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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 가난한 교회
  • 이기우
  • 등록 2019-11-25 10: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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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4주간 월요일 : 다니 1,1-6.8-20; 루카 21,1-4



한국 천주교회는 1985년부터 해마다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간을 ‘성서 주간’으로 정하여, 신자들이 일상생활 중에 성경을 더욱 가까이하며 자주 읽고 묵상하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올해 성서 주간의 첫 날입니다. 


오늘 복음은 매우 가난한 과부가 하느님께 바친 헌금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말씀입니다. 그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에, 액수로는 얼마 안 되지만 부자들이 넉넉한 가운데에서 조금 떼어 바친 더 많은 액수의 헌금보다 더 많이 넣은 셈이라시면서 칭찬하셨습니다. 헌금의 양보다 질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액수보다 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겠습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우리가 벌어들인 소득 중에서 어느 정도의 비율로 하느님께 바쳐드려야 적당한가에 대해서 성경은 1/10을 말합니다. 자기 소득의 1/10은 자기를 위해서 쓰지 말고 하느님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십일조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본시 구약성경에서 십일조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토지를 분배받지 못하고 성전에서 봉사할 직분을 받은 레위 지파를 위해서 나머지 열한 지파가 내야 했던 헌금이었습니다. 제정일치사회였으니까 이 헌금은 곧바로 세금과 같았습니다. 신명기 14장에 보면, 열한 지파의 백성은 한 해에 거둔 소출 가운데 1/10을 바치고 나머지 9/10로 생활을 했으며, 이렇게 하여 모인 십일조 기금에서 9/10는 레위인들에게 나누어주고 1/10은 사제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나와 있습니다(신명, 14,22-23.28-29). 


지금은 제정일치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이 십일조 규정을 문자 그대로 우리 현실에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신자들은 국민된 의무로 국가에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금도 소득에서 직접 공제하는 직접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간접적으로 내는 간접세도 있습니다. 세금 이외에도 뜻있는 일을 하는 단체에 기부를 하거나 정기적 후원을 하는 돈도 나갑니다. 그리고 신자된 도리로 교회를 통해 하느님께 바치는 봉헌금이 두 종류가 있습니다. 세대 단위로 보통 월별로 바치는 교무금과 주일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신자 개인이 바치는 헌금입니다. 성경의 정신은, 이 모두를 합해서 1/10을 쓰면 합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자들의 헌금과 교무금을 받은 교회로서도 십일조 정신과 가난한 과부의 정성을 본받아야 함은 물론입니다. 신자들이 하느님께 바친 돈을 다시 하느님의 뜻대로 잘 써야 합니다. 교회는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들어온 총 수입의 1/10 이내에서 자기 유지비를 사용하고, 나머지 9/10는 가난한 이들과 복음선포를 위해서 하느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의 정신입니다. 사회에 설립된 공익단체들도 수입의 1/10 이내에서 자기 유지비로 쓰고, 나머지 9/10는 설립 목적대로 사회의 공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수입의 1/10을 하느님께 바쳐 드려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일을 할 수 있는 육체와 정신, 일할 기회, 일에 쏟는 재능이나 기술 등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바친다고 하지만 사실은 하느님께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일을 해도 수입이 너무 적어서 먹고 살기에 가난한 사람들, 또 모두가 뜻을 모아 살려야 하는 공익적인 사업 등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세상이 더 공평해지도록 하기 위해서 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혜택은 우리 자신들이 입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느님께 바쳐 드려야 하는 것은 일해서 벌어들인 돈만이 아닙니다. 시간과 재능, 기회와 경험 등 돈보다 더 귀하게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것들도 십일조 정신으로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마땅합니다. 사회의 공익과 공동체를 위해서 시간과 재능, 기회와 경험을 서로 나누어야 세상이 공평해지고 밝아집니다. 


개인이나 집단이나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면 그 뜻이 드러납니다. 시간이나 재능, 기회와 경험 등도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는 데 인색한 자들에게 성경은 매우 엄격하게 질책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악의 뿌리라고 티모테오에게 권고하였고(1티모 6,10), 예수님께서는 얼마를 벌고 모았는지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얼마를 썼는지를 보고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25,40).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여 주교단을 만난 자리에서 ‘번영하는 교회가 되지 말고 가난한 교회가 되십시오’ 라고 당부한 뜻도 여기에 있습니다. 교세를 늘리고, 조직을 키우며, 건물을 많이 지어서 대형화, 대규모화되라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이 하느님께 바친 돈을 쌓아두지 말고 하느님의 뜻대로 가난한 이들과 복음적인 뜻을 위해 잘 쓰고 나누어서 가난한 교회가 되라는 뜻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가난한 교회의 모범입니다. 가난한 교회가 된다는 것은 부자들이나 중산층을 멀리하거나 가난한 이들만 모인 교회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얼마를 벌었든지 상관없이 정성껏 나누어서 가난해진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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