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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복음을 위하여 죄인처럼 감옥에 갇혀있다” - [이신부의 세·빛] 복음 선포에 필요한 성령의 은사 : 굳셈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6-04 13:30:01
  • 수정 2020-06-04 13: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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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9주간 목요일 (2020.06.04.) : 2티모 2,8-15; 마르 12,28ㄱㄷ-34



사람이 하느님의 빛과 힘을 받지 않고서는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속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하느님을 닮고 또 다른 이들에게도 하느님의 소식을 기쁘게 전하자면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본성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빛과 힘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하느님께서 이 빛과 힘을 주십니다. 무상으로 그리고 무한히 주시기 때문에 은사(恩賜)라고 부릅니다. 


복음을 선포함에 필요한 은사들 가운데에서 이제껏 살펴본 슬기와 통달, 의견과 지식은 우리의 이성을 예지에로 드높여주는 은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의지를 강화시켜서 하느님의 품위로 올려 주는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첫째 은사가 굳셈, 즉 용기입니다. 이 은사는 진리에 대한 용기를 비롯해서 자유와 정의, 사랑과 평화 등 최고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기운을 줍니다. 이 은사를 가장 잘 받은 이들은 순교자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간추린 내용으로서, 십계명에서 출발한 유다교의 가르침을 단 두 가지로 요약한 사랑의 계명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 첫째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 둘째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 계명을 순서상 첫째와 둘째로 구분하기는 하셨을지언정 두 가지 모두 가장 큰 계명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 안에 신성과 인성이 다 같이 들어있는 것과 같아서, 그분의 삶에서는 하느님 사랑으로 인간을 사랑하는 단일성이 녹아 있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다가온 이웃들을 대하시는 태도는 마치 하느님 아버지를 대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일찍이 이사야가 예언했던 대로,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고 부러진 가지도 꺾지 않는 듯이 당시 유다인 사회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았던 이들을 마치 정성껏 보살피시고, 제자들에게도 이들의 천사가 하느님을 매일 마주 뵙고 있다고 가르치시면서 하느님을 대하듯이 정성껏 돌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이들에 대한 사랑의 태도야말로 당신을 대하는 태도로 간주하시겠다는 최후 심판의 기준까지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구약과 신약의 경계가 뚜렷하게 그어졌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유다교 지도층의 박해를 받을 각오를 단단히 하고 진리에 대한 용기를 내신 것인 바,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구현하는 일이야말로 하느님 흠숭의 척도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아끼던 제자 티모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복음 즉, 사랑의 복음을 위하여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하지만 감옥 생활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하느님의 말씀은 여전히 살아있음을 아울러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굳셈 즉 용기의 은사에 해당됩니다. 성령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에게 진리에 대한 굳은 용기를 허락하십니다. 자신의 도덕적 감정만으로는 어렵지만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면 진리뿐만 아니라 정의나, 평화 그리고 사랑에 대한 박해에 대해서도 굴하지 않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진리에 대한 용기를 내게 해 주는 이 굳셈의 은사는 우리 교회 역사에서 순교의 전통을 세우게 해 주었습니다. 신앙에 대한 박해의 빌미는 조상제사 금지령이었는데, 당시 조선에서 행해지던 조상제사는 조상을 공경하는 미풍양속을 넘어 조상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적 요소가 다분히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조상제사를 금지하는 교황청의 결정사항이 북경 주교를 통해 전해졌을 때, 미련없이 조상제사에 관한 양반의 특권을 포기하고 순교를 택한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를 필두로 하여 이 땅에서는 차라리 치명할지언정 신앙을 버릴 수 없었던 수많은 순교자들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조선 최초의 사제로서 순교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박해받는 신자들에게 탁월한 모범이 되어 주었으며 그 뒤 교우촌에서 신앙생활에 전념하다가 치명의 길을 마다하지 않은 순교자들이 만여 명이 넘었습니다. 


백여 년의 박해가 끝난 뒤, 신앙의 자유를 찾았을 때 황해도 지방에서 천주교 서적 120여 권을 읽고 입교한 안중근 토마스는 진리에 대한 열정에서 황해도 지방의 교세를 두 배로 늘려 놓을 정도로 선교활동에 종사하다가, 일본 제국주의가 침략의 마수를 점점 노골적으로 뻗쳐오자, 그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하기로 마음먹고 대한 의병에 자원하여 자유를 위한 정당방위의 거사를 일으켰습니다. 그는 기꺼이 자기 목숨을 걸고 하얼빈에서 침략자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는 용기를 보여 주었고, 옥중에서 동양평화론을 저술하여 자신의 처단 행위가 단순한 살인 행위가 아니라 동양 평화를 희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희생적 용기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순교자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후예로서, 그의 의거에는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을 바탕으로 민족의 자유와 동양 평화를 위한 용기라는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이 거사로 당시 일제 침략으로 말미암아 잔뜩 주눅 들어있던 이천만 조선 동포들의 마음속에 독립을 향한 저항의지가 불타올랐고 이는 십 년 후 삼일 독립 만세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직후 상해에서 결성된 임시정부에서 만든 헌법에서 정치권력이 왕으로부터 백성으로 넘어오는 민주공화국의 틀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헌법에 명시된 주권재민의 원칙은 이때부터 확립된 것입니다.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선언은 권력이 더 이상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으로서, 사람들이 최고선의 가치로 서로 사랑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동선 조건입니다. 


가치의 위계질서상 진리는 정의와 사랑, 자유와 평화보다 상위에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므로 용기의 은사를 받아 정의와 사랑 그리고 자유와 평화를 위해 귀한 목숨을 바친 모든 순교자들은 진리의 순교자이신 예수님 계보에 속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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