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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에 본인의 책임은 없다며 선 긋지 말아 주세요”
  • 추적단 불꽃
  • 등록 2020-05-07 15:16:21
  • 수정 2020-05-07 15: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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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성착취 폭력사건, n번방’입니다. - 편집자 주


▲ (사진출처=추적단 불꽃 유튜브 갈무리)


한창 잠입 취재를 시작했을 당시, 일상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성 착취 영상을 눈으로 보며 온몸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어떤 범죄를 어떻게 저질렀는지 파악해야 했기에 봐야만 했습니다. 대화에 참여하던 가해자들의 대화 내용을 채증하는 것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수사관에게 채증한 자료를 보내면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처벌은 개뿔, 수사도 안 하는데’라며 빈정대는 가해자들의 대화는 무력함을 안길뿐이었습니다. 디지털 성 착취 피해자가 지금 내 핸드폰에 갇혀있는데, 모른 척 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습니다.


지난해 여름, 디지털 성범죄를 심층 취재하려 불법 촬영물의 유통경로를 쫓았습니다. 제2의 ‘소라넷’으로 불리던 사이트들을 전전하다 텔레그램 내 집단 디지털 성 착취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10여 분의 검색을 통해 한 웹 사이트를 발견했고, 사이트 상단에 있던 ‘고담방’(디지털 성 착취 영상을 홍보하고 끊임없이 성희롱하는 텔레그램 대화방) 링크를 보게 됐습니다. 그 링크를 통해 고담방(대화방)에 접속하자 방 공지에는 1번방부터 8번방까지 30여명의 피해자들의 이름, 나이, 학교, 성희롱, 피해 묘사가 적혀있었습니다. 방의 공지를 보며 “과연 대체 이게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당시 3000여 명의 가해자들은 그 방에서 “몇 번방의 ㅇㅇㅇ은 내 스타일이다” “학교 앞에 찾아가서 성폭행하자”는 대화를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n번방’ 잠입을 마음먹었습니다. (n번방으로 불리는 이유는 1번방부터 8번방까지를 숫자 n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n번방에 입장하려면 우선 고담방 ‘관리자’(성 착취 영상을 많이 공유한 가해자)들의 눈에 들어야 했습니다. n번방을 공유하거나 판매하는 타이밍을 잡아야 했습니다. 잠입 취재를 시작한 첫날 새벽 2시가 넘어갔을 무렵, n번방을 공유받고 싶으면 ‘미션’을 통과하라는 가해자가 등장했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만화 캐릭터로 바꾸면 n번방을 주겠다는 미션을 통과한 저희는 n번방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실체는 그들이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가해자가 피해 아동, 청소년에게 시킨 행위들은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그 영상을 보며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는 순간에도, 많은 사람은 그 영상을 보기 위해 대화방에 들어왔습니다. 너무도 어린아이들의 성 착취 영상을 공유하던 가해자들은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n번방 외의 다른 대화방에서도 성 착취는 비일비재했습니다. 어떤 가해자는 자신의 사촌 동생을 불법 촬영해 대화방에 공유하며 성희롱을 유도했습니다. 또 다른 이는, 수년을 스토킹한 피해자의 이름과 직업, 사는 곳을 공유하고 희롱하기도 했습니다.


저희의 취재를 종합해보면 n번방 피해자들은 ‘갓갓’이라는 가해자에게 ‘스미싱’과 비슷한 수법의 해킹 사기를 당해 개인정보를 뺏긴 상태였습니다. 개인정보를 손에 쥔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학교에 찾아가겠다’ ‘부모님에게 알리겠다’ ‘사진을 퍼뜨리겠다’ 등 연쇄 협박을 합니다. 피해자를 향한 협박과 욕설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보내라는 사진의 잔인함도 올라갑니다. 가해자의 협박 수법에 피해자들은 길고 깜깜한 터널에 갇힌 사람처럼 시야가 좁아지고 판단력이 흐려집니다. ‘무섭다. 그만두겠다’는 피해자를 가해자가 회유합니다. 마지막이라고. 가해자는 이번 한 번만 영상을 보내라고 말합니다. 그 말에 피해자가 응하는 순간, 고통의 굴레는 반복됩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더 찍어라, 찍지 않으면 네 부모, 친구, 선생에게 알리겠다”고 1초에 1번씩 협박하며 숨통을 조이는 그들의 수법에서 피해자가 자신을 구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취재를 시작할 당시 2019년 상반기에는 n번방 사건이, 하반기에는 ‘박사방’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간 동안 발생한 피해자들은 100명이 넘습니다. 두 사건 모두 극악한 성 착취 범죄입니다. 두 사건과 비슷한 성 착취 피해는 저희가 목격한 사건의 배로 많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최근 연락받은 피해자분들 중에는 2016년부터 수년간 성 착취 피해를 입으신 분도 계셨습니다.


최근 한 피해자 분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당시 마셨던 공기가 생생합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세상에 희망의 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닙니다. 피해 이전의 삶입니다. 우리는 이웃으로서, 어른으로서 피해자들이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피해자도 조금은 잘못이 있다”고 피해자를 억압하는 말을 멈추는 것, 피해자가 있는 사건임을 잊지 않는 것이 시작입니다. 몇 개월 뒤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지켜봐 달라는 피해자의 호소를 기억해주세요.


추적단 불꽃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추적단 불꽃”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 “이 사건에 본인의 책임은 없다며 선 긋지 말아 주세요. 텔레그램 방 모든 관전자를 가해자로 보고 그들에게 죄를 묻듯, 수십 년간 성범죄 사건을 목격하고도 피해자를 외면한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 학생들의 호소 안에 예수님의 마음이 살아있다고 믿는다. 예수님 보시기에 우리 모두는 외면하고 지나쳐간 자들이었다. 별일 아닌 것처럼, 세상은 그리고 사람은 어쩔 수 없다는 냉소와 허무로 잔인한 폭력을 못 본척했고, 그 폭력의 피해자들은 외면했으며, 모든 것을 다 아는 척 관전자가 되었을 뿐 그들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지 못하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희생자의 상처와 고통은 나 자신과 우리와 우리 사회의 상처와 고통이 되지 못했고, 지금도 그 폭력의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  사건과 신학 취지문 중에서, 양권석(NCCK 신학위원회, 성공회대학교)


⑴ 대학생들로 구성된 디지털 성범죄 추적단. 디지털 성범죄가 벌어지고 있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잠입 취재하여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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