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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있는 동안에도 ‘주님의 날’을 살았다고 고백할 수 있을까?
  • 강세희
  • 등록 2020-04-16 11:15:37
  • 수정 2020-04-16 11: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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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코로나19와 한국교회’입니다. - 편집자 주



3월의 첫 예배를 앞두고 하얀 마스크 뒤로 물러나있던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지난달 말에 교회로 도착한 한국기독교장로회 목회서신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수칙과 권고사항들이 열거되어 있었다. 첫 번째 항목은 이렇게 쓰였다.


‘1. 주일성수에 힘쓰되 그 외 각종 모임, 소그룹 활동, 행사 등을 일시중단하거나 자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사회적으로 만연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반가운 인사로 서로 악수하는 것을 지양하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얼굴을 바로 마주하거나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괜히 서로에게 불편감을 남겼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첫 집단감염은 자신의 신분을 은폐하고 교회 공동체에 잠입하는 종교 집단인 신천지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들의 입장에서 코로나19의 전파는 마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유령처럼, 바이러스와 사람에 대한 현실적이고 이중적인 공포로 다가왔다.


선제적인 예방이 곧 최선인 분위기 속에서 국가는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권장했다. 도로와 거리는 다소 한산해지고, 잠시 문을 닫는 가게들도 곳곳에서 보였다. 그러나 약국 앞에서만은 온 동네가 특정 시간이 되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섰고, 마치 생명줄인 듯 길게 늘어졌다. 한 편 많은 교회들은 이제껏 주일에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나누고, 먹고, 교제하던 ‘주일성수’의 의례적 전 과정을 중단하거나 간소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역사회에 속해있는 교회의 사회적·공적 책임이 주일 설교의 주제로 말해졌다. 교회들에게는 ‘모이기에 힘쓰기’가 아닌, ‘사회적 거리두기’를 권면하고 동참하게 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셈이다.


주일이 되면 평균 삼사십 명 정도가 모이는 한백교회의 예배는 함께 노래하고 글을 읽는다. 예배 중 설교자가 말씀을 전하고 나면, 교우들은 그날의 설교에 대한 각자의 의견과 생각을 말한다. 이 과정을 통틀어 ‘하늘 뜻 나누기’ 시간이라고 일컫는다. 교우들의 이야기가 오고 가야 비로소 그날의 하늘 뜻이 서로에게 나누어진 것이고, 마지막에는 공동의 다짐으로서 한백신앙고백문을 함께 읽으며 예배가 마쳐진다. 이러한 한백교회의 예배 형식에서 드러나듯, 한백 공동체는 ‘소통하고 나누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 한백교회의 교우들이었기에 주일예배 중단은 아쉽지만 내릴 수밖에 없는 결정이었다. 그 대신, 실시간으로 예배 영상을 송출하는 온라인 예배를 실험적으로 해보기로 결정했다.


주일 아침의 교회에는 예배 준비를 위한 최소한의 인력만이 모였다. 비록 준비된 장비는 성능 좋은 카메라, 광활한 스크린, 출력이 좋은 스피커와 또렷한 마이크 등은 아니었다. 온라인 송출에 필요한 최소한의 장비를 끌어모아 설치했고, 카메라 뒤편에는 간소화된 예배 순서가 적힌 칠판이 모니터처럼 서있었다. 실시간으로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동시 송출을 하고, 교우들에게 접속경로를 안내했다. 한 시간 정도 이어지던 방송이 종료되고 나서, 영상을 시청하던 교우들은 교회 채팅방에서 가상공간을 통해 예배를 드린 것에 대한 느낌과 생각들을 한동안 나누었다. 오랜 시간 교회에서 만나지 못한 교우들도 영상으로 예배를 참여했고, 모처럼 한 마디씩 안부의 인사를 전해오니 반갑기도 했다. 대부분의 교우들은 이렇게라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소회를 나누는 한 편, 기존과 낯선 방식의 예배에 대한 이질감을 어떻게 말할지, 아직은 단정 짓기 이른 분위기였다.


