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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범은 얼굴에 뿔난 사람이 아니다 - [사건과 신학] 선한 인상의 아무개에 의해 일어난다
  • 김예원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7-09 11:33:11
  • 수정 2020-07-09 11: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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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가학적 폭력의 사회’입니다. - 편집자 주



코로나19로 인해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강제되면서 불길한 예감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가정에만 있으라’는 사회에서, ‘가정이 지옥보다 더 힘든 아이들이 얼마나 많이 다치고 죽어갈까?’ 하는 걱정이었다.


대한민국이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세계적 모범국가라고 들떠있을 때부터 그 예감은 슬슬 현실이 되었다. 여행 가방 안에 갇혀 모진 학대를 받다 병원에서 끝내 사망한 초등학생, 죽을 위험을 각오하고 지붕으로 탈출해 구사일생 살아남은 같은 나이의 초등학생…


이 유례없는 감염병 재난 속에서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들이 여럿 드러났지만, 아동학대 문제는 사실 속수무책 몇 개월간 방치되다시피 하였다. 학대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일, 학대 장소에 들어가 조사하는 일, 학대 의심 아동을 모니터링 하는 일들이 거의 멈췄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이 방송에 자주 등장하기에, 사람들은 시설이나 기관에서 아동이 많이 학대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아동학대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장소는 ‘가정’이다. 2017년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 22,367건 중 17,989건이 가정에서 일어났다. 전체의 80% 정도이다.


학대 행위자 중 재학대를 하는 가해자의 비율도 부모가 가장 높다. 95% 정도에 이르고 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 대리양육자, 친인척 등은 학대 이후 즉시 분리가 되는 편이지만, 부모가 학대행위자일 경우는 원가정에 복귀하는 아동이 많기 때문이다.


학대행위자 중 ‘부모가 가장 많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계부나 계모에 의한 학대가 많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부모에 의해 발생한 아동학대는 전체의 76.8%(17,177건)이고, 이 중 친부에 의해 발생한 사례가 9,562건(42.8%), 친모는 6,824건(30.5%), 계부와 계모는 각각 401건(1.8%), 341건(1.5%) 순으로 조사되었다.


인식과 현실의 불일치는 통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장애아동은 비장애아동보다 더 취약하다’는 말에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막상 장애아동을 살해한 부모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은 이제 무슨 공식처럼 당연한 일이 되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라고 말씀하실 만큼 어린 생명이 존귀하다 하셨지만, 어른의 분노와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도구나 대상이 되는 아이들은 여전히 참 많다.


2018년 우리나라 9세에서 17세 아동 청소년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6.57점으로 OECD 회원국 평균 7.6점 보다 1점이나 낮아 최하위로 조사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식인데 왜 참견이냐”는 부모, “남의 사생활에 관심 말라”는 보호자가 대부분이다.


사건을 통해 만나는 수많은 아동들은 정말 ‘우연히’ 살아남은 아이들이었다. 그렇게 살아남았더라도 중증 장애를 가지고 남은 삶을 살아야 하는 목숨도 많았다. 가해자들은 법정에서 후회하는 듯 울먹이며 판사님께 반성문을 열심히도 써 내지만, 피해 아동이 살아내야 하는 삶은 눈꼽만큼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수사과정에서 만나는 그 가해자들은 정말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다. 제법 선한 인상인 사람도 많고, 싹싹하다 예의바르다 주변에 칭찬을 받고 살아온 사람들도 꽤 있는 편이다.


누구나 어린아이 시절을 거친다. 갑자기 어른의 모습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은 없다. 예수님도 그러하셨다. 그런 아이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주 나쁜 이유는 그 자체로 권력관계에 의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아동에게 어른, 보호자, 부모는 얼마나 그 존재만으로도 절대적인 권력인가.


대한민국이 비준한 지 30년이 되어가는 아동권리협약은 단지 듣기 좋은 선언이 아니다. 동정과 시혜가 아닌 아동의 권리이다. 아동이 존엄하다는 이 권리가 우리 삶에 스며들려면, 서로를 향한 촘촘한 시선이 필요하다. 얼굴에 뿔 달린 악마가 아닌 선한 인상의 아무개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동학대이다.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지그시 바라보는 작은 시선, 이상하다 싶을 때 나서는 선한 오지랖이 약자에 대한 끝없는 폭력을 멈추게 한다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김예원 변호사(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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