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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전 ‘빨갱이’로 몰렸던 선생님은 아직도 재판중 - 재심중인 강성호 교사, “개인적 한풀이가 아니다”
  • 강재선
  • jseon@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02-16 13:16:51
  • 수정 2021-02-16 14:2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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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강성호 선생님 SNS)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교사였기 때문이다.


강성호 선생님은 노태우 정권의 ‘공안 조작 사건’ 피해자다.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의 폐해가 남아있던 1989년 초임 교사로 발령 받은 강성호 선생님은 발령을 받은지 3개월도 되지 않아 학생들에게 ‘6.25는 북침이다’(남한이 북한을 침공했다는 의미로 해석)라고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이듬해 최종적으로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고, ‘빨갱이’로 몰려 해직되었다. 


사실 이 사건은 전국교사노동조합(이하 전교조) 결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당시 강 선생님을 포함해 전교조 결성과 활동에 참여했던 상당수 교사들은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고 해직되었다. 


노태우 정부는 대공 수사를 담당하던 경찰들을 활용해, 정권에 대항할 조짐이 있다고 판단한 전교조의 결성을 저지하고 전교조에 참여한 사람들을 탄압하기 위해 온갖 황당한 공안 사건을 꾸며냈다. 


그 중에는 학생들의 낙서판에서 ‘김일성을 만나고 싶다’는 메모를 지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교사도 있었다. 낙서를 지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것도 황당하지만, 실제 학생이 적은 그 낙서는 ‘김일성을 만나고 싶다. 6.25를 일으켜 우리 민족에 비극을 일으킨 그 자를’ 이었다. 강 선생님이 ‘6.25는 북침이다’라고 가르쳤다는 증언 역시 경찰에 의해 유도되거나 꾸며진 정황이 파다했다.


일본어를 가르치는 강 선생님이 수업시간 북한에 대해서 한 말이라고는 일본 사진작가 구보타 히로지의 백두산·금강산 사진첩(『북녘의 산하』, 한겨레신문사)을 보여주며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여러분도 백두산에 갈 수 있겠지요”, “여러분이 보기엔 평양이 잘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랑 체제가 많이 달라요. 서울에 이런 동상이 있다는 게 상상이 되나요?”라는 말뿐이었다.


강 교사는 10년간의 투쟁 끝에 1999년 복직했고, 2006년 노무현 정부 당시 행정안전부 산하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를 통해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도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국가보안법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였다. 강성호 선생님은 개인적인 억울함뿐만 집권 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악용하는 국가보안법 제7조 폐지를 위해 ‘재심’을 받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깊은 고민 끝에 2019년 5월 재심을 청구했고 그해 11월 재심이 결정되었다. 하지만 강 선생님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였던 증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불법으로 점철된 국가보안법 재판



▲ (사진출처=강성호 선생님 SNS)


강성호 선생님의 국가보안법 재심은 2020년 1월 30일 시작되어 올해 1월 28일까지 꼬박 1년간 6차례의 공판이 이루어졌다. 공판에서는 과거 국가보안법 유죄의 근거가 되었던 증언을 했던 증인들을 다시 불러 이를 확인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강 선생님은, 이번 재심이 받아들여진 가장 큰 이유는 경찰의 불법 체포와 구금이었다고 말했다. 재심 사유를 검토한 재판부는 1989년 구속영장, 미란다 원칙 고지, 체포영장 등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이루어진 체포 및 구금이 형사소송법 124조를 어긴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즉 당시 경찰의 체포 행위부터 적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강 선생님을 불법 체포·구금한것은 물론 그가 당시 머물고 있던 하숙집을 불법으로 압수수색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학생들에게 ‘강 교사는 너희들이 아는 그런 선생이 아니다’라며 계속해서 진술서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고, 당시 정부 검열기관에서조차 ‘용공성이 없다’고 판단한 민중가요, 교육 관련 서적을 가지고 그를 국보법 위반으로 몰아갔다. 


게다가 ‘6.25는 북침이다’라는 말을 강선생님이 했다고 증언한 학생 중에는 그 수업 당일에 결석했던 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 증언 자체에 대한 의혹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불법 수사와 증언 유도로 이뤄진 판결은 “‘6.25가 북침이라고 가르칠 개연성이 높다’는 식의 참 웃기는 이야기”가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단 한 자도 바뀌지 않았다”


강성호 선생님은 이번 겨울방학과 봄방학 사이에 학생들과 함께 보았던 자신의 재심에 관한 영상 이야기를 했다. 


강 선생님 사건과 재심을 다룬 < 뉴스타파 > 영상을 보여주자 이제 어른이 된 한 학생은 ‘왜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됐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강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오늘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웃을 수 있는 자유, 우리의 인권과 자유가 그냥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여러분이 시민으로서 지켜야할 책임과 누려야 할 권리를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제 사건과, 국가보안법은 단 한 자도 바뀌지 않았다. 개인적 원한으로 한풀이 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가 두 번 다시 군부 독재시절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남기고 싶다.


