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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세상을 향하여
  • 이기우
  • 등록 2021-04-30 17: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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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성요셉 기념일 (2021.5.1.) : 사도 13,44-52; 요한 14,7-14 



▲ 노동절 제정의 근간이 된 시카고 `헤이마켓 사건` 삽화


5월은 성모성월이고 그 첫 날인 오늘은 노동자 성요셉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지난 3월 19일에 성 요셉 대축일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분을 노동자의 주보로 기억하기 시작한 때는 1955년부터입니다. 그것은 1886년부터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이 날, 5월 첫째 날을 ‘8시간 노동제’를 역사상 처음으로 외쳤던 날로 기념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존엄성과 노동자의 노동 인권을 당사자들이 주장한 첫 움직임입니다. 이를 외면하기 어려웠던 가톨릭교회에서 노동자들의 주보성인으로서 요셉 성인을 70년 만에 전례적으로 소환하게 된 것입니다. 


노동절의 기원이 되었던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습니다. 1886년 5월 1일에 미국 시카고에서 8만 여명의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8시간 노동제 쟁취’ 구호를 내걸고 총파업으로 궐기했는데, 경찰과 군대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는 유혈 사태가 처음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2년 후 같은 날에 모든 나라, 모든 도시에서 같은 구호를 내건 국제 시위가 조직되고, 각국 노동자 대표들이 이날을 노동절로 선포하는 제1회 국제대회를 치르는 등 반향이 거세었을 뿐 아니라, 그로부터 1년 후인 1891년에는 레오 13세 교황도 노동자의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는 첫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를 반포함으로써 강경하게 대응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 시카고 시위는 지옥과도 같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노예처럼 장시간 동안 일하고도 최저수준 이하로 살아야 하는 노동자의 처지에 가톨릭교회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레오 13세 이후 역대 교황들은 이러한 사회문제 개입의 노선을 최우선정책으로 삼아 지속했는데, 이는 가톨릭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는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도신경에 빠졌던 주요 계시 중 하나를 2천 년만에 보완하는 획기적인 변화였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던 예수님의 유언이었는데, 이는 또한 성전과 제사를 중심으로 해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과 가난한 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하느님의 길을 찾으시던 예수님의 삶을 상기시키려는 노력이었습니다. 


사실 루카복음서 4장에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성령께서 당신을 보내셨다고 예수님께서 사명을 장엄하게 천명하시는 나자렛 선언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도 고대교회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천명하기 위한 신앙고백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워낙 예수님의 신성을 중심으로 삼고 또 성령까지도 포함된 삼위일체 신앙을 내세우는 일이 중요하고 급했기 때문에,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 명제는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은 듯 했습니다. 


하지만 로마 교회의 부제 라우렌시오 이래로 수많은 성인성녀들의 삶에서 간헐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1886년에 일어난 시카고 노동자 시위가 불쏘시개가 되어 그 반향이 국제적으로 커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레오 13세 교황이 1891년에 ‘새로운 사태’라는 이름으로 첫 사회회칙까지 반포하자 1919년에 국제노동기구가 발족되었습니다. 


후임 교황 비오 11세도 1931년에 ‘사십주년’ 회칙을 반포하는 등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부각시키자, 이런 가톨릭교회의 움직임이 일종의 ‘방아쇠 효과’를 발생시켰습니다. 오늘 노동절을 노동자 성요셉의 이름으로 교회가 기념하게 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노동자 문제라는 사회적 잇슈를 가톨릭 전례 안에 도입하는 목적은 이 명제를 신앙의 빛으로 조명함으로써 이에 대한 하느님의 뜻으로 신자들을 깨우치는 한편, 교회도 이 문제를 정식 사도직으로 삼아서 공동선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뜻이 있습니다. 아울러 노동의 존엄성을 위협할 수 있는 이른바 ‘자본주의’의 우상숭배적 경향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필립보에게 하신 말씀이,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요한 14,9)이라는 전권주장이었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레오 13세 이후 역대 교황들은 예수님의 삶을 통하여 노동에 관한 하느님의 뜻을 가톨릭 사회교리로 풀어내었습니다. 특히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1년에 회칙 ‘노동하는 인간’을 반포함으로써 앞장섰습니다. 


이에 따르면, 노동은 사랑과 함께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존재 이유이며, 노동으로 사랑을 완성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창조의 노동을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도 목수 노동을 하시다가 복음선포의 노동으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닮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입니다. 자본주의자들은 노동의 귀천을 소득과 재산으로 따지지만 이는 무신론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노동에 관한 가톨릭 사회교리에 의해서는 노동의 귀천이란 그 노동으로 얼마나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예수님을 본받는지에 따라 정해집니다. 


이러한 노동의 진리에 따라서, 노동으로 인간은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며 자기를 실현하고 하느님 창조 사업에 동참할 수 있으므로 노동은 존중되어야 합니다. 자본은 수익을 창출하여 사람들을 고용하는 공동선의 도구이며, 이 기술이 경제이고 경제가 노동에 봉사하도록 조정하고 감독하는 것이 정치이고 정부입니다. 


노동은 사회를 구성하고 조직하는 원리로서 사랑이신 하느님을 드러내야 하고 인간의 품위있는 존엄성을 해치는 공적(公敵), 즉 굶주림과 공포와 무지와 빈곤 등을 극복하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인간 존엄성의 표지인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같은 최고선을 실현시켜주는 수단으로서 노동의 존엄성이 지켜져야 합니다. 이러한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를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대동세상’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정신으로나 육체로 인간은 누구나 노동하는 존재로서 하나가 되는 그런 사회가 대동세상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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