‘주일성수를 한다.’라고 할 때에는, 교회 안 예배당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시간에 모여서 공동체가 정한 의례에 동참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모임’을 강조하는 것은 대부분의 제도 종교가 가진 특징이고, 보편적으로 개신교의 ‘주일성수’는 ‘교회에 모이는 것’을 내포한다. 이러한 와중에 모일 필요 없이 가상의 공간을 전제로 하는 온라인 예배는 이번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규모가 큰 교회들은 꽤 오래전부터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교회에 올 수 없는 일부 성도들을 염두에 두고, 비대면의 온라인 예배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즉, 성도들이 간접적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주일성수를 할 수 있도록 성도들의 편의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온라인 예배는 이전과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 다수의 사람이 어느 한 공간에 모이는 것이 공동체 전체를 위협하는 상황이 되자, 교회는 예배의 자리로서 예배당이 아닌 성도들이 놓여있는 삶의 자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이러스 전파의 위험이 없는 안전한 가상공간으로 이동하여 예배를 위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렇게 같은 날 같은 시에 모여들던 성도들은 서로 거리를 두기로 하고 흩어졌지만, 새로운 가상의 공간에서 다시 모여들었다. 현재 많은 교회들은 온라인 예배를 통해 주일성수를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예배가 드려지는 주일 낮 11시가 되자, 어떤 방송 플랫폼은 접속량이 갑자기 많아진 탓에 일시적으로 마비가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온라인에 접속한 성도들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의 유사한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기능을 통해 동시간 대 다른 교회의 예배 영상을 쉽게 제공받을 수 있다. 하나의 예배 영상을 시청하다가도,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다른 곳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아무리 돌아다녀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염의 걱정이 없다. 온라인 예배의 이러한 흐름은 아직까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임시방편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온라인 예배’는 ‘주일성수’의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일성수’ 중, ‘주일’의 뜻을 간단히 풀자면 ‘주님의 날’이다. 나의 생각에 주일성수는 ‘주님의 뜻과 섬김을 나누며 하루를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한편 주일날 갈 곳 잃은 성도들을 바라보시며 주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텅 빈 예배당에 홀로 좌정하신 채로 희뿌연 방역 연기와 알싸한 알코올 냄새를 어쩔 수 없이 견디고 계실까? 아니면 홀로그램으로서 가상의 세계에 깃들어 그 안에서 기뻐하며 예배를 받으실까? 우리에게는 오묘하고도 명료한 명제가 있다. 주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신다. 진작부터 주님은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그저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끝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예배당이 아닌 각자의 처소에서 예배하는 중에도 주님은 함께 하신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앞에서 우리의 신앙의 본질과 소명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우리의 신앙은 본질적으로 사회와 거리를 두는 신앙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흩어지고 가려지고 잊혀진 존재들, 제도적으로 소외와 억압을 겪고 있는 존재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회 속에서 더욱 취약해지는 존재들은 누구인지 둘러보고 발견하고 다가가는 것이 우리네 신앙의 본질이고 소명이다. 우리네 신앙은 이러한 ‘주님의 나날들’을 살아가는 신앙이며, 그 중 최소한의 하루로서 ‘주일성수’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로, 나는 온라인 예배를 주일성수에 대한 임시방편으로서만 여기고 말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을 다시 모일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으로 여기지 말고, 흩어져보니까 비로소 흩어진 사람들이 보이더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제도와 관습에 미처 묶이지 못하고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을 발견하고, 에클레시아 된 교회로서 이웃과 타인을 어떻게 감각하고, 수용하고, 관용하며, 환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교회의 사회적·공적 책임은 질병에 대한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해 예배당을 차단하는 것에서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질병 방역 대응을 비롯한 사회적·공적 체계와 자원에서 먼 거리에 있는 이웃들을 살피는 것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온라인 예배는 ‘모임’과 ‘집합’의 주체만을 고려하기보다, ‘흩어짐’과 ‘개별’의 객체들에게로 향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미 게토화된 ‘주일날’로부터 우리를 구출하여 ‘주님의 날’을 살아가게 하는 새로운 통로로서, 온라인 예배가 그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2020년 3월 11일 자로 판데믹(세계 보건기구가 선포하는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상태)이 선언되었다. 국가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은 질병의 확산 방지를 위한 장기적인 방편이 될 수 없고, 코로나19는 전 세계적 유행으로 선언되었다.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일성수를 위해 한 공간에 모이지 않는다. 그러나 머지않은 날 주일성수를 위해 모이는 풍경은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온라인 예배 서비스를 제공할 여력이 되지 않는 교회와 성도들은 무기한으로 예배와 친교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모임을 포기할 수 없어 소금물로 손과 입을 헹구었다가 원치 않게 집단감염이 된 어느 교회의 소식도 들려온다. 이렇듯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접속하고 이용할 수 없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여건이 되는 큰 교회들은 이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 것을 염두에 두고 가상공간의 온라인 예배를 좋은 도구로서 활용하고 발전시키고 있다. 다시 모였을 때, 흩어져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주님의 날’을 살았다고 어떻게 고백할 수 있을까?



강세희(한국기독교장로회 한백교회, 옥바라지선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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