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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聖)과 속(俗)의 경계 무너지는 시대, 교회 밖도 성스러울 수 있다
  • 강재선
  • 등록 2020-06-02 16:24:35
  • 수정 2020-06-02 16: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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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의 한국 천주교회 대응과 신자, 수도자, 성직자가 바라보는 신앙생활의 변화상을 추적한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었다. 

 

6월의 첫 날 서울 합정동 전진상센터에서는 가톨릭평론,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우리신학연구소가 공동기획한 ‘팬데믹 시대의 신앙 실천’ 긴급 설문조사 결과 보고 워크숍이 열렸다. 해당 조사에서는 코로나19(COVID-19)라는 전 세계적 질병(팬데믹) 상황에서 한국 천주교회 구성원 유형별로 이 위기를 어떻게 경험해왔는가를 파악했다.

 

코로나19 시대에 가장 크게 나타난 일상의 변화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이 늘었다’(63.4%), ‘집안일을 돌보는 시간이 늘었다’(48.1%), ‘죽음/질병의 고통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는 응답(38.4%)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상의 변화 추이에서 집안일이 증가했다는 응답에서 남성은 33%에 그쳤으나, 여성은 52.7%의 응답률을 보이며 가사노동의 불균형 문제가 코로나19 시대에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다.  

 

신앙생활, 본당 울타리 넘어서야 

 

한국 천주교 구성원들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시대에 신앙생활은 본당중심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드러났다. 하지만 동시에 본당활동과 미사, 전례 외에 다른 어떤 것으로 일상에서 신앙생활을 실천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 신자와 더불어 사제/수도자의 응답을 통해서도 드러났다. 

 

코로나19 이후 신앙생활의 변화를 묻자 ‘일상 신앙실천의 중요함 인식’, ‘신앙/교회공동체의 소중함 더 깊이 인식’, ‘본당 구성원 안부 궁금’ 등의 순으로 신앙생활의 변화를 체감한다고 답했다.  

 

‘일상 신앙실천의 중요함 인식’이라는 문항을 신자 부류별로 살펴보면, ‘매우 열심’한 신자는 94.4%, ‘어느 정도 열심’한 신자는 90.9%, ‘주일미사만 참여’하는 신자는 86.9%, ‘주일미사 자주 불참’하는 신자는 74.8%, 냉담자는 67.9%가 긍정적인 응답을 내놓았다.  

 

이외에 ‘주일미사 의무참석 생각 감소’라는 변화를 느꼈다는 응답은 응답자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다른 변화들에 비해 가장 낮은 응답률을 보이기는 했으나, 신자 부류별로 차이가 드러났다. ‘주일미사만 참여’하는 신자(50.6%), ‘주일미사 자주 불참’하는 신자(73.4%) 및 냉담자(56.6%) 부류가 ‘매우 열심’한 신자(33.8%)와 ‘어느 정도 열심’한 신자(41.4%)에 비해 주일미사 의무참석에 대한 회의감을 더 크게 보였다. 

 

동시에 가장 많이 실천한 대송 방식으로 ‘가톨릭평화방송 중계미사’(43.3%)와 ‘교구나 본당에서 하는 유튜브 등 온라인 미사’(16.4%)가 꼽히고 미사 중단기간 가운데 교무금/헌금 납부에 대해 ‘계좌이체 하거나 직접 성당 사무실에 가서 냈다’(49.7%), ‘성당 갈 때 한꺼번에 내거나, 나중에 조금씩 더 낼 예정’(24.9%)이라고 답했다. 

 

이를 통해 신자들이 코로나19 이전의 신앙생활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경향이 드러나기도 했다. 

 

본당·교구의 변화도 불가피 

 

‘미사 중단과 같은 중요한 결정은 신자들과도 충분히 상의해 결정할 일’이라는 질문에 대해서 평신도는 59%가, 사제/수도자는 53%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 가운데 교회의 이웃사랑이 잘 실천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평신도는 74.1%가, 사제/수도자는 53.3%가 그렇다고 답했다. 

 

공동체 미사가 중단된 동안 본당에서는 어떤 활동이 이루어졌는가라는 질문에서도 앞서 일상에서의 신앙생활을 실천하고자하는 열망과 그렇지 않은 현실의 괴리가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평신도와 사제 사이에 나타난 인식 차이를 통해 본당에 소통창구가 부족하고, 본당이 사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타났다.

