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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이, 마귀 들린 이 그리고 부모 잃은 고아
  • 이기우
  • 등록 2020-09-02 12:21:22
  • 수정 2020-09-02 12: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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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수요일(2020.09.02.) : 1코린 3,1-9; 루카 4,38-44



우리가 입는 옷은 가느다란 실이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여서 천조각으로 짜여졌다가 디자인을 거쳐 재단과 재봉을 하는 과정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의 삶과 교회도 그렇게 일상의 씨줄과 역사의 날줄로 엮여서 마침내 거대한 흐름으로 흘러 왔습니다. 다만 이 흐름에는 표면상 보이는 파도 물결과 밑에서 도도하게 움직이는 힘이 섞여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올초부터 세상을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 있어서도 종교의 역할은 이만희의 신천지나 전광훈의 극우집회 등에서 보듯이 걸림돌이 되어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모습만 부각되어 보입니다만, 이는 표면상 보이는 파도 물결과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저류에서 도도히 흐르는 흐름에서는 신앙인들과 신념을 지닌 선의의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무수한 선택의 연속으로 방역도 경제도 선방하고 있는 모습도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면서 불요불급한 모임을 자제하고 꼭 필요한 외출을 할 경우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 감염원을 차단하면서도 사재기 소동을 벌어지지 않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마스크를 만들어 나누어주는 일이나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식량을 배달하는 일도 숨은 의인들이 일상적으로 벌이는 선행들입니다. 


이런 일상의 씨줄과 함께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위기 대처 능력을 성장시켜온 역사의 날줄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 같은 비극이 일어났을 때에는 함께 슬퍼하는 리본을 달았고, 무능한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면 퇴진을 요구하는 혁명의 촛불을 들었으며, 부당한 수출규제로 일본이 갑질을 일삼으면 기업인들은 소재와 부품과 장비를 국산화시키고 시민들은 일제 불매운동으로 맞섰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발생하면 방역을 담당한 공무원들과 의료인들이 앞장 선 선두를 일반 시민들이 적극적인 협조로 뒤따라갔습니다. 이 모든 행동을 외신들이 다 지켜보면서 선진국들의 모범이라면서 치켜세우고 있는 선진한국사회의 역사의 날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복음선포의 일상을 집대성해서 보여주는 대목이 나왔습니다. 고향인 나자렛 회당에서 사명을 천명하신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가 살던 카프르나움으로 가셔서 하신 활동이 그 대표적입니다. 아픈 이들은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이들은 마귀를 쫓아내서 제 정신을 차린 자유인으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렇듯 치유와 구마 활동은 예수님께 일상적인 복음선포 활동이었습니다. 하도 많은 이들이 고침을 받고 해방되었기에 베드로가 살던 마을 카파르나움은 ‘예수의 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복음이 전해주는 내용이 일상적인 씨줄에 해당된다면, 독서가 전해주는 내용은 사도 바오로가 복음을 선포한 코린토 공동체의 교우들이 성장해 온 과정을 회고하는 역사의 날줄에 해당됩니다. 


바오로도 예수님처럼 치유와 구마의 사도직으로써 복음을 선포했을텐데, 젖먹이에게 단단한 음식을 먹일 수 없듯이 믿음이 어린 상태에서는 아프다면 고쳐주고 마귀 들려 오면 그 마귀를 쫓아내주는 정도의 일방적인 베풂만 할 수 있었겠지만, 믿음이 성숙한 후에는 다른 이의 신체적 아픔에도 눈을 돌리게 되고 심지어 다른 이들의 정신적 아픔도 낫게 해 줄 수 있는 등 치유 사도직에도 동참할 수 있었을테고 마귀 들린 이들을 해방시켜 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이 겪었을 상처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부마 상태에서 해방된 이들에게 아직도 마귀 들려 고생하는 이들에게 봉사하는 삶으로 인도함으로써 온전한 해방이 될 수 있게끔 노력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촌에서 일상 생활은 고난과 곤란의 연속이었지만 1854년 무렵 메스트르 신부는 성영회(聖嬰會. Saint Enfance)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활동은 본시 1843년에 파리에서 올봉 쟝송(Holbon Janson)이 시작한 것인데, 죽음이 임박한 미신자 어린이에게 대세를 주고, 버려진 아이들을 독실한 신자 가정에 맡기며, 다달이 양육비를 지원하여 키우는 활동을 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활동이 불과 십여 년 만에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였던 메스트르 신부에 의해서, 그것도 박해가 한창 극성을 부리던 조선에서, 더군다나 심산유곡에 흩어진 교우촌의 교우들에 의해서 일상적인 활동으로 퍼져나갔던 것입니다. 이 성영회 활동으로 자라난 아이들에게는 생업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혼처와 일자리까지 알선해 주었습니다. 


당시 성영회 운영규칙에 의하면, 젖먹이들을 위해서는 유모를 구했으며, 양육을 위탁받은 이들은 아이를 신실한 신자로 키웠습니다. 위급 시에 대세를 줄 담당 여성신자들도 임명되어 있었습니다. 신부들은 공소를 방문할 때마다 이 어린이들을 직접 만나서 양육 상태는 물론 교리 지식 습득 상태도 살폈습니다. 그 결과 1859년 통계에 의하면, 외교인 자녀의 임종 때 대세자가 908명, 교우 자녀로 영세한 어린이가 840명, 직접 돌보아주던 어린이들은 43명이었습니다. 이처럼 성영회 활동은 박해시대 교우촌에서 일상적으로 실천하던 복음선포 활동이었습니다. 


종교예식을 하기 위해 모여서 대면적인 방식으로 미사를 하는 일은 사태의 진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도 있는 겉표면의 대응방식일 것입니다. 소모임조차도 자제하라고 요청한다면 레지오 모임도 반모임도 연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들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애덕 실천 활동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박해시대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일상의 씨줄을 이 코로나 시대에 역사의 날줄로 이어받아야 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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