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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사랑, 겨레 사랑
  • 이기우
  • 등록 2020-06-19 16:26:36
  • 수정 2020-06-22 10: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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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일(2020.6.21.) : 예레 20,10-13; 로마 5,12-15; 마태 10,26-33 



다시 시작된 연중 시기에 연이어서 맞이했던 대축일들이 말해주는 바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기본자세로서, 다양성 안의 일치를 위한 거룩한 변화야말로 예수 성심의 본 모습이요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이 메시지를 우리네 현실로 향해 선포해야 할 차례입니다. 그런데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6월 17일부터 25일까지 한반도에 종전선언이 이루어져 평화체제로 발돋움할 수 있기를 염원하며 9일 기도를 바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인식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시작된 이 연중 시기에 우리의 시선을 겨레의 현실에로 향하도록 재촉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산하의 이 위원회가 한국의 모든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안한 9일 기도의 지향을 보면 현 시기 한반도의 현실에 관한 상황 인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지향들은, 「①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회심을 위하여, ② 북한과 미국, 남한의 정치 지도자들을 위하여, ③ 한반도의 비핵화와 핵무기가 없는 세계를 위하여, ④ 경제제재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⑤ 남과 북의 복음화를 위하여, ⑥ 이산가족과 탈북민들을 위하여, ⑦ 한반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하여, ⑧ 평화의 일꾼들을 위하여, ⑨ 종전 선언과 평화체제 실현을 위하여」로 되어 있습니다. 


무릇 역사상 인류가 기억하는 모든 전쟁은 종전되어서 평화를 회복한 날에 기억하는 법인데, 유독 이 땅에서 70년 전에 일어난 6.25전쟁만은 전쟁이 발발한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겠지요. 아직도 그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이 전쟁이 공산세력의 남침으로 시작되었으며 적화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남한 지배세력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이는 북측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호 증오를 정치적 지배의 원동력으로 삼아 왔다는 점에서 남도 북도 똑같았습니다. 그 영향으로 적대적 공생관계를 맺은 남과 북은 전쟁 후 지금까지 서로에게 적이었으며, 서로의 법률과 정책과 제도가 모두 상호적대인 진영논리에 기반해 왔습니다. 


이 당시에는 사회의 모든 분야가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남한의 군사독재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나 세력들은 죄다 종북세력으로서의 혐의를 면할 수 없었으며, 정치적 경쟁상대는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서 죽이거나 감옥에 보냈습니다. 이러한 비뚤어진 정치풍토는 전쟁 이전, 해방 직후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분단을 반대하고 통일정부를 지향하던 김구, 여운형, 조봉암 같이 국민의 정치적 존경과 기대를 받던 인사들이 암살당하거나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하는 일로부터 남한의 정치적 비극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남한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의 평화 통일을 지향하던 인사들은 예외없이 군사독재세력들로부터 빨갱이로 몰려서 탄압을 받아야 했고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해방과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민족 화해의 물꼬를 튼 김대중 대통령이었습니다. 없는 간첩을 조작해서 만들어서라도 살벌한 공안정국으로 국민적 지지가 없는 정부를 간신히 유지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사건들이 재일유학생들이나 재미유학생들 그리고 외딴 섬에서 살던 어부들을 내세운 간첩사건들입니다. 


이 모든 사악한 정치풍토를 상징하는 것이 그 당시까지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6.25전쟁이 휴전되었어도 총성만 멎었을 뿐, 국민들의 가슴과 머리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고 증오에 기반한 가치관이 지배해 왔습니다.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죽여 버리겠다는 이런 증오적 가치관이 지배했던 증오의 겨울왕국이 이 나라였던 겁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한국천주교회도 이러한 남북 간 상호 증오를 부추겨온 지배세력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형성된 남한 사회의 우경화에 적응하여, 북한에 세워진 정부와 동포들을 무신론 세력으로 규정하고 적대시해 왔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선교가 불가능한, 침묵의 땅이자 무신론 세상이었고 그곳에 얼마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감안하여 그저 침묵의 교회라고 불렀을 뿐입니다. 사실 이 전쟁 이전에도 북한 정권은 천주교를 노골적으로 탄압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교회의 이러한 태도는 아무런 비판도 받지 않았고 따라서 그 어떠한 반성이나 성찰도 가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한 때는 1995년 무렵부터였습니다. 그때는 아직 정치권과 사회의 분위기 그리고 국민 대다수의 시선은 우경화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먼저, 재야 학계에서부터 해방을 전후로 벌어졌던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이 발굴되면서 민족의 분단과 통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사회과학적 성과로 새롭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으로 치러진 6.25전쟁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이 전쟁은 사실상 우리 겨레를 볼모로 잡고 전쟁을 사주한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야욕의 결과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막연히 북한 동포들만을 원수로 알고 있던 인식에 파문이 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습적으로 남침함으로써 전쟁을 시작한 북한 김일성의 전쟁범죄가 씻어질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남북한 동포 전체가 모두 이 전쟁을 사주하고 지원한 강대국들의 희생자에 불과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전쟁으로 달라진 것은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었을 뿐 남이나 북이나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남과 북 양쪽에서 삼백만 명이 넘는 엄청난 수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이 희생되었고 이산가족이 천만 명 이상 생겨났으며 국토의 거의 산업기반이 파괴되었으며 동족 간에 어마어마한 상호 증오심만 키웠습니다. 


