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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 이기우
  • 등록 2020-04-16 15: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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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2020.04.16.) : 사도 3,11-26; 루카 24,35-48


자본주의 세상에는 부와 기회가 1:99로 나뉘어지는 1%의 냉혹한 현실이 작용합니다. 경제적 평등을 참혹하게 희생시키는 신자유주의 질서 탓으로 자본이 그렇지 않아도 부유한 나라와 개인들에게 몰리는 바람에 99%가 가난한데 1%만 부유한 현실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현실에서도 이러한 이치는 유효합니다. 영적 현실에서 작용하는 1%의 법칙은 물이 상온에서 100도가 되어야 비로소 끓어서 수증기로 기화되는 원리를 응용하여 유추할 수 있는 원리입니다. 즉, 물을 가열하면 99도가 되어도 뜨거워지기만 할 뿐 끓지 않으며 나머지 1도를 마저 가열해야 비로소 끓는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는 99도의 열기처럼 이미 앞서서 다 마련해 놓으시고 준비해 놓으셨는데 이를 깨닫지 못한 인간이 나중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어 노력하는 것이 1도에 해당되는 이치입니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게 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통하여 여러 가지로 하느님 나라를 다가오게 하셨으며 제자들도 불러 모아 당신의 뒤를 이어 복음을 선포하도록 양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데도 이를 깨닫지 못한 제자들을 깨우쳐 주시려고 그들에게 나타나시어 눈을 뜨게 해 주시고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제자들은 사도가 될 수 있었고 기적까지도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은 과제는 이런 경위와 과정을 부활시기마다 듣고 보면서도 사도직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우리들의 각성과 행함입니다. 


▲ Rembrandt < Supper at Emmaus >


오늘 복음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신 후에 또 나타나셨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에 그분을 만난 소식을 전하러 예루살렘까지 달려가 동료 제자들을 찾아간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또 나타나신 것입니다.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빠름’의 은총과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벽을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동이 자유로운 ‘사무침’의 은총이 제자들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또 다른 의미로 동분서주하신 예수님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요? 도대체 어떤 지향이 있으셨길래 이번에는 손과 발까지 보여주시며 구운 물고기 한 토막까지 잡수시는 연출을 하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도 하셨던 것처럼, 평소에 가르쳐주신 하느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주려던 뜻이었습니다. 그 평소의 가르침들이 진리였음을 확신시켜 주시려고 몸소 나타나셨던 것이고, 그로써 사도로 양성해 온 기왕의 제자들을 본격적으로 사도로서 나설 수 있게끔 용기를 주려던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확신을 심어주신 덕분에 사도로서의 용기와 믿음을 지니게 된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 문 앞에서 걷지 못하던 불구자를 일으켜 걷게 함은 물론 뛸 수도 있게 해 주는 기적을 일으켰더니 온 백성이 크게 경탄하며, 요즘 말로 하면 난리가 났습니다. 그런 군중의 호들갑을 보며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왜 이 일을 이상히 여깁니까?” 


호칭부터가 범상치 않지만, 그 다음 말이 베드로의 진심입니다. “우리의 힘이나 신심으로 이 사람을 걷게 만들기나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유심히 바라봅니까?” 그리고는 청중이 자신들처럼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이라고 부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예고해 온 메시아이시며 여러분의 부화뇌동과 죄악 탓으로 비록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그 억울한 죽음조차도 이미 예언자들에 의해 정해져 있었던 하느님의 섭리라는 것, 그리고 그 섭리란 결국 여러분의 회개를 위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습니다. 그 역점이 독서에 소개된 마지막 설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고 먼저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숫자가 삼천 명에 이른다는 현상이 또 다른 기적이고, 이를 보고 놀란 유다의 사제들과 지도자들과 원로들이 이 두 사도를 잡아 가두려고 하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용기로 맞선 태도가 또 다른 기적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여러분의 협박에 굴복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일까요?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파스카를 향하여 필수적인 사도들 사이의 상호 섬김과 백성들을 사도들이 섬기려는 리더십은 이제 교회라는 이름과 그리스도교라는 형식으로 역사상에 출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기지은의 은총이 이 리더십에도 어김없이 작용한 것입니다. 두 사도는 잔뜩 마음이 움츠러들어 있던 이스라엘인 군중의 마음을 한껏 열어젖히는 사무침의 은총을 발휘하였고, 박해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시던 예수님처럼 용기를 발휘함으로써 영혼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빛남의 은총도 발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도에게 가능했던 기적과 은총은 고스란히 우리들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열려있는 1%의 몫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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