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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적 열광주의자와 그 대중
  • 김진호
  • 등록 2020-09-17 13: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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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팬데믹스: 파국의 징후들’입니다. - 편집자 주


사라지는 장소들, 그리고 예배당

다시 대감염의 공포가 엄습했다. 코로나19 1차 대감염 사태 때엔 그것이 얼마나 가공할 파괴력을 갖는지 몰랐다. 그런데 막상 대감염의 계곡을 지나는 것은 상상보다 훨씬 혹독했다. 정부는 ‘거리두기’라는 대응 매뉴얼을 국민에게 강력히 권고했다. 그런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던 다른 나라들은 거의 사회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거리두기’는 필요했고 적절했다.


거리두기가 철저히 실행되자 사회는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그 무렵 시민의식을 조사한 한 연구는 ‘일상 정지’라는 표현을 썼다. 거리는 한산했고, 식당도 시장도 백화점도 인적이 드물었다. 공원도 도서관도 극장도 텅 비었다. 전시도 공연도 강좌도 학술회의도 사라졌다. 심지어 교실도 일터도 사라지고 있었다.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되었던 이런 장소들, 그 장소들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간의 일상적 뒤얽힘의 기능이 마비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상적 뒤얽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즐거움, 유익함, 소속감 등은 이제 다른 데서 얻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뒤얽힘의 제도를 운용하며 살아갔던 무수한 사람들은 생존이 위협당했다.



▲ (사진출처=KBS뉴스 갈무리)



두 개의 종교적 열광주의

이러한 ‘거리두기’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또 하나의 장은 ‘개신교의 예배당’이었다. 가톨릭이나 불교에 비해 한국 개신교는 집회의 횟수와 신자의 참석율을 통해 존속했고 발전했던 종교전통을 갖고 있다. 개신교 신자들은 종교집회를 통해 내세적 구원뿐 아니라 현세적 보상도 약속받았다. 그 내세적이고 현세적인 축복을 획득하기 위해 신자들은 종교제도에 충성을 다했다. 그중에는 열정적 리액션을 수행하는 예배 참여 태도가 필요했다. 힘껏 부르짖는 “아멘”, “할렐루야”라는 외침, 그리고 열렬한 기도와 방언, 율동, 찬송 등.


그런데 1990년대 중반쯤부터 한국개신교는 중대한 변화를 맞았다. 새 신자의 유입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양적 팽창에 성공한 교회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은 서울 강남, 강동, 분당에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 성공한 교회들의 모델이 무수한 교회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모방되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모델이 된 성공한 교회들은 중상위 계층의 신자들로 가득했고, 그런 이들의 일상 문화를 신앙제도로 구현해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인적, 물적 자원이 풍족해야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예배는 하나의 공연이 되었다. 전문화된 예배기획자, 연주팀, 찬양팀, 성가대, 음향・조명・영상 미디어팀 등 전문가 조직의 일사분란한 조합을 통해 공연으로서의 예배가 구현되었다. 그리고 이미 문화적으로 고품격 취향의 주체가 된 중상위계층 신자는, 담임목사의 열광적 팬으로서 리액션하는 자가 아니라, 공연의 세련된 수용자가 되었다.


문제는 그 교회들을 모방한 무수한 다른 교회들이 그만큼의 자원을 보유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또 그 신자들은 고품격의 문화소비자가 아니었다. 해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그 모델들을 모방해도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다. 하여 많은 교회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만성화된 위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하여 신자들은 교회에 대한 충성심이 현저히 이완되었고 적잖은 이들이 떠났다. 한데 교단도, 신학교도 그 위기를 분석하고 대응하려 하지 않았다. 특히 계층적 양극화를 해결하려는 거의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대개의 교회들은 이러한 변화를 해석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 주목할 만한 두 가지 다른 유형의 신앙운동이 일어났다. 정치적 열광주의와 비정치적 열광주의가 그것이다. 이 둘은 모두 ‘종교적 열광주의’라는 점에서 신앙적 언술이나 집회 양식에서 유사성을 보인다. 한국사회에서 종교적 열광주의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부흥운동이다. 1950년대 중반, 전후(戰後)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대중적 구마사들이 주도한 부흥운동이 그 뿌리다. 그런 부흥운동은 1970~80년대 부흥사들의 시대를 낳았다. 한국개신교의 대대적인 양적 팽창은 바로 이들 부흥사들의 활약에 기인한다.