이 무렵 한국 천주교회는, 구약성경이 알려주는 희년 사상에 입각하여 해방 50주년을 맞이하는 이때에 민족의 희년을 맞이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쇄신한 가르침에 따라서 무신론과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전향적 평가에 힘입어 북녘의 신자들을 일컬어 침묵의 교회라고 부르던 용어를 폐기하고 북한선교라는 명칭도 민족 화해라는 명칭으로 바꾸었습니다. 그 이후 민족 분단 현실에 대한 이 전향적 분위기를 전폭적으로 수용하면서 들어선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전쟁 가능성이 차단되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이어받으면서 오늘날까지 6.25전쟁을 아직도 기념하기는 하면서도 하루빨리 종전선언이 이루어지고 평화체제가 실현되어야겠다는 국민적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던 민족 내부에서 서로를 증오하던 분위기가 서로 화해하고 일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바뀐 지도 벌써 25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남북 사이의 정세는 온탕과 냉탕을 오가면서 교착상태에 빠져있었는데,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의 정상이 세 차례나 만나서 전쟁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하려는 약속을 하게 되면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수립의 희망이 임박했다는 기대감이 높아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정세를 보면, 아직 그 희망을 실현시킬 날이 오기 어렵고 더군다나 민족 분단에 책임이 있는 강대국들의 도움으로 그 희망을 실현시킨다는 것은 요원하다는 것이 점차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는,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속셈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통치를 받아 종살이를 한 세월이 36년이요, 하필 그 노예 처지가 풀려나게 된 것이 외세의 결정에 의한 것이었으며, 6.25전쟁조차도 형식상으로는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끼리 서로 싸운 동족상잔의 전쟁이었지만 사실상으로는 소련 및 중국을 종주국으로 한 공산진영의 대륙 세력과 미국 및 일본을 종주국으로 한 자본진영의 해양 세력 사이의 국제 분쟁을 대리전으로 치룬 것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진 이상, 이 분단 상태를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해지고 있다 하겠습니다. 


6.25전쟁에서 북측은 전쟁 초반에 소련이 제공한 군사장비로 부산을 제외한 남한 전역을 점령할 수 있었으나, 남측은 미국을 위시한 유엔 16개국의 참전으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었다가, 곧 이어 중국군의 개입으로 밀려 내려와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끝에, 현재의 휴전선에서 양측의 세력이 균형을 이룬 것만 보아도 외세가 개입하거나 의존해서는 현재의 대립과 분단 구도 이상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자주적인 화해 노력이 결실을 거두자면 주변 강대국들의 동의와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실이고, 그것은 남쪽의 대한민국이 주도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눈치를 더 이상 보지 않고 남북 사이에 약속한 합의를 실천에 옮기려고 해도, 사사건건 발목을 붙잡고 있는 미국 정부의 손길을 뿌리치려면 압도적인 국민 여론이 뒷받침되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 한반도는 전 세계 안에서도 유일하게 강대국들 틈바구니에 자리 잡은 탓으로 중국과 일본 이제는 미국까지 상전 노릇을 해오면서 탐을 내던 노른자위 땅이었습니다. 국력이 약하고 지도자들을 잘못 만난 시절에는 그들의 종 노릇을 해 왔지만, 이제는 국력도 신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훌륭한 지도자를 직접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더 이상 굴종의 세월은 필요치 않습니다. 땅이 지정학적인 요충인데 사람이 못나면 종살이를 강요받았지만, 사람이 깨어나면 그 반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미국의 침공 위협에 대비하겠다고 개발한 핵무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과 유엔으로부터 받고 있는 경제제재로 말미암아 나라로서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른 반면에, 남한의 대한민국은 일본을 추월하고 미국과 중국조차도 무시하지 못할 역량을 키워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오히려 지정학적인 이점을 살려서 주변 나라들을 아우를 수 있는 생명과 평화의 샘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선진화된 역량으로 북한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나라 역시 우리 남한뿐입니다. 그러니 민족의 화해는 물론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진정한 독립의 길은 이제부터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 가장 큰 시대의 징표입니다. 독립과 주체성으로 나아가야 할 진리와 평화의 길에 서 있는 우리에게 오늘 미사의 말씀이 커다란 힘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소개하는 힘센 용사처럼, 한반도의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힘과 기운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사도 바오로의 표현을 빌자면, 한 사람이 세상에 죄를 들여와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된 시절이 지나가고 하느님을 닮으신 또 한 사람께서 들여오신 은총과 선물이 충만히 내리는 시절이 찾아왔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바로 그 한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사도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은 사람의 일을 넘어서서 하느님의 최고선에 속한 천상적 가치를 지닌 고귀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를 비판하거나 분단구도에 안주하려는 자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온 겨레 앞에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기 위한 행동을 통하여 우리의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을 실천으로 증언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온 겨레가 외세가 강요한 분단과 전쟁, 상호 증오심을 떨쳐버리고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의식을 갖추어 사랑과 평화의 길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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