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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여라,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 [이신부의 세·빛] “너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라”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0-16 18:03:54
  • 수정 2019-10-16 18: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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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 수요일 : 로마 2,1-11; 루카 11,42-46



고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가 당시 젊은이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일깨워준 말의 뜻은 “너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알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도 있지만 모르는 것은 더 많습니다. 아는 것은 지식이요 모르는 것은 무지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깨닫고 알려주는 것이 지성입니다. 지식인이 제법 많아 보이는 이 땅에서 지성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 아닌 것, 즉 우상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깨달으려면 오류를 오류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나, 정의를 실천하려면 불의에 대항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지요. 


하느님과 우상을 함께 섬길 수 없고, 진리와 오류를 함께 믿을 수 없으며, 정의와 불의를 동시에 행할 수 없는 법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전해준 은인은 이스라엘로서, 그들이 전해준 구약성경은 우상을 배격해야 한다는 진리를 인류에게 전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의 바리사이들은 겉으로만 우상을 배격하고 실제로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으로부터 불행하리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경제적인 소득에 대해서는 율법에 따른 십일조를 내고 있었지만, 정의와 사랑은 십일조는커녕 아랑곳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방점이 정의와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라는 데 있지만,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경제적인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이라는 곁가지 말씀에 근거를 두고 신자들에게 십일조 헌금을 마치 예수님의 계명인 양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또 그렇게 해서 모아진 헌금을 정의의 구현과 사랑 실천에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한국 개신교가 맘몬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남을 심판하는 사람에게’ 경고하였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남을 심판하는 바로 그것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심판이 진리와 정의의 잣대에 따라 내려지리라고 사도 바오로는 경고했는데, 이 하느님의 심판은 최종적으로는 그들 각자가 죽은 후에 하느님의 법정에서 이루어지겠으나 그전에 그들 각자의 양심이 내리는 심판으로부터 시작해서 민심의 심판이 있고 역사의 심판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시 법은 양심의 최소한입니다. 


각자의 양심에 새겨진 하느님의 법 중에서 최소한의 규범을 정한 것이 세상의 법이고, 이 법을 제정하는 기준은 사람들이 각자의 양심에 따라서 그리고 문명사회를 건설하는 가운데 합의한 자연법입니다. 하느님의 법과 양심법, 자연법과 세상법 모두 사람들이 죄를 짓지 말라고 그어 놓은 경계선입니다. 그래야 사회가 편안할 수 있고 사람들이 죄를 짓는 대신 사랑을 향하여 나아감으로써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지켰다고 해서 인간의 도리를 다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고 그것은 최소한의 도리만 행한 것이며, 세상에서 저질러진 죄를 통해서 오히려 행해야 할 사랑을 깨달아야 인간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법을 운용하여 죄인들을 처벌하고 단죄하는 직업이 판검사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습득한 법률 지식과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죄를 저질러도 현행 법률상으로는 아무도 그를 단죄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저지른 죄를 수사할 수 있는 권한에다가 수사되어서 죄를 저질렀다고 판단되는 죄인을 재판에 기소하는 권한은 검사에게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재판 역시 현행 법체계상 삼심제도가 있어서 한 판사가 잘못 선고를 해도 법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세 번의 기회가 있기는 하지만 법률을 잘못 적용해서 억울한 사람을 죄인으로 판단하거나 괘씸죄가 판사의 마음에 작용해서 피고인을 무리하게 선고하더라도 정작 그 판사는 아무런 처벌이나 제재를 받지 않습니다. 


신앙인의 선행은 악인들이 저지르는 죄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민심과 역사의 재판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이고, 사도 바오로 역시 로마 시대의 법률가들에게 심판의 언어로 오늘 독서에 나온 편지를 공개적으로 쓴 것이며, 예수님의 바리사이 불행 선언도 그래서 하신 말씀입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지는 진노와 계시의 날에 쏟아질 진노를 쌓고 있는’ 한국의 판검사들에게도 적용되어 마땅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불행 선언과 사도 바오로의 심판 언어를 따라서 신앙인들이 해야 할 심판의 역할은 악을 고발하고 선을 선포함으로써 민심의 심판을 선도하고 역사의 심판에 기준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선행은 악인들이 저지르는 죄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악과 죄를 정조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비단 행위만이 아니라 생각도 말도 그렇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선을 선포하고 악을 고발하는 것이 우리의 심판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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