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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모는 왜 우리말로 철학하기를 강조했을까
  • 이기상
  • 등록 2019-10-21 10:4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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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현대 철학과 류영모


얼마 전에 나는 큰 책방에서 철학책들을 훑어보다가 『한국철학의 흐름』이라는 책이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으로 집어 들었다. 그러나 흐뭇한 기분도 잠시 차례를 읽어 내려가던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철학의 전체적인 흐름을 다루고 있다는 그 책이 마지막으로 다룬 사상가가 다산 정약용이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1762년에 태어나서 1836년에 명을 달리한 사상가이다. 그를 끝으로 하여 한국철학의 흐름은 멈추었다는 이야기다. 이 얼마나 황당한 주장인가? 한국철학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끝나버렸다는 이야기다. 


독일을 예로 든다면 마치 헤겔(1770〜1831)을 끝으로 독일철학이 끝났다는 주장과 비슷하다. 아니 그 예도 충분치 못하다. 헤겔이 독일 관념론의 철학자로 통하는 것은 그가 독일어로 사유하고 독일어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하면 정약용은 한 권도 자신의 사상을 한글로 써서 펴낸 적이 없다. 서양에서의 근대 사상가들이 한결같이 라틴어가 아닌 그들의 지방어인 민족어로 사유하고 글을 썼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정약용을 한국 근대 사상가로 분류하는 데에도 고려해 보아야 할 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철학을 시대의 자식이라고 하며 자신의 시대정신을 개념으로 잡는다고 말한다. 정말로 정약용 이후 이 땅에는 우리의 시대정신을 개념으로 잡은 사상가나 철학자가 없었다는 이야기인가? 지난 170년 동안 한반도에는 우리의 현실과 세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인간이 무엇인지, 세상이 왜 이렇게 급작스럽게 변했는지, 이 달라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으로 고민한 학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말인가? 지금이라도 우리 철학인들은 왜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이었으며 무엇인지, 20세기 들어서서 한국철학은 무엇을 했는지, 21세기 한국철학의 전망은 어떠한지 등을 심각하게 고민하며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독일어로 기술되지 않은 독일철학, 프랑스어로 쓰이지 않은 프랑스철학을 생각할 수 없듯이 우선 우리는 엄격히 우리말인 한글로 서술되지 않은 사상들을 ‘한국철학’으로 분류하는 데에는 조심해야 한다. 물론 신라, 고구려, 고려, 조선 등이 다 한국역사에 속하듯이 그 시대의 사상들을 넓은 의미에서 한국사상 또는 한국철학에 소속시킬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우리는 한국 고대 사상, 중세 사상, 근대 사상, 현대 사상 등의 시대구분을 하고 그 구분의 기준을 마련하고 그 철학적 독특함이 무엇인지를 규명해야 한다. 정약용을 한국 근대 사상가로 분류할 수 있는지, 어떤 근거에서 근대 사상가인지 논의해봐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언어와 사상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목하지 않고 한국에서 낳아서 자라 사상 활동을 한 사람은 모두 한국 사상가로 간주했고 단순하게 산 시기 또는 왕조를 염두에 두고 사상가들을 분류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20세기 들어서서 세계철학의 흐름 자체가 ‘언어’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언어를 철학의 핵심주제로 삼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보편 언어란 없고 언어는 모두 말하는 민족의 기억과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기에 사상을 표현한다는 철학의 언어도 어쩔 수 없이 그 시대 그 민족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철학은 어디 다른 곳보다도 한민족의 기억과 세계관을 담고 있는 한글말 속에 가장 잘 표현되었을 것이고 어떤 다른 언어보다도 한글말로 가장 맞갖게 기술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사상과 언어와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목하고 철학은 우리말인 한글로 해야 하며,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한글로 표현된 말과 글에서 우리의 세계관, 인간관, 신관을 찾아 해석해내야 한다고 주장한 사상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한국의 현대 사상가라고 불리기에 가장 적합할 것이다. 나는 주저 없이 그런 사람은 바로 다석 류영모라고 주장한다. 다석은 우리말 속에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보며 우리말을 통해 우리말 안에서 일반 민중들에게 말 건네 온 하느님[존재]의 소리를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아래에서 우리는 류영모가 20세기 한국의 현대철학자로서 손색이 없음을 입증해보기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 20세기 초 한국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어떤 문제 상황에 처해 있었고 그 당시 지식인들은 거기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자. 


20세기 초 서양철학의 위력


20세기 초 한국의 지식인들은 외래 학문인 서양철학을 어떤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한국에 서양철학이 수용된 시점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볼 때, 그 당시의 지식인들이 접한 서양철학은 그 다루는 주제와 내용에서 뿐만 아니라 주제를 다루는 방법에서도 기존의 학문과는 전혀 달랐다. 이 새로운 서양의 학문이 일본 학자에 의해 “철학”이라 불리는 것을 알고 이 땅의 지식인들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철학’이라는 낱말은 그 태생부터 서양철학을 지칭하기 위한 용어로 등장했다.


