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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 91세로 별세
  • 끌로셰
  • 등록 2019-12-06 18:04:17
  • 수정 2019-12-12 14:5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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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PA


지난 2일(현지시간), 칼 라너의 제자이자 그리스도교의 실천적 측면을 강조하는 정치신학을 주창하고 해방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 신학자 요한 밥티스트 메츠(Johann Baptist Metz)가 뮌스터에서 91세로 세상을 떠났다.


메츠는 1928년 독일 아우어바흐에서 출생하여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에 독일군에 징집되어 전쟁에 참여했다. 


그는 미군에게 포로로 붙잡혔다가 7개월 후 독일로 돌아와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1951년 하이데거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54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이후 메츠는 칼 라너의 지도 아래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에 관련된 논문으로 1961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메츠는 35세에 유럽의 유능한 신학자들이 거쳐간 뮌스터대 가톨릭 신학부 기초신학 정교수에 임용될 만큼 유능한 신학자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자신이 전보를 전하고 소속 부대로 돌아왔을 때 동료들이 모두 죽어있는 모습을 보았던 메츠의 전쟁 경험은 그의 신학 연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63년부터 독일 뮌스터대 가톨릭 신학부 기초신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홀로코스트 신학’(Holocaust theology)을 제창하여 고통 받은 이들에 관한 종교와 신학의 역할에 대해 연구했다. 


이에 대해 메츠는 “아우슈비츠는 신학이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던 참극이었으며, 그리스도교에 관한 담화의 모든 신학적 근거를 깨부수는 참극이었다”(『Memoria passionis. Ein provozierendes Gedächtnis in pluraler Gesellschaft』(고통의 기억 - 다원주의 사회에서의 위험한 기억), 2006)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호르크하이머나 아도르노, 하버마스의 철학적 개념을 신학 연구에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이후 메츠의 신학은 라틴 아메리카의 해방신학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칼 라너의 제자였던 메츠는 자기 스승의 초월론적 방법론에 입각한 신학과 거리를 두고 그리스도교의 실천에 바탕을 둔 ‘정치신학’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늘 내 안에서는 정치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하느님의 문제가 떠올랐다”며 “이는 하느님에 관한 담화는 부당하게 고통받는 이들, 우리 역사 속 패배자들의 구원을 위한 호소의 울부짖음이다”(Ibid)라고 정치신학의 단초를 설명한 바 있다.


그가 위르겐 몰트만과 도로테 죌래와 함께 주창한 ‘정치신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사유화에 대한 경고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이라는 개인과 하느님의 관계나 개인의 행동양식이라는 개인주의적인 차원으로만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메츠는 성체성사에서 ‘기념’을 뜻하는 아남네시스(anamnesis)와 연관된 ‘위험한 기억’이라는 개념을 강조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위험한 기억’,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유라는 위험한 기억’, ‘고통이라는 위험한 기억’ 등의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특히 메츠는 이러한 사실들을 단순히 기억하는 행위는 위험하지만, 이러한 ‘위험한 기억’ 자체는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는 기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메츠는 이러한 위험한 기억들이 실천으로 옮겨질 때만 큰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기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르주아적 그리스도교’라고 부르며 교회의 복음이 부르주아적 종교와 엮이게 되면서 신뢰를 잃게 되었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츠는 칼 라너, 이브 콩가르, 한스 큉, 구스타보 구티에레즈, 에드워드 쉴레벡스, 앙리 드 뤼박 대주교와 같은 유럽의 대표 신학자들과 함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학적 유산을 해석하고 알리고자 콘칠리움(Concilium)이라는 신학 학술지를 창간하기도 했다.


메츠는 철학, 신학적으로 매우 열린 자세를 견지했다. 특히 발터 벤야민 뿐만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학파 학자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004년 하버마스와 당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이었던 라칭거 추기경(베네딕토 16세)의 공개회담 진행자를 맡기도 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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