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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 속 ‘너’가 되어 광주에 서 있어야했다
  • 7지구 청년회
  • 등록 2019-10-25 16:03:23
  • 수정 2019-10-25 16: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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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7지구 청년연합회 공모전 수상작품입니다. 7지구 청년연합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와 세월호 월례미사에 참여하고 가톨릭 사회교리 모임을 꾸리는 등 천주교회의 사회참여를 모색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저는 40년의 인생 계획을 짰었어요. 첫 20년은 외과 의사이자 과학자로, 마지막 20년은 작가로 살 생각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마지막 20년에 들어서게 됐으니, 어떤 계획을 세워야 할지 난감하네요.”

... (중략)...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면 쉬울 텐데요. 2년이 남았다면 글을 쓸 겁니다. 10년이 남았다면 수술을 하고 과학을 탐구하겠어요.” -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될 때』 중


『숨결이 바람될 때』는 폴 칼라니티의 에세이이다. 신경외과의사로 승승장구하던 30대 중반의 주인공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암을 알게 된다. 위의 말은 이미 암이 말기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주인공이 던진 말이었다. 삶에 대한 미련과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막연한 일인지 말하는 것인 것 같아 저 문장이 유독 무게감 있게 느껴졌었다. 


나는 내일을 모른 채 오늘을 살아가지만, 나의 삶의 마지막 날을 내일로 그리며 살지는 않는다. 초보 운전 딱지를 야광으로 사서 야무지게 붙이고서 도로 위에 내 목숨을 내어놓고 엉금엉금 달리던 오늘도 내 삶의 마지막 날을 오늘이거나, 내일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80살이 되어 할머니가 된 나에 대한 막연한 그림과 지금으로부터 5년 후의 삶을 향한 번뇌를 가슴에 품고 여전히 사춘기처럼 하루를 살고 있다. 어느 날 내 삶의 끝이 가까이 왔음을 느꼈을 때,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서 폴 칼라니티의 문장이 생각난 것은 두 책이 인간이 지니는 실존의 가치와 죽음의 가치를 동시에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었다. 두 책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 종내에는 경험할 죽음 안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 ‘하느님께서는 개개인을 어떤 도구로 쓰고 싶으셨던 것일까?’하는 것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책을 덮고 책이 준 철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질문들에 대한 나름의 답을 생각해보다가도, 이 질문들은 답을 찾지도 못한 채 일상의 사소한 문제 앞에서 질문들은 이내 흩어지고 만다. 그보다는 오늘 저녁 먹을 메뉴로는 매콤한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요리가 나을지, 구수한 된장 베이스의 요리가 나을지의 고민이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 앞에서 나는 하느님을 자주 잊는다. 그리고 기억해야할 역사도 자주 잊는다. 이번에 책을 읽으며 잊고 있던 질문들, 그리고 그것과 엮여 생각나는 나의 삶의 이야기들, 그리고 늘 침묵하셨던 하느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 『소년이 온다』, 7p


비가 올 걱정을 하며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가가 ‘너는’이라는 지칭으로 나를 콕 집어 이 이야기 속에 세우는 순간부터 나는 이야기 속 ‘너’가 되어버렸다. 그 덕택에 옴짝달싹 할 수도 없이, 숨소리를 함부로 내지도 못하며 나는 광주에 서 있어야했다. 


▲ ⓒ 가톨릭프레스 자료 사진


작가가 ‘너의 친구’를 죽였기 때문에 그렇게 나의 친구가 된 정대가 죽는 것을 나는 지켜보았다. 왜 시작되었는지 모르는 총성 속에서 나는 고꾸라지는 나의 친구를 두고 집으로 도망쳐 왔다. 정대의 죽음과 함께 동호의 삶이 이전과 같을 수가 없었고, 내 마음도 그 충격 속에 균열이 생겨버렸으므로 나는 잔뜩 삐뚤어져 하느님께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느님, 왜 그러셔야 했어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 아니신가요? 자비의 하느님이시라면서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두신 거예요! 하느님은 계시기나 한 거예요?!! 하느님 눈엔 이 아이가 안 보이시나요?”


내가 하느님께 이렇게 대든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는 특수교사이다. 그리고 내 학생의 고단한 삶의 처지를 방관하시는 하느님을 자주 만났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지적장애학생으로 인지적 어려움을 지니고 있는 학생인데, 이 학생은 편모 가정에 가난한 가정환경과 어린 나이에 판정 된 말기 암까지 지니고 있었다. 수술 후 통원치료 기간 중 가정에서의 잘못된 돌봄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이를 보며 제도적 차원의 보호를 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의 무력함과는 반대로 학생의 상황은 나빠졌고, 알콜 중독에 빠져있는 어머니와 어머님 남자친구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가 날 향하면서 나의 무력함은 더 크게 드러났다. 나는 그 학생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의 신변에 위협을 느껴 무서움에 떨어야했다. ‘전능의 하느님은 어디에 가셨나요? 지금 하느님 눈에는 이 학생이 보이지 않고, 하느님의 귀에는 나의 기도도 들리지 않나요?’ 원망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두신 하느님이 또 동호와 정대를 그렇게 가만히 두신 것 같아 나는 하느님께 더럭 화가 다시 났다. 이건 하느님의 직무유기이다. 내가 청년 성서모임에서 배웠던 하느님은 대체 어디로 가셨는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으로 창조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빼내어 약속 된 땅을 향해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셨던 희망의 하느님께서 지금은 영원한 잠에 빠져 계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하느님을 나는 원망했다.


