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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이들과의 협력과 약한 이들과의 연대 - [이신부의 세·빛] 미나의 비유, 통공의 신비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11-20 15:08:35
  • 수정 2019-11-20 15: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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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수요일 : 2마카 7,1.20-31; 루카 19,11ㄴ-28



우리의 삶이나 일에서 중요한 목표 중의 하나는 끝을 항상 의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 제자들에게도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삶이 장차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지에 대해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미나의 비유로 가르치셨는데, 그 핵심은 통공의 신비에 담겨 있습니다. 


마태오가 전해준 탈렌트의 비유처럼 루카가 전해주는 미나의 비유도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공통 결론으로 끝납니다. 영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현상인 셈입니다. 우리가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질책을 면하려면, 우리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능력과 기회와 시간 모두를 활용하여 좋은 결과를 내야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능력을 계발하고 기회를 선용하며 시간을 아껴서 써야 합니다.


이 능력 계발과 기회 선용과 시간 절약의 모든 노력은 현세에서 우리가 선한 이들과 협력하고 약한 이들과 연대하는 통공에서 발휘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내세의 영원한 생명으로 받게 될 상급에서 아직 현세에 남아있는 이들이 그 같은 노력을 잘 발휘하도록 전구해 주고 보호해 주는 재량과 범위와 능력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 전구와 보호 역할이 천상에서 현세에 남아 있는 이들과 통공을 이룰 수 있는 상급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리코에서 자캐오를 만나셨습니다. 그 때, 낙타가 바늘구멍을 빠져 나가는 것이 차라리 쉬울 정도로 도저히 회개하기 어려울 것 같았던 부자가 화끈하게 회개하는 장면을 겪으시고는, “나는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10)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자캐오말고도 그와 같이 회개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들을 더 구원하실 것임을 암시하신 터에 그 장소가 예루살렘에 가까운 예리코였고 또 그 때가 파스카 축제가 임박한 무렵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기대해왔던 대로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화려하게 입성하시고 하느님 나라의 왕권을 보란 듯이 행사하시지 않을까 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품고 있던 이러한 기대, 즉 현세적 메시아니즘이 잘못되었으며, 메시아의 역할은 당신 혼자서 완성하시는 것이 아니며 메시아적 백성을 통해서 완성하시는 것이고, 그 완성에의 길은 역사 안에서 끝없이 지속되는 것이라는 이치를 깨우쳐 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비유의 가르침에서, 하느님 나라의 왕권은 종들의 활약을 기다려 행사됩니다. 따라서 문제의 초점은 왕권이 언제 행사되느냐에 달려 있지 않고 임무를 맡은 종들이 얼마나 충실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 각기 한 미나씩의 임무를 맡았지만, 열 미나나 다섯 미나를 벌어들인 종들은 그들이 입증한 능력과 선용한 기회와 절약한 시간의 노력에 걸맞는 역할을 부여받을 것이며 왕권은 종들의 이 역할에 의해서 앞당겨지거나 늦추어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메시아의 왕권은 예수님에게가 아니라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노력 여하에 달려있는 셈이라는 뜻이고, 이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역사적 책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 이야기를 루카가 매우 우의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입성 후 벌어질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가 최종적으로 도래하고 예수님께서 심판관으로서 왕권을 행사하실 사건으로 알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종들은 사도들이며 사도직을 수행할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고 종들이 벌어들인 돈과 이자는 선교 활동의 성과를 뜻하고, 그에 따라 받은 상급은 내세 천국에서 현세와 통공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모든 성인의 통공’이라는 진리는 현세의 믿는 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할 협력과 약한 이들을 향해 이루어져야 할 연대를 통해 나타나는 통공에 역점이 놓여 있기는 하지만, 이 현세의 통공은 내세 천국에서 현세에 보내오는 통공에 의해서 뒷받침됩니다. 역사의 진보는 현세에서 분투노력하는 이들에 의해서만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미리 노력하여 천국에 들어간 성인들의 전구와 보호 노력에 의해 이끌리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현세를 사는 동안 ‘한 미나로 많은 미나를 벌어들인 이들’은 죽어서 천당에 들어가 자신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은 물론이고, ‘열 고을이나 다섯 고을을 맡아 다스리듯이’ 현세에 남아 선행을 실천하며 악과 싸우고 있는 성도들을 맡아서 천사로서 도와줄 역할을 하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현세적 통공의 노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영적인 통공’이라는 신앙 진리의 현실을 계시해 주는 메시지가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어주리라”고 예수님께서 교회에 위임하신 바에 따라서 교회는 현세에서 공을 세운 이들의 행적을 엄정하게 심사하여, 복자/복녀, 성인/성녀로 세웁니다. 전례에서 이들을 공경하는 범위는 각기 다릅니다. 이러한 시복시성제도는 ‘미나의 비유’에 근거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즉, 현세에서 세운 공로가 클수록 현세의 신자들과 통공할 수 있는 ‘관할범위’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지상 생애 동안에 능력을 계발하고 기회를 선용하며 시간도 절약하여 선한 이들과의 협력과 약한 이들과의 연대로 현세적 통공에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언젠가 우리도 천상에서 새롭게 부여받은 더 큰 역할로 그 일의 열매를 알차게 맺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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