지난 100년 한국의 철학을 정리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제기되는 물음은 이런 것들이다. 2500년 나름대로의 문화적·사상적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자신들의 철학적 전통을 헌신짝 내버리듯이 내던져버리고 서양의 철학을 마치 익숙한 자기 것인 냥 ‘철학은 곧 서양철학’이라고 하면서 몰두할 수 있는가?


“한국에는 이미 전통 철학 사상이 있었을 터이고 실제로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도, 무슨 연유로 한국 사회에 낯선 사상이 유입되고 그것이 단지 호기심을 따라 소개되는 정도가 아니라, 전통 사상은 안중에도 없는 많은 사람들까지도 그것을 경쟁적으로 배워 익히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하게 되었는가?”


“한국 철학의 1세대들은 놀랍게도 ― 경성 제국대학을 졸업했건 아니면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건 간에 별다른 차이 없이 ― 서양철학을 전혀 낯설게 보지 않았다. 서양철학을 마치 자신들의 문제처럼 다루고 있다. 왜 그럴까 (…) 아마도 가장 신랄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정체성 착각’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체성 착각’은 심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 그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세계를 보는 눈, 인간 자신에 대한 이해, 삶을 이끄는 윤리규범 등이 밑바탕부터 전복되는 변혁의 소용돌이 속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닐 것이다. 


철학을 시대의 자식이라고 하지 않는가. 철학자는 그를 포함한 동시대의 인간[민족]이 처해 있는 시대상황과 분위기를 개념으로 잡아 이론적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사람 아니겠는가. 따라서 지난 100년 한국 철학을 정리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우리는 그 당시의 철학자들의 말과 글들에서 시대의 반영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서 우리는 당시의 달라진 세계인식과 인간의 자기이해를 통찰해야 하며 보다 나은 삶과 생활세계 건설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꿰뚫어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곧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진리 찾기’와 ‘자아 찾기’ 그리고 ‘세계 형성’의 유래이며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비친 서양철학의 새로움


▲ 상해 임시정부 시절. 사진 앞줄 왼쪽부터 안창호, 한치진, 백영엽, 손정도 (사진출처=한치진기념사업회)


한치진은 1936년 발간한 그의 『최신철학개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시대는 서양화한 시대다. 이런고로 현대 동양인의 인생관은 곧 서양의 그것이다.”


어떻게 철학한다는 지식인이 그 당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소위 ‘서양물’을 먹은 사람이라 당시의 세상을 너무 단순화시켜서 지나치게 일면적으로 평가한 것이고, 그래서 잘못된 판단이겠지 하고 그의 말을 무시해버려야 하는가? 이 태도 역시 일종의 사대주의로서 이번에는 중국이 아닌 서양을 모방해야 할 목표로 삼았을 뿐이라고 일축해야 하는가? 아니면 거기서 우리는 한 철학자의 진지한 세계인식과 자기이해를 읽어내야 하는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1세대 철학자들이 철학, 즉 서양철학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 아니라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는 사실이다. 달라진 세계를 제대로 보고 그에 올바로 대처해야 함을 깨달은 필연적인 대응태도였다는 점이다. 과거의 경직된 세계관과 인간관이 종국에는 나라를 잃는 아픔을 안겨주었다는 뼈아픈 각성 속에 세계가 어떻게 바뀌며 돌아가는지, 인간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자 한 실존적인 결단이었다. 그 대답을 철학이, 서양철학이 줄 수 있으리라 믿고 그것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양철학도 넓게는 동아시아의 유학이나 도학처럼 신, 우주[자연], 인간에 대해 다루고 있음을 이들 1세대 철학자들뿐 아니라 그전의 유학자들도 알고 있었다. 그 같은 주제에 대해 대답이 다른 것을 보면서 이전의 유학자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대개는 ‘윤리적으로’ 판단하며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일축하였다. 그러나 서양의 대포와 기선에 의해 ‘물리적으로’ 기선을 제압당하고 어쩔 수 없이 개항을 한 뒤에는 태도를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정신으로 서양의 문명을 대하며 배우려는 자세로 태도를 바꾸었다. 그런 과정에서 서양의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을 접하면서 서양의 힘이 단순히 물리적 힘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논리적으로[이치적으로]’ 깨닫게 된다. 무엇이, 어떤 점이 서양에게 동양보다 강한 힘을 주어 세계변화를 주도해나갈 수 있는 지도적 위치로 올려놓았는지를 곰곰이 따지며 헤아리게 되었다.


20세기 초 한국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발달된 문명이 합리적 과학적 세계관,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개인주의적 인간관, 우승열패·적자생존에 바탕한 사회진화론으로부터 자양분을 얻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것의 밑바탕에는 기초학문이며 원리학문으로서 철학이 놓여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접하게 된 철학에서 1세대 철학자들은 무엇보다도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방법에서 획기적인 새로움을 발견한다. 


