한 날을 전후하여 여의도에서 벌어진 정치권의 무지와 막지가 만나서 벌어진 한마디로 무지막지한 행태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일에 앞장선 이들 중 언론에서 ‘독실’이란 의미 상실된 종교훈장을 달아준 천주교인도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그리스도인 국회의원들 중 정당한 의사일정을 힘으로 막아서는 사람들은 분명 자신들이 규정한 국회법과 여의도 의사당 벽면을 장식한 헌법을 위배한 것이다. 그들이 설 자리는 신성한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성당의 고해성사실이다.


헌법과 법률이라는 제도는 왜 있는가? 그것을 누가 만들었는가? 국회의원일수록 자신들이 만든 법률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정치인의 지극히 마땅한 행위이다.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의안의 접수를 물리적으로 방해하고, 의안과의 팩스를 파괴하고, 동료 국회의원들과 국회 관련 부서 직원들을 감금하는 일은 그들 자신이 스스로 국회법을 부정하고 짓밟는 일종의 병적인 행태일 뿐이다. 공사도구이거나 흉기가 될 수 있는 ‘빠루’를 독립운동의 도구인 양 들고 다니는 천주교인 국회의원은 분명 우리의 눈을 의심케 한다. ‘빠루’가 거기서 도대체 왜 나오는가?


‘독실한’ 신자는

들을 귀가 있는가?


일반시민이 운전 중에 신호위반을 하더라도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고 범칙금과 벌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정치인들, 국회의원들이 며칠 동안 여의도에서 벌린 일과 오늘과 내일 벌릴 일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하는 숱한 범법 행위에 대하여 묵인하는 것은 공정하거나 공평한 일이 아니다. 예수보다 이전 사람인 법가의 한비자가 ‘법 앞에서 평등한 세상’을 외친 것이나 또한 예수가 최고의회 의원이었던 니코데모에게 간절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고 말한 것을 ‘독실한’ 신자 국회의원들이 듣지 못한다면 그들은 청력검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민족화해를 외치며 1년 사이에 연거푸 세 번이나 남북의 정상이 만나서 민족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시점에서 여의도 국회의 상황을 볼라치면 한숨만 나올 뿐이다. 2018년 4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인 이기헌 주교는 회담의 성공을 기원하는 담화문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마태 6,10)라는 예수의 말로 시작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9)는 즈카리야의 말로 마무리했다. ‘독실한’ 신자 국회의원은 그 의미를 새겨보았는가? 


판문점회담 이틀 전 교종 프란치스코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평화를 열망하는 한국인들에게, 저의 개인적인 기도와 함께, 온 교회가 곁에서 동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성좌는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자 남북의 만남과 우정으로 이루어지는, 이 모든 유용하고 진실된 발걸음에 함께하며 지지하고 응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독실한’ 신자 국회의원에게 교종의 말은 들렸는가? 


교종의 말은 “너 어디 있느냐?”는 질문이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한국의 정치권이 외면한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영상 메시지를 보내왔다. “사랑하는 벗 여러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과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저의 진심어린 인사를 전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이 기념일이 일치와 대화와 형제적 연대에 바탕을 둔 미래가 실제로 가능하다는 희망을 모든 이에게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조화와 화합을 추구하고자 노력할 때, 분열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번 판문점 선언 1주년을 기념하며 모든 한국인이 평화의 새 시대를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또한 여러분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풍성히 내리길 빕니다.”


한반도의 운명 나아가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민족의 새로운 길에 대하여 교종은 자부적 사랑과 관심으로 한국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당사자인 한국의 정당들은 한결같이 침묵했고 정치인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교종의 메시지는 죄를 짓고도 나 몰라라 하던 아담과 그의 아들 카인에게 물었던 “너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독실한 신자’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도 머잖아 옛일이 되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살이다. 시절이 지난 다음 한민족의 화해와 통일의 여정 속에서 ‘나 몰라라’하거나 ‘다된 밥에 재 뿌리는 짓’을 하거나 심지어 자신들의 권력이나 밥그릇을 위해 ‘빠루’를 들었다면 불쌍한 일이다.


무지막지한 일은 이제 그만


오죽하면 예수께서 “진실로 진실로”라는 말을 니코데모와 같은 최고의회 의원을 비롯해서 군중과 율법학자뿐만 아니라 당신의 제자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진심을 전달하려고 애썼을까. 이천 년 전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이나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는 여전히 그 분의 진심을 못 알아듣거나 오해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알파와 오메가가 새겨진 부활초 앞에서 예수를 구세주요 주님이라 고백하고, 하느님 안에서 예수의 부활과 함께 자신의 부활을 삶으로서 고백했다면 하늘 소리를 다시 귀 여겨 들을 일이다. ‘독실’한 사람일수록 힘주고 폼 잡는 습관은 고치기 어렵지만 그래도 살 길은 있다. 



[필진정보]
김유철(스테파노) :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삶예술연구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민예총, 민언련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집 <천개의 바람> <그대였나요>,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 연구서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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