죽음. 내가 존재에 대하여 생각할 때, 죽음을 가장 마지막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작가는 내가 주목하지 않았던 주검이 가는 곳을 뒤쫓도록 이끌었다. 시체에서 멀어질 수 없는 중3 정대의 혼. 그 혼의 시선으로 써 내린 죽음 이후의 과정은 그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무지하다.


내가 이해하고, 이해하려 애쓰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고통은 일부일 뿐이었다. 문득 ‘하느님은 아실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아픔을 알고 지켜보고 계신다던 하느님은 내가 몰랐던 이 고통까지도 다 읽어주고 계셨을까……. 


문득 하느님은 정대의 옆에서, 정대의 뒤에서 정대를 위로하며 서 계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망을 잔뜩 하다가 그렇게 ‘하느님은 알고 계셨을 거야. 하느님은 그런 분이니까…….’라며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셨을 것이라는 확신이 밀려왔다. 내가 또 자만했구나 싶었다. 하느님은 나보다 더 아파하고 계셨을 텐데 나는 하느님께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외면 받은 것처럼 느껴져 떠올리기만 해도 힘들었던 나의 학생을, 수많은 정대들을 곁에서 지키시며 나 따위는 상상도 못할 그 아픔까지도 함께 지켜보셨을 텐데 나보다 먼저 그 곁에 서 계셨을 하느님을 보며 다짜고짜 따지고 들었으니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 ⓒ 가톨릭프레스 자료 사진


하느님께서 함께 아파하심에도 역사는 동호를 죽였다. 탈출기에서 보았던 파라오의 완고한 마음이 1980년 한국에서도 이어져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광주에서 시민군은 패배했다.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 땅의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도 패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동호가 죽고, 살아남은 은숙이 누나가 고문을 받으며 그렇게 나의 희망도 한탄과 탄식 속에 사그라들어 버렸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2019년 민주국가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선택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목소리 내어 말하면서 민주주의의 보호아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나를 힘들게 했던 그 학생은 치료를 잘 끝냈고, 졸업 후 장애인 보호 작업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일하며 출퇴근하는 삶을 살고 있다. 졸업한지 반년쯤 지난 며칠 전에는 그 학생이 일을 정말 잘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을 수 있었다. 


나의 희망은 죽음과 고문 속에 흩어졌는데 하느님의 축복은 이어져 지금 이 순간을 살게 한다. 이럴 때에는 내가 딛고 있는 이 땅과 숨결 안에서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마주하는 것만 같아 가슴이 벅차 나도 모르게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치게 된다.


광야 속에서 정화의 과정을 거쳐 거듭난 이스라엘 백성처럼 나의 어리석음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또 회개하며 하느님께 돌아가 하느님의 자비로움 안에서 살겠노라는 다짐이 생겼다. 이 모든 것들은 나에게로 온 소년들을 통해 견고해진 것들이다. 이 감사를 외치기까지 민주주의를 옹호한 이들이 있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자신의 양심과 생명을 구하는 일을 선택한 이들이 있었으며, 떠올리기 싫었던 그 날을 용기 내어 읊은 이들이 있었고, 역사 속 한 줄의 사건에 얼마나 수많은 이야기와 생명이 담겨있는 지 절절하게 그려낸 이들이 있었다. 


‘나는 있는 나다.’ (탈출3,14)


인간의 역사 속에서 실존하시고 현존하시며 우리와 항상 역동적인 관계를 맺으신다던 하느님의 자기소개를 기억한다. 1980년의 그 날에도, 나의 학생이 아팠던 그 날에도, 그 때문에 괴로워 삿대질하며 따졌던 나의 날에도 늘 하느님이 함께 계셨음을 이제야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때 나는 내가 특수교사임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정의를 위한 일을 하며 인정도 받고 돈을 벌 수 있음에 감사했고, 그 감사에 취해있었다. 그래서 나는 장애 학생의 권리에 대한 목소리를 귀찮은 것으로 여기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진심을 다했고, 온갖 방법을 구안해 내곤 하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그 모든 것들이 시들해지고 있었다. 내 스스로가 전투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양쪽을 조율하는 지혜는 이제 닳고 닳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늘 옆에 존재하는 완고한 사람들이 불편해지고, 그리고 그 틈새로 보이는 장애학생들은 버거웠다. 그러면서도 내 안의 양심은 하느님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었다. 나는 동호와 정대와 은숙이 누나를 비롯한 사람들의 수혜를 입고 태어난 사람이니까. 또 내 직업의 본질은 하느님의 자비를 닮았으니까.


그러던 중 오늘 미사 강론 시간에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은 내 양심의 소리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었다.


“회개는 시선을 돌려 하느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비는 회개를 통해 찾아가고 깨닫는 것이지요.”


부족하고 나약한 내가 또 나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끌어가려 했었나보다. 이제 다시 그 주도권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릴 때가 왔나보다. 이제 다시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힘을 청하고, 지혜를 청하며 다시 되돌아가야겠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맞나 싶게 한여름의 국지성 소나기가 계속되던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사진을 보내왔다. 무지개 사진이었다. ‘희망의 상징!’, ‘하느님의 약속!’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고심치 않고 머리보다 손가락이 더 먼저 보낸 것 같은 답장이었는데 그 답장을 받고 친구가 몹시 좋아하였다. 비가 쏟아질까 걱정되는 그런 날이면 무지개 사진을 꺼내어 보려한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소설의 시작에서 비를 걱정하던 동호에게도 무지개 사진을 보내주고 싶다. 자비로운 삶의 선택과 죽음이 일궈낸 희망에 대한 고마움까지도 정성껏 담아 보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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