한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양극화가 극심해진 지형에서 개신교의 주된 흐름이 중상위계층적 종교운동으로 이행하고 있을 때, 그 흐름에서 소외된 이들 사이에서 두 범주의 열광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비정치적 열광주의를 대표하는 것은 ‘신천지 현상’이다. 거기에는 이만희라는 부흥사가 있었다. 그리고 정치적 열광주의를 대표하는 것은 ‘전광훈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전광훈이라는 부흥사가 그 중심에 있다. 이 두 현상이 불꽃을 일으키며 열광주의적 종교현상으로 세간에 확고하게 인지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부터였다. 한국 개신교의 중상위 계층화 현상이 본격화된 직후이고, 그 현상과는 달리 주로 중하위 계층에서 일어난 신앙적 재활성화(revitalization) 운동의 특성을 갖는다.



전광훈, 극우적 열광주의자

전광훈이 세간에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98년 그가 설립한 ‘청교도영성훈련원’을 통해서다. 이때는 그가 개척한 사랑제일교회가 답십리에서 장위동으로 이주(1995년)한 직후다. 외환위기로 사회가 극도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이 교회는 규모를 늘려 이주할 만큼 성공을 구가하고 있었다. 교회가 위치한 장소가 서울의 전통적 서민 지역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교회의 성공은, 부흥사들의 성공이 대개 그렇듯이, 주로 서민층 신자 사이에서의 성공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 사랑제일교회는 중형 규모의 평범한 교회에 다름 아니었다.


한데 청교도영성훈련원이 개최한 열광주의적 부흥회가 중소형교회 목회자들과 사모(목사의 부인)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세미나 참석자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절망감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위기 시대였고 교회 역성장의 시대였다. 교회는 좀처럼 부흥하지 못했고 목사와 신자들은, 그의 표현에 의하면, 영적인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 향한 전광훈의 메시지는, 요즘의 그보다는 좀더 추상적이었지만,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사회는 부패했고 타락했다. 그런 완악한 세계가 교회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교회에 집중하기보다는 세계를 개혁해야 한다. 그는 그것을 ‘청교도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논리적 비약이 더해진다. 사회의 부패와 타락의 근원에는 공산주의가 있다. 하여 그의 해법은 빨갱이와 손잡은 종북세력의 척결이었다.


특히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2003년 이후 그의 발언은 현실정치에 직설적으로 개입했다. 교회가 겪고 있는 위기는 외적 요인, 즉 종북정권의 적그리스도적 정치의 탓이었고, 그 악한 정치의 주역이 바로 노무현 정권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007년 대선국면, 그는 이명박 대통령을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이라는 폭탄선언을 한다. 매 기수마다 2~3천 명의 목사와 사모들이 참석하는 청교도영성훈련원 세미나는 점점 반공주의적 기독교 정치 네트워크로 작동했다. 반공주의 성향을 갖고는 있지만 정치적 참여에 소극적이었던 많은 목사들은 전광훈과 함께 이명박 장로 대통령 만들기 전투의 전사가 되었다. 이렇게 17대 대선국면에서 전광훈은 극우 성향의 목사들 사이에서 스타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는 개신교계에서 이렇다 할 기반이 없는 아웃사이더였다. 그의 공로는 집권세력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그것은 그로 하여금 독자적 기독정당 운동에 뛰어들게 했다. 물론 이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다음 행보는 잘 알다시피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는 것이다. 극우파들이 득세하던 정부였던 박근혜 정권이 탄핵으로 마감한 뒤 지리멸렬한 극우주의 세력이 ‘태극기 집회’라는 이름으로 국회에서 광장으로 구심적 장소를 이동했다. (대중집회를 이끄는 데 능숙한) 부흥사인 그에게 더없이 적합한 무대로 극우주의적 장이 옮겨간 것이다. 그것이 한 이유가 되었을까, 수백회의 작은 집회가 대규모 군중이 결집하는 집회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광훈은, 개신교 극우를 넘어서, 한국사회 극우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그 연장선에서 그는 또 한 번의 대규모 시위인 2020년 8.15광화문 집회의 주인공이 되었다.