한치진은 철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철학은 생활의 일반경험과 과학적 연구로써 얻은 모든 사실을 종합하고 이해하여 철학연구자의 심리적 욕구와 일치하는 합리적 세계관과 인생관을 작성하려는 지적 분투라 할 수 있다.”⑺ 


안호상은 철학함을 강조한다. 


“현실 안에 적고 큰 모든 것을 이와같이 보며 또 생각[思考]하여서 그것의 최후의 근본인 ‘참’을 찾으며[索] 알려 하는 것이 곧 철학적 사색이요, 또 ‘철학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노력의 결과며 결정이다. 노력의 희생을 거절하는 이는 결국 저 자신의 발전과 생존조차 거절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개인의 인격과 지식이라든지, 또는 인류의 문화는 결코 감 따듯이 따 온 것도 아닐뿐더러, 돌 줍듯이 주워 온 것이 아니며, 오직 사람의 노력으로 흘려진 땀과 눈물과 또 피의 결정체인 것이다. 어찌 비단 사람의 일만이 그러하리오. 자연 만물이 역시 끊임없이 움직이며, 꿈적이는 필연적 결과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는 동서철학의 통합을 모색해야 할 때


▲ 1883년 최초로 미국에 파견된 외교사절단 보빙사


우리는 최초의 철학자들이 서양철학에서 본 새로운 점을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겠다. 우선, 무엇보다도 그들은 전통적인 동아시아의 세계관이 동아시아 밖의 세계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럽까지 포함한 더 넓은 세계를 올바로 인식하고 해석하기에는 더 포괄적인 세계해석의 틀이 요구됨을 인정해야 했다. 그것이 우선은 동아시아인이 모르고 있는 서양철학을 배워야 할 이유였다.


다음, 그들은 유럽의 막강한 문명을 가능케 한 사상 또는 철학을 배워 동아시아인의 세계인식의 변화와 세계개조에 활용해야 함을 통찰한다. 그것을 당시의 학자들은 ‘근대주의’라고 이름하였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오랑캐라고 깔보았던 서양과 일본이 발달된 문화와 문명을 앞세우고 중국과 조선으로 밀고 들어온 역사적 현실을 설명해줄 수 있는 이론을 알아내야 한다. 그것을 그들은 ‘사회진화론’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다음, 세계개조와 역사전개의 주체는 결국 인간인데, 서양인들은 어떤 인간관을 가졌길래 동아시아가 생각하지 못한 변혁을 이루어냈는가?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개인주의가 그것임을 그들은 확신하였다. 


다음, 서양인들의 학문하는 방법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계량화된 관찰방법을 동원하여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사태에 입각하여 연구 조사하는 실증적인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론적으로 납득이 될 때까지 모든 것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비판적이고 논증적인 학문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전통의 권위에 얽매여 있지 않고 정통성의 확보에 주력하지 않고, 보다 나은 삶과 살기 좋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모든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고 해석하려는 미래지향적이고 창의적인 태도를 높이 사는 학문정신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수용과 배움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한 세기가 지났다. 이제 이 땅의 철학자들은 거꾸로 서양 철학자들의 좁은 세계관, 인간관, 가치관을 깨우쳐 주고 그로써 자기파멸의 나락으로 돌진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동서철학의 통합을 모색하는 <지평융합의 철학>을 시도하고 있다. 


이제 시야를 돌려 20세기 지구촌의 철학적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자.


▶ 다음 편에서는 ‘언어, 20세기의 화두’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지난 편 보기


한국 사상이나 철학에서 다산 정약용을 마지막 사상가로 소개한 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김재영, 『한국사상 오디세이』, 인물과사상사, 2004; 민병수 외, 『한국사상』, 우석출판사, 2004;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상연구소 편, 『자료와 해설 한국의 철학사상』, 예문서원, 2001.


 우리는 오늘날 한시(漢詩)로만 시를 써서 발표한 시인을 엄밀한 의미의 한국현대시인으로 분류할 수 있겠는가. 


 지은이는 이 주제에 대한 글을 모아 출간하였다. 참조 이기상, 『서양철학의 수용과 한국철학의 모색』, 지식산업사, 2002.


 백종현, 『독일철학과 20세기 한국의 철학』, 철학과현실사, 1998, 16.


 강영안, 『우리에게 철학은 무엇인가. 근대, 이성, 주체를 중심으로 살펴본 현대 한국 철학사』, 궁리, 2002, 9.


 한치진, 『최신철학개론』, 조선문화연구사, 1936, 219.


 한치진, 『최신철학개론』, 조선문화연구사, 1936, 2.


 안호상, 『철학강론』, 동광당서점, 1942, 16.


  참조 안호상, 앞의 책, 14/5.



덧붙이는 글

이기상 교수님의 ‘허무주의 시대와 영성 - 존재의 불안 속에 만나는 신(神)의 숨결’은 < 에큐메니안 >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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