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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받는 질문, 우리가 해야 할 질문 - [이신부의 세·빛] “질문을 제대로 하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5-10 15:41:47
  • 수정 2019-05-10 16:3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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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간 토요일 : 사도 9,31-42; 요한 6,60ㄴ-69 



하느님께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에게만 두 가지 선물을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는 사랑하는 힘이고, 다른 하나는 질문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인류는 질문하는 능력을 통해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한편 외부 환경의 도전을 극복해 오는 과정에서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고, 사랑하는 힘을 통해서 물질문명이 드높은 정신문화로 나아갈 수 있는 정신적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면 질문할 수 없습니다. 사태나 사물의 대강을 파악하고 있어야 더욱 자세히 본질을 파악하고 싶은 호기심 때문에 질문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인간 지성이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준 디딤돌입니다. 오늘 복음에는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질문이 나옵니다. 빵의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자 했던 군중은 먹어도 다시 배고프게 하는 빵을 구하지 말고 영원히 죽지 않게 하는 생명의 빵을 먹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 그 생명의 빵을 달라고 청했고 그분은 당신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시라고 말씀하시자,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군중의 질문은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지니신 분임을 인정하면서도 하느님이시라는 것까지는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기 살을 다른 사람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없어도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으셨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해 떠나가는 군중도 붙잡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동요하던 제자들에게도 독촉하듯이 질문하셨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형식은 질문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떠날테면 떠나라는 단호한 촉구의 말씀이셨습니다. 다행히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이런 대답을 함으로써 예수님 곁에 제자로 남았습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신성을 지니신 존재, 즉 하느님이심을 믿었기 때문에 그분의 살을 먹을 수 있다고 여겼고 그렇게 해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도 살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중세와 근세에 가톨릭교회에는 신앙에 대한 순명만 강조되었을 뿐 이에 대한 질문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미사 중의 빵과 포도주는 성체로 거룩하게 변화된다고만 가르쳤을 뿐입니다. 성체성사의 재료인 빵과 포도주의 실체적 변화를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화라도 되는 것처럼 과도하게 강조한 탓에 이에 항의성 질문을 던진 브루노의 화형 사건이 말해주듯이 우문우답의 역사가 지루하고 답답하게 흘러갔습니다. 질문 없는 믿음의 결과는 신앙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시키는 데 실패했고 따라서 수많은 종교재판과, 개신교 그리스도인들로 인한 분열, 무신론 세력으로 변한 노동자 세력의 이탈, 인간 이성을 신앙보다 앞세운 시민 세력의 이탈 등으로 나타났고, 가톨릭교회는 마치 바빌론 유배 당시의 유다인들처럼 계몽되어 가는 인류 사회 안에서 고립되기에 이르렀습니다. 


▲ (사진출처=Girolamo Di Majo/AP)


20세기 중반에 소집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예수님의 질문과 베드로의 대답 이래 비로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진 계기였습니다. 


이 공의회가 지녔던 문제의식은 가톨릭교회의 고립 원인에 대한 성찰과 아울러, 성체성사를 통한 생명의 기운을 받지 못한 인류 문명이 초래한 비인간화의 위기의식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찬란하게 발달한 인류 문명이 과연 인간의 행복과 인격 성숙에 기여하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사실은 인간성이 죽어가는 인류에게만이 아니라 인류의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온 가톨릭교회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베드로가 대답했던 바대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으로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먹고 또 나누어주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이 과연 올바로 이해되고 실천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하고 또 대답해야 함을 절감합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 중풍에 걸린 애네아스를 일으켜주고 죽은 타비타를 살린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의 기운을 이제 다시 현대 가톨릭교회에 주시기를 청해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을 먹는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물어야 하고, 그분이 주시는 생명의 기운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며, 그 기운을 어떻게 받을 수 있고, 또 어떻게 세상에 전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질문을 제대로 하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의 초점, 그것은 믿는 이들의 인격이 성숙해지는 것과 개별화된 신앙을 졸업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 그리고 신자들의 인격과 신앙 공동체가 거룩하게 변화되는 일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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