위험한 순교론

8.15집회 이전에 사랑제일교회에 코로나19 감염자들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현 정부에 증오에 가까운 반감을 갖고 있고 코로나 관련 가짜뉴스를 맹신하고 있는 극우적 대중은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충실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 중 다수가 열악한 노동현장이나 주거환경 아래 놓여 있다. 알다시피 코로나19는 취약계층 사이에서 더 많이 확산된다. 사랑제일교회 교인도 상당수 그런 이들에 속하며, 그런 이들과 폭넓은 교류관계에 있다.


또 ‘장위뉴타운’ 10구역에서 이 교회는 알박기 중에 있다. 인근 주민이 거의 다 이주했고 교회만 남아 있는데, 서울시 지방토지수용위원회가 책정한 이주보상금 82억 원보다 7배나 많은 563억 원을 요구하고 있는 교회는 명도소송에서 패소했고, 강제철거될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일부 신자들이 교회에서 집단 기거 중이었다. 이것도 코로나에 취약한 상황이다. 실제로 전광훈 자신도 감염되었고,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는 21일 낮 12시 기준 총 732명이다. 계속 당국의 감시망을 회피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이 감염병이 사회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의 건강도 위협받고 있음을 모르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전광훈이 말한 ‘순교’라는 말에 주목하게 된다. 평소 그의 과장된 언행으로 보건대 이 말이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그것이 회자되면서 그 말의 무게가 어느 정도는 그와 그의 대중을 비장하게 만들고 있음은 분명하다.


‘순교’ 담론은 전형적인 영웅신화의 일부다. 영성학자 조민아(조지타운대학)에 의하면, 낡은 것이 해체되고 새것이 제도화되기 이전의 ‘인터레그넘’(interregnum·최고지도자 부재기간)의 시대, 특히 시각문화에 압도되는 후기자본주의적 ‘인터레그넘’의 시대에 대중은 영웅의 피에 굶주려 있다. 이런 세계에서 사람들은 타자의 죽음이나 죽임을 고통없이 작동하는 가상적 현실처럼 체감한다. 반면 자신이 겪는 고통은 실제의 뼈저린 경험이다. 해서 사람들은 더 손쉽게 자신의 고통을 대속해줄 숭고한 영웅의 죽음을 갈망한다. 극우든 극좌든, 극단주의자들은 더욱 그렇고, 개신교 열광주의자들은 더더욱 그렇다. 전광훈과 그의 대중은 그런 담론 속에 살고 있다.


그들은 병원 전문의의 진단보다는 구마사의 주술을 더 신뢰한다. 그런 이들에게 ‘순교’는 영웅신화의 주인공이 될 기회를 자기 자신에게 제공할 수 있다. 필시 그들에게 순교는 컴퓨터게임 같은 가상체험의 일부일 것이다. 해서 그들은 그 말을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그 속에는 타락한 세상을 대속했다는 영웅심이 작동한다.


한데 그런 영웅주의가 그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은 데도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만용의 블랙홀 속으로 그들이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영웅주의는 타인의 고통에 무심하다. 그것이 제2차 대감염의 문턱으로 우리 모두를 몰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위험한 순교론은 모두에게 재앙이다.


김진호(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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