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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음화와 교회 민주화의 대원칙
  • 이기우
  • 등록 2021-05-13 19:48:42
  • 수정 2021-05-14 14: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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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티아 사도 축일(2021.5.14.) : 사도 1,15-26; 요한 15,9-17

 

오늘은 성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5,9.12) 하신 예수님의 계명에 따라서, 초대교회가 행한 첫 일은 제자들 가운데에서 떨어져 나간 유다의 자리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비롯하여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모였습니다. 이 무리는 우선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열두 제자 가운데 열한 명과, 그들이 전국으로 흩어져 복음을 선포하면서 합류한 예순 명에다가, 이 일흔한 명이 또 두 번째로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하면서 확보한 토박이 지지자들을 포함한 숫자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던 공생활 동안 줄곧 동행했던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뽑아서 유다의 자리를 채우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초대교회의 첫 행적을 통해서 세상을 복음화 시키고 교회도 민주화하는 큰 원칙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뽑으셨다는 제자 선발의 역사성을 계승하는 일은 그분이 예언자적 정통 노선을 걸으시고자 하셨고 이 노선을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왕정시대에 우상숭배에 물들어 훼손되기도 했으나, 본시 이스라엘 백성의 질서는 열두 지파의 연합체제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한 개인이 왕정에서 왕이 휘두르는 전제적 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지 않았고, 오직 하느님만이 이스라엘의 목자요 왕이셨습니다. 그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혈통이 좋아도, 그는 하느님을 믿는 백성의 일원이었을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시적인 지도자는 이 열두 지파의 연합체제 안에서 지파별 대표자들이 하느님께서 부르셨다고 인정되었던 예언자들, 즉 모세, 여호수아 그밖의 여러 판관들과 사무엘 같은 지도자들만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유다가 스승을 배신하고 나간 그 자리를 채우고자 했던 것이었고, 또 그렇게 해서 채워진 열두 사도들이 순교하여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열둘이라는 숫자가 중요했던 것이 아니라 예언자적 정통 노선에 따른 연합체제의 공동합의 전통을 회복하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뜻이 계승되어야 한다는 예수 추종의 의지가 중요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선택하셨던 예언자적 정통 노선은 하느님의 구원의지에 직결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인류를 당신 백성으로 이끌고자 원하셨고, 그 백성 안에서 당신의 나라가 세워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단계적인 절차에 따라서 먼저 당신의 뜻을 가시화시켜 구현할 수 있는 이스라엘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런데 왕정시대를 거치면서 이 뜻이 훼손되고 줄어들고 심지어 왜곡되기까지 했기 때문에 구세주를 보내신 것이고, 따라서 세상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께서는 원상회복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이 열두 제자의 연합체제와 이들에 의해 계승되어야 할 성체성사, 그리고 이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써 예수님의 생명을 이어받아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할 하느님 백성, 즉 교회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에도, 또 앞으로도 지켜져야 할 세상 복음화의 원칙입니다. 

 

셋째, 초대교회는 최초에 부르심 받은 열두 제자와, 이들을 포함한 일흔두 제자에다가 토박이 지지자들까지 백스무 명가량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들 모두가 참여한 가운데 추천을 받아 사도 보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추천의 조건은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이를 보편화된 원칙으로 풀면 신앙이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신앙의 충실성 여부는 동료들의 인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바르사빠스 요셉과 마티아, 이 두 사람으로 후보를 압축한 다음, 기도하고 나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관련된 신앙인들의 추천 과정과 기도 그리고 제비뽑기가 교회의 직무를 맡을 사람을 선발하는 절차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이 절차가 교황 선출에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교황직무가 궐위되면, 즉 교황이 선종하거나 퇴위하면 80세 미만으로 선출권을 가진 추기경단이 소집되고, 이들 안에서 투표하여 2/3 이상의 득표를 할 때까지 무제한 계속합니다. 이 동안 외부와는 전면 차단되어 자물쇠로 채워진 방에서 감금된 채로 교황 선출 절차가 진행되기에 라틴어로 ‘감금된’이라는 뜻으로 ‘Conclave’라고 합니다. 황제의 간섭 등 외부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마련된 이 절차가 확정되는데 1천 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넷째, 고대교회 때까지 모든 교회 직무는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라서 관련 신앙인들의 추천에 의해서 선발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서품 공시 절차가 그 흔적입니다. 매우 형식적이 되어 버렸지요. 그리고 신앙의 충실성을 보완하고 확인하는 절차로서 신학 과정을 밟게 한 후 일정 수준 이상을 취득하게 하고 반드시 공동생활을 통해 성품과 신앙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임명 절차가 따릅니다. 이렇게 서품된 사제들 중에서 주교직을 맡을 후보자를 교황이 상시로 확보했다가 궐위되면 그 후보자들 중에서 임명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제 선발에 대한 신앙 공동체의 추천권도 살아나고, 교구와 본당의 책임을 맡는 직무도 초대교회의 전통에 따라 그리고 교황 선출 절차를 참고하여 성서적이고 민주적으로 추천되고 선발될 날이 올 것입니다. 서로 발을 씻어주는 상호 섬김의 공동합의 전통을 활성화시켜야 하는 전통은 그 다음입니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왕정으로 축소, 왜곡, 훼손되었던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여 예수님께서 복원하신 예언자적 정통 노선의 바탕 위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고, 이것이 사회 복음화와 교회 민주화의 대원칙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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