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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본받기 위해서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십자가도 짊어져야 - [이신부의 세·빛] 예수의 십자가: 모욕과 수모, 배신과 무관심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03-31 12:44:52
  • 수정 2021-03-31 12:4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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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수요일(2021.3.31.) : 이사 50,4-9; 마태 26,14-25  


오늘 독서는 고난받는 종의 세 번째 노래입니다. 이사야가 전해준 메시아 예언 가운데에서 메시아의 수난을 가장 실감나게 내다본 대목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은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배신할 것임을 처음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서 공표하신 대목으로서, 메시아가 겪는 수난이 비단 바깥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안에서도 얼마든지 올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박해자들이 주는 모욕과 이로 인해 군중 앞에서 당하는 수모가 외적인 수난이라면, 믿었던 제자의 배신과 이를 눈치 채지도 못하는 제자들의 무관심은 내부의 수난입니다. 


모욕과 수모 같은 외부의 박해도 고통스러운 아픔이지만, 내부의 배신과 무관심도 마음 아프게 하는 고난입니다. 이사야는 수백 년 후에야 나타나실 메시아의 고난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실감나게 묘사해서 전해 주었습니다. 고난을 주는 모습만이 아니라 그 고난을 받아들이는 메시아의 자세를 더욱 실감나게 전해 주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메시아의 자세를 자신을 낮추고 비우시는 자기비허(自己脾虛)의 영성으로 고백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에게만이 아니라 당신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자기비허의 영성으로 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허물과 탓을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일 자체도 고통스럽지만, 이 고통을 참고 기다려주자면 자신을 낮추고 자기를 비우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실 때, 아마 당신의 말씀을 듣던 군중 가운데 열성과 신앙이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셨다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밤새워 기도하시며 고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고르고 골라서 열두 명만 뽑으셨을 텐데도, 이 중에서 배신자가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를 눈치 채시고도 발설하지 않으시다가 오늘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발설하신 것인데, 정작 당사자는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카리옷 유다는 배신한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나머지 제자들이 저마다,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고 있습니다. 황당한 일입니다. 배신을 지목해서 시킬 수 있는 게 아닌데, 어떻게 이런 물음이 가능할까요? 


결국 추론해 보자면, 나머지 제자들도 배신자로 지목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양심이 찔릴 건수가 한 가지씩은 다 있었다는 이야기이고 죄다 허물을 지니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이들을 부르시고 함께 지내시며 참아 받아주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3년 동안이나 사도로 양성받으면서 종종 엇박자를 내곤 했었습니다.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깨달음이 굼뜨다고 야단을 맞는 일은 다반사였고, 그 중에서도 세 번에 걸쳐서 그 중요한 수난과 부활 예고를 하시는 자리에서조차 알아듣지 못하고 서열 다툼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몰이해와 무관심, 그리고 얄팍한 믿음은 예수님께 또 다른 십자가를 안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제자들을 기다려주셨습니다. 심지어 배신할 눈치가 뻔히 보였던 유다에 대해서도 먼저 내치지 않으시고 끝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도 다시 정신차리기를 바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가 기어코 배신의 길을 가려 하자,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요한 13,27) 하고 놓아 주셨습니다. 그의 배신으로 인해 당신이 당해야 할 고초가 뻔히 내다보이는 상황에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분이 겪으셔야 했던 또 다른 고난이요 짊어지셔야 했던 또 다른 십자가였습니다. 그랬기에 나중에 부활하신 스승을 만난 제자들이 대오각성(大悟覺醒)을 하고 담대한 믿음과 용기를 지닌 사도로 거듭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도들 상호 간에 빚어지는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지에 대한 살아있는 교훈을 얻었을 것입니다.


내부의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어려움이 크기는 비록 작아 보여도, 느끼는 정도는 더 클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외부 시련이 닥쳤을 때 서로가 한마음으로 대처하다가도, 내부의 작은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마는 경우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합니다.  


요컨대,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는 인간관계에서 생겨나는 십자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짊어져야 합니다.


- 우선, 사람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그저 짧게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면 되도록 함부로 엮이지 않는 것이 좋지만, 오래도록 함께 할 인연이라면 고심과 기도로 신중하게 만남을 시작해야 합니다. 함께 하겠다는 우리의 말이 거룩해질 것입니다.


- 둘째, 일단 함께 하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어주어야 합니다. 실망을 안겨주거나 갈등을 초래하는 경우에도 그렇습니다. 믿어 주고 기다려주는 동안에 우리의 뜻이 거룩해지고, 우리의 삶도 성화될 수 있습니다.


- 셋째, 심지어 함께 하는 이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경우에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를 당신 도구로 삼으십니다. 예수님께서 비록 유다의 배신을 당하셔야 했지만, 그분의 제자 용병술 성공률은 11/12, 즉 92%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다 자리를 채운 마티아까지 포함하면 열두 제자가 모두 사도가 되어 자신들을 위하여 돌아가신 스승을 위하여 일생과 목숨을 바쳤습니다. 성공 확률 100%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살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죽는 인간관계의 황금률입니다.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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