강 선생님은 국가보안법 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 역시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재심 공판에는 7명의 증인 가운데 4명만이 출석했고, 출석한 증인들조차 ‘기억이 없다’는 식의 답변을 되풀이하는 모습을 보면서 “허망했다기보다는 가슴이 확 막혔다”는 것이다. 


강 선생님은 “32년 전에 제가 초임 교사로서 학생들과 수업하다가 그냥 경찰서로 강제 연행된 뒤에 수갑을 찬 상태에서 제자들을 만나 경찰서 대공과에서 무슨 얘기를 주고받았는지, 그 때 학생들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얘기했는지, 저는 눈빛과 행동 하나하나 기억나는데 그 제자들은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다)”며 안타까워했다. 


강 선생님은 국가보안법이 “시대에 뒤떨어진 법”이자 “인간의 영혼을 말살하는 악법”이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사건과 관련해서도 “그 제자들이 왜 그랬겠나”라며 경찰이 유도하는대로 진술서를 쓸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국가보안법이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국가보안법이 “우리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인 비판적 사고, 다양한 의견을 나타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며 동료 교사들이 재심 소식을 듣고 서명을 모아 탄원서를 제출하려 하자 젊은 교사들이 ‘무섭다’는 이유로 서명에 동참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같은 일이 “2021년 현재 대한민국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며 “민주사회에서 동료 교사가 30년 만에 억울한 재심을 하겠다는 탄원서에 서명조차 못하게 하는 게 국가보안법”이라고 꼬집었다.


‘신앙’과 ‘교사의 책임감’으로 버틴 세월 32년



▲ 거제도 천주교순례지서 강 선생님 부인이 동백꽃으로 쓴 `재심 승리`(사진출처=강성호 선생님 SNS)


강성호 선생님은 어떤 힘으로 32년이라는 긴 세월을 견뎌내고 재심까지 할 수 있었을까? 


그는 가장 먼저 ‘신앙’을 꼽았다. ‘빨갱이’로 몰려 수사를 받는 상황 속에서 성경에 나오는 시련에 관한 구절들과, 가장 가까운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한 ‘인간 예수’의 이야기를 떠올렸다고 한다.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1코린 10, 13)


강 선생님은 “시대적 정황 속에서 ‘누군가가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한다면 겪어내야겠지’라고 생각했다”면서 “당시 나이가 스물여덟이었고 아직 젊으니 ‘내가 한 번 감당해보자’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강 선생님은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교사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시 군부독재 정권은 학생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이른바 전교조 결성을 저지하고자 하는 공안 조작 사건을 만들었던 것이라며 “여기서 좌절하고 절망해서 쓰러진다면 누가 가장 좋아할까.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학교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일상 속 ‘민주시민교육’ 필요해


강 선생님은 특정 정권에서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는 것을 가로막는 사태를 두고 “우리 시대 교사들의 역할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민주시민교육”이라고 말했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의 가치에 대해 너무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일상적으로 시민으로서 누려야 될 권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우리의 법적, 제도적 장치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것이 때로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도구로 둔갑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장치가 시민들의 권리를 억압하지 않고 정당한 절차와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강 선생님은 민주시민교육이 교과서 속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시민적 권리와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을 현실 속에서 늘 배우고 깨우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 선생님은 지난해부터 매주 화요일 청주지법 앞에서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와 '정의로운 재심판결'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그나마 많이 알려진 재심 사건인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서 누명을 쓴 피해자들과 같은 이들은 힘없고, 배운 것 없고, 가난한 사람들이었다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회


마지막으로 강성호 선생님은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 당시 대표적인 용공 조작 사건인 민청학련 사건을 폭로한 제임스 시노트(한국명 진필세) 신부를 기억하며 천주교회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는 염원을 밝혔다.


우리 시대에서 참된 신앙은 무엇일까. 결국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강 선생님은 시노트 신부가 지었던 인천 용유성당과 시노트 신부가 잠들어있는 파주 참회와속죄의성당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뒤늦게 시노트 신부의 존재를 알았을 때 “정말 부끄러웠다”고 회고했다. “저를 비롯한 신자들이 너무 교회 안에서 서로 좋은 것만 이야기하고, 좋은 것만 보려고 하고, 너무 높은데만 바라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뒤에 있는 아픔에 대해서 같이 공감하면서, 공감뿐만 아니라 작은 실천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선생님은 3월부터 휴직에 들어간다. 그는 “30년 전 순간순간을 복기하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한다. 그래서 마음을 정리하고 다 잡기 위해 몸과 마음을 조금 쉬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강 선생님은 32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진행중인 자신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제도와 체제,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에 갇혀 재심조차 신청하지 못 한 이들의 고통을 이야기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내가 교사였기 때문”이라고 굳게 이야기 하는 선생님의 음성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에도 바뀌지 않은 국가보안법에 흔들림 없이 맞서는 강 선생님에게 응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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