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엄마가 평생 사랑을 고백한 첫 남자 - [휴천재일기] 2019년 8월 7일 수요일, 맑다 흐리다.
  • 전순란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8-09 13:14:59
  • 수정 2019-08-09 13:14:59
기사수정


2019년 8월 7일 수요일, 맑다 흐리다.



비 내리는 날 이사를 해 본 사람은 안다, 커다란 집이라도 사서 살림을 늘여간다면야 그 구질스러움을 참을 수도 있겠지만, 단간 셋방에 사는데 방세를 올려 달래서 반지하로 이사해야 한다면…. 20cm쯤 되는 창으로 세상이 좀 보이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신발이 창문 밖으로 향하는 시선을 마구 밟고 지나다닌다면… 오늘 서울을 떠나며 왜 이런 서글픈 생각이 들까?


우리 신혼집은 그래도 땅 위에 방이었다. 단간 셋방을 미닫이로 나눈 상하방에 두 시동생과 함께 살림을 시작했다. 그래도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바꾼 철없던 시절의 사랑! 사랑했기에 가능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가랑비로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토록 가난했지만, 황금찬 시인이 노래한대로, 그 나날의 삶은 한 편의 시(詩)였다. 


한 잎

낙엽에

달빛 잉크로 쓴

일곱 글자의

사람을 사랑하라 (황금찬, “시”)


비를 맞으며 지리산으로 떠날 짐들을 차에 옮긴다. 남거나 상한 음식은 빗물과 함께 마당 나무 밑에 묻어준다. 보스코는 곽선생님에게 가서 그제 아침 왼쪽 잇몸치료를 받았고 오늘은 오른쪽 잇몸치료를 마저 받았다.


내려가는 길에 미리내 ‘유무상통’에 들러 엄마를 한 번 더 뵙기로 했다. 엄마한테 가는 길, 미향저수지도 물이 빠져 가난한 집 점심상 같다. 유무상통으로 오르는 길목에 폐가가 하나 있다. 짓자마자 버려둔 집 같은데 지붕이 다 벗겨지고 건물이 내려앉는 중이다. 망가진 집, 쓰러지는 울 같이 갈수록 체소해 가는 엄마는 귀도 안 들리지만 그보다 갈수록 말이 없어진다. 



‘대건효도병원’ 간호사들이 나를 보자 엄마가 오늘 한마디 말도 않으셨다고 일러바친다. 엄마한테 ‘왜 그리 말을 안 해서 다른 사람 마음을 애태우냐?’는 딸의 물음엔 ‘쓸데없이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눈을 흘기신다. 그렇다. 정상인 우리도 하루 종일 한마디 말도 하기 싫을 때가 있는데… 엄마가 오늘이 그런 날인가 보다.


착한 보스코가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1층 복도부터 시작하여 한 층 한 층 복도를 왕복하고서 9층까지 밀고 가서 20년 전 엄마가 제일 먼저 기거했던 방을 가리켜 보이고 그 방 앞에서 내려다보던 저수지를 보여드렸단다. “엄니,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좋지요?”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시더란다. 



엄마는 말을 잃어버리면서 생각도 점점 깊이 가라앉아 버렸는데 보스코에겐 그걸 길어올리는 재주가 있나보다. 오죽 하면 연전에 “성서방, 사랑해!”라는 말씀도 하셨겠는가! 아마 엄마가 평생 사랑을 고백한 첫 남자일 게다(“엄마, 아빠 생각 안나?” 라고 간혹 내가 물으면 “생각은 무슨 생각이 나니? 난 너희 아버지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다, 얘!” 라고 매몰차게 말씀 하셔서 나를 한참 서운하게 하시던 엄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35년이나 되긴 했지만). 


실버타운 식당에서 ‘빙수데이’라고 잔치를 한다기에 엄마를 모시고 갔다(엄마는 실버타운을 퇴소하고 효도병원으로 옮기셨으므로 이젠 이 식당에도 손님이다). 옛날식 빙수로 얼음을 들들 갈아 푹 삶은 단팥을 푸짐하게 넣고 연유로 맛을 낸 빙수를 한 그릇씩 받아안은 어르신들의 행복한 얼굴이라니! 점심을 얼마 안 드셨다던 엄마도 한 그릇 뚝딱 드신다. 모두에게 추억의 달콤한 맛 팥빙수!



엄마 옆방에 이모 친구분이 한 달 전 침대에서 낙상해서 효도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이모가 그 친구가 병원에 간 걸 한 달이나 모르고 있었다니… 늙으면 그만큼 세상사에 대한 흥미도, 타인에 관한 관심도 함께 낡아버리나 보다. 


그 할머니도 ‘주변에서 모든 것을 도와주니 병원에 있는 게 편해서’ 6층 방을 정리해 버릴까 싶단다. 그러다가도 ‘그것마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며 너무 서글프단다.


이제 우리 엄마에게 남은 거라곤 사철 옷 한 벌씩과 신발 한 켤레. 그리고 병원에서 준 환자복이 전부다. 마지막 떠나실 때는 맨발에 입고 있는 단벌옷이 전부일 테니 어쩌면 네 벌의 사철옷마저 마지막에는 사치스러울까?


세 시간 넘게 차를 운전하여 3주 만에 휴천재에 돌아오니 온 집안이 화덕처럼 달아있다. 제일 큰 걱정이 텃밭의 잡초여서 밭을 내려다보니 의외로 깔끔하다. 드물댁이 간간이 지심을 맸나보다, 이 한더위에!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catholicpress.kr/news/view.php?idx=6041
기자프로필
관련기사
댓글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비회원 이름 패스워드 자동등록방지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
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