 

평신도의 경우 본당에서 본당소식/강론 등의 문자전달(49.7%), 평신도 지도자가 신자에게 안부문자(42.9%), 다양한 신앙콘텐츠 SNS공유(37.5%), 대송/신령성체 방법공유(25.2%) 순으로 본당활동이 이루어졌다고 인식했다. 본당에서 이웃돕기 모금/물품 나눔을 했다고 응답한 신자는 25.8%에 그쳤다. 

 

반면, 사제의 경우 본당소식/강론 등의 문자전달이 70.9%, 대송/신령성체 방법공유가 62.7%, 다양한 신앙콘텐츠 공유가 57.5%를 기록하면서 응답 비율상 큰 차이를 보였다. 이웃돕기 모금/물품 나눔은 46.3%의 응답을 기록하면서 평신도의 본당활동 인식과 차이를 보였다.  

 

코로나19 이후의 삶과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앞으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 ‘이전보다 열심히 신앙생활 할 것’, ‘외식/외출 모임 등 자제할 것’, ‘미사참석이나 모임 등 교회활동 상당부분 위축될 것’ 순으로 응답했다. 

 

본당활동 위축을 두고 사제/수도자들은 ‘소극적 신자층의 활동이 더 느슨해질 것’(83.9%)이며 ‘적극적 신자층의 신앙활동은 지속될 것’(71.4%)이라고 전망했다.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실장은 “기존의 핵심적인 활동 신자 중심의 경향성이 더욱 강화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온라인 미사 시청 여부를 두고서는 49.6%가 ‘사정상 미사할 수 없을 때에만 시청’하겠다고 답하면서 온라인 미사가 긴급 상황에서의 임시방편으로 인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후 한국천주교회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로 신자들은 ‘성당중심에서 일상중심의 신앙실천으로 의식구조변화’(39.3%), ‘미사 중요성 등 신앙의식 재정립’(35.2%), 스스로 신앙생활하도록 교육(30.4%) 순으로 답했다. 사제/수도자들 역시 유사한 비율로 답변했으나 ‘성당중심에서 일상중심의 신앙실천으로 의식구조를 변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52.3%로 평신도에 비해 매우 높았다. 

 

이와 더불어 향후 위기상황에서 교구가 대응해야 할 내용을 두고 사제/수도자들 47.5%가 일상 사목활동 중단 대비 사목프로그램 연구 및 개발이라고 답하고, 16.7%가 위기상황 시 의사결정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성당 밖에서도 성스럽고, 누구나 성스러울 수 있게  

 

박문수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은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두고 “탈제도적 종교성”이 팬데믹 사태로 인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문수 위원장은 제도로서의 한국 천주교회가 경험하고 있는 탈제도화가 팬데믹과 맞물리면서 “최소 15%에서 최대 30% 정도의 신자가 소극적인 신자층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동시에 물리적인 공간이 전염병과 같은 상황으로 폐쇄되거나 출입이 제한되는 현실 앞에서 가상교회(Virtual Church)의 필요성이 증가했고, 동시에 성당과 성당 밖을 성스러움으로 구분해왔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성스러움의 탈공간화’를 통해 일상에서도 신앙을 실천해야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이현숙 수녀는 “한국교회에서 중요시되는 속지주의, 본당위주의 신앙생활이 해체되지 않을까”라며 “이에 대처하기 위한 변화의 주체는 평신도”라고 말했다. 

 

이 수녀는 특히 “변화는 복합적 양상을 띠기 때문에 누군가 방향을 내어주기 어렵다. 성직자가 대안을 만들어서 신자들을 이끌고 간다는 생각은 서구교회의 경향을 보면 어려운 것이 아닐까”라며 “성과 속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 교회 안에서만 성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성스러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정부교구 토평동성당 김승한 신부도 “공간이 주는 성스러운 면을 이해하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시간이 주는 거룩함으로 다시 의식을 새롭게 봐야하지 않을까”라며, “일상은 곧 시간과 연관이 있다. 성스러운 공간에서만 성스러움이 발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시간 안에서 성스러움을 찾는 것이다. 시장 한복판에서도 성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은 설문조사 응답자의 70-80%가 여성이고, 그 중에서도 6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⑴ 대송 : 교회법상 정해진 의무를 지킬 수 없는 경우에 대신 할 수 있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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