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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오늘날의 공자, 노자, 장자가 되어보자 - [이기상-신의 숨결] 동서통합의 영성 철학자 류영모 ⑤
  • 이기상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1-11 14:32:44
  • 수정 2019-11-11 14: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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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의 독특함, ‘통합적 사고방식’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는 시대적 상황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철두철미 서구화되었다. 이제는 서양 것이 더 이상 서양만의 것이 아니다.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 것이 되어버렸다. 그러기에 충효나 옛 것을 고집하여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역사, 전통, 문화 속에서 다원주의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삶의 논리나 문법을 가지고 현대의 인류가 더불어 함께 살아 갈 수 있는, 인류의 문화를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바로 그 점에서 다석이 무언가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통합적인 사고방식이 한국사상의 독특함이며 현대 사상계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한국 사상에 희망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서서히 은근하고 끈기 있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통합능력이다. 한국 음식 가운데 많은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비빔밥이라고 한다. 외국인들은 그것이 매우 한국적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21세기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 한국이 놓여 있는 서구문명의 충격 속에서 우리 것을 모두 버리고 서양 것을 배우자고 따라 나섰던 많은 사람들과 서양 오랑캐들이라고 그들을 무조건 배척하고 우리 것만을 고집하던 사람들, 이 둘을 어떻게 조화롭게 살려 나갈 것인지를 고민해온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았다. 그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수운 최제우와 다석 류영모를 우리는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류영모는 공자의 말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따르라고 하지 않았다. 공자에서 잘못된 것은 여지없이 비판하고 장자, 노자, 불교, 유교,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우리 것으로 만들 것은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가였다. 류영모는 우리 것을 찾아 유불선 기독교를 섭렵하면서 그것들을 씹고 또 씹어 잘 소화시켜 우리 것으로 만들어내려 하였다. 20세기 한국의 사상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은 다석뿐이다. 제도권에서 그나마 통합적인 사고를 하려 노력한 사람으로는 열암 박종홍이 있다. 그런데 박종홍은 박정희 정권 때 국민교육헌장을 만들어 정치 이데올로기의 선봉에 선 것 때문에 그 빛이 바랬다. 그렇지만 지금 철학계에 박종홍과 같이 통합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에는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그가 가지고 있었던 치열한 문제의식은 우리가 배워야 한다. 그 문제의식을 우리가 배워 다시 한 번 주체적이며 통합적으로 사유하려 노력할 때 수입상이나 고물상이라는 자조 섞인 비아냥을 면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우리 것을 찾아 살릴 수 있을 것이고 찾아낸 것을 가지고 세계시장에 내 놓을 수 있는 사상과 철학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의식과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무엇인지, 우리의 전통 속에서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진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주의 깊게 연구하고 살펴 그런 진주들을 하나씩 찾아내어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끈을 만들어야 한다. 구슬이 아무리 많아도 그대로 방치한다면 아무 소용없다. 우리의 역사, 문화, 전통 속에는 영롱한 진주가 많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내어 하나의 실로 꿰어내야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에게는 바로 그 실끈이 없다.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실끈을 들고 나오는 사람은 거의 항상 서양사람이다. 서점에 가 보면 노자, 장자, 공자, 기독교에 대해 나온 책뿐만 아니라 우리의 ‘양반’에 대해 쓴 책마저도 잘 나가는 책들은 모두 외국학자들이 쓴 책들이다.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우리가 그 끈을 찾아서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할 생각은 하지 않고 눈이 벌게서 어디 쓸 만한 것은 없나 찾으려 대들기만 하기 때문이다. 감나무를 심고 가꾸어서 훌륭한 감을 수확한 뒤 그것으로 좋은 곶감을 만들어낼 생각은 않고 다 된 곶감만을 찾아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어려움을 자초해야 한다. 어떤 끈으로 진주를 꿸 것인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세상은 지금 그런 끈을 얻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상가의 끈


세계를 알아야 우리 자신도 제대로 알 수 있다. 세계의 문제가 무엇인지, 서양의 지성인들은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얼마나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잣대, 그들이 제시하고 있는 끈은 무엇인지를 알아내어, 우리도 세계가 필요로 하는 끈을 만들고 우리의 구슬을 꿰어 세계 문화시장에 내놓아야 한다. 


▲ 다석 류영모와 부인 김효정


이렇게 우리가 놓여 있는 세계의 문제점을 풀기 위해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해결책을 찾아 고민하기 시작한 사람이 바로 다석 류영모다. 우리의 문제를 생각되는 대로 내버려두지 말고 우리의 상황과 미래를 내다보면서 깊이 그리고 끊임없이 생각하면 무언가 좋은 생각이 날 것이다. 이 ‘나는’ 생각을 얼개로 엮어내야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것들을 낱낱이 구슬로 판다면 별 이득이 없다. 서양인들은 그 구슬들을 재료로 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우리에게 되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것을 다시 사들여서는 마치 우리 것인 것처럼 착각하여 뽐내고 자랑하며 다닌다. 


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통합적인 사고인데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통합적인 사유를 한 사람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다 보면 그 안에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통합적인 사유를 시도하는 학자들은 꽤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사상에 대한 관심을 빌미로 공자와 노자를 다시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공자와 노자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날의 공자나 노자다. 


다석은 바로 그 스스로 오늘날의 공자, 노자, 장자가 되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그는 통합적인 지식과 사유를 단순히 나열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서 드러내고 다양한 글 속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것이 다석이 가지고 있는 위대함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다석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다석이 좋아한 사람은 간디와 톨스토이였다. 간디는 당시 인도에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국민들의 호응을 받으며 인도를 하나로 묶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다석은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하늘과 소통함에만 관심을 두었던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상가였다. 그는 동서양의 고전들을 두루 읽었지만 어떤 경전에도 독점적인 진리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 다음 편에서는 ‘현대의 정신사적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지난 편 보기





[덧붙이는 글]
이기상 교수님의 ‘허무주의 시대와 영성 - 존재의 불안 속에 만나는 신(神)의 숨결’은 < 에큐메니안 >에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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