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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 [이신부의 세·빛] 교황직과 그 가르침 : 기억과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야 할 교회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6-30 16:58:14
  • 수정 2020-06-30 16: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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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간 화요일(2020.06.30.) : 아모 3,1-8; 4,11-12; 마태 8,23-27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또 다른 이들에게는 부당한 일이기도 합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돌무화과를 가꾸는 농부로 살아가던 아모스에게는 당시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을 모르는 척 하는 행태가 결코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그 막강하다던 이집트 군대의 손아귀에서 빼내어주셨고, 그 깊은 홍해를 말리어 마른 발로 건네주셨으며, 마실 것도 먹을 것도 귀한 시나이 광야에서 바위에서 물이 샘솟게 하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셔서 살게 해주셨으며,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내려주시어 바른 길을 걷게 인도해 주셨는데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기적들로 이루어진 역사와 이를 주관하신 하느님의 섭리와 모세가 공리처럼 가르쳐 준 율법을 모른 척하고 우상을 섬기며 제멋대로 살아가는 행태가 아모스에게는 도무지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윤리를 저버리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신도이자 농부의 신분이면서도 감히 왕국의 왕과 궁정 예언자들을 향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백성을 향해 예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 명료했습니다.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 대망 사상의 단초가 된 이 예언은, 두 쪽으로 분열된 왕국 모두에서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된 자들이 보여주는 우상숭배 행태가 도를 넘어섰으니, 이제 하느님께서 몸소 오셔서 당신 백성이 나아갈 길을 가르치고 보여주실 새 시대가 도래할 것이므로 그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께서 다윗과 같이 그나마 신앙에 충실하려던  왕조에서 나탄과 같은 궁정 예언자를 통해 당신의 뜻을 펼치시려던 시대가 지나가고, 아모스 같은 재야 예언자들을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아를 예고하게 하고 준비시키는 시대가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수백 년이 흐르고, 바빌론 유배라는 또 다른 시련을 호되게 겪고 나서야 백성은 정신을 차리는 듯 했지만, 막상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마치 갈릴래아 호수에 띄운 배를 타고 있는 제자들을 거센 파도가 위협하는 상황과도 흡사했습니다. 파도는 바람이 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이 바람과 파도를 합하여 풍랑이라고 합니다. 바다만큼이나 넓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의 헤르몬산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서쪽의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마주치는 시간이 되면 이 호수에서는 종종 통제할 수 없는 풍랑이 일어서 위험에 처해지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상황은 이미 오신 메시아를 막아서고 감추며 대적하려는 마귀의 풍랑이 매우 세게 불고 있는 모습과도 비슷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마귀를 쫓아내느라 공생활 내내 동분서주하셔야 했고, 갈릴래아 호수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다시 저쪽에서 이쪽으로 건너다녀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날도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는데, 제자들은 겁이 잔뜩나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런데 복음선포 활동으로 몹시 피곤하여 깊이 잠드셨던 예수님께서 깨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시자 풍랑이 잦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당연하다는 듯이 제자들도 꾸짖으셨습니다. “왜 겁을 내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과학만능의 가치관에 젖은 무신론자들의 눈에는 풍랑을 말씀 한 마디로 잠재우고, 더군다나 풍랑에 겁에 질려있는 애꿎은 제자들까지 믿음이 약하다고 꾸짖는 예수님의 이 언동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일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아시리아의 우상숭배 풍조를 들여와서 왕국의 공동선은 물론 최고선까지도 어지럽히던 왕과 궁정 예언자의 눈에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고 외치던 아모스의 언동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과도 비슷합니다. 자연현상을 말씀이, 그리고 믿음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요? 


2014년에 한국을 찾아온 프란치스코 교황은 청와대를 관례상 방문한 데 이어 중곡동에서 주교단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교황은, 신자유주의라는 시대사조의 풍랑이 강하게 불어와서 매우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 21세기 초의 한국에서 능률적이며 중산층 위주의 잘 나가는 교회를 이끌고 있는 한국 주교단에 대해서 매우 강한 어조로 발언하였습니다. 


“여러분과 여러분의 형제 사제들에게 권고합니다. 세속화와 능률화의 온갖 유혹을 물리치십시오. 사랑의 이중 계명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바쳤던 순교자들에 대한 기억의 지킴이가 되고, 그 순교자들이 증거했던 바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복음 진리에 대한 희망의 지킴이가 되십시오. 성령을 질식시키고, 회개를 무사안일로 대체하며, 마침내 모든 선교 열정을 소멸시켜 버리는 그러한 정신적 사목적 세속성에서 하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를 빕니다.” 


순교자들을 복자품에 올리려는 미사를 하루 앞두고 주교들과 사제들에게 건넨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 충정어린 권고가 한국 교회를 집어 삼킬 듯이 넘실거리는 세속화와 능률화의 풍랑을 과연 잠재울 수 있을까요? 아모스의 외침과 예수님의 말씀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도 그렇게 생뚱맞게 들리고 보일까요? 신앙 진리에 대한 순교의 기억과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교회라는 희망이 우리 교회를 지켜주기를 빕니다. 메시아 시대의 메시지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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