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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거지 된 촛불 시민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나
  • 이원영
  • 등록 2021-06-09 17:05:23
  • 수정 2021-06-11 14:5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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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벼농사는 홍수와 가뭄이 좌우한다. 농사 잘 지으려면 물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개인보다 공동으로 하는 게 낫다. 혼자서 할 수 있는 밀농사나 목축과 다르다. 아시아문명권의 정착농경은 이러한 공동체적 노력의 과정이다. 예로부터 벼농사는 물관리 농업토목을 포함해서 조직적인 공동노동에 의해서만 농사가 지속될 수 있었다.


농지이자 토지는 공동의 노동에 의해서 가치가 성립되는 존재라는 것. 이런 공동체의 크기가 커지면서 관개수로와 같은 대규모 공사 조직을 지휘하는 왕의 권력이 성립되고, 왕토사상도 확립되었다. 왕토사상은 왕 개인의 사유지란 뜻이 아니라, 백성이 권력을 위임한 왕권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땅이라는 생각이다. 곧 모두의 토지라는 말이다. 공자가 평생을 옆에 끼고 읊조리던 시경(詩經)에는 동아시아 문명권의 토지관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구절이 들어 있다.


“하늘 아래 왕의 땅 아닌 데가 없고, 땅 끝까지 왕의 신하 아닌 사람은 없네.”


이 왕토사상은 동아시아 문명권의 보편적인 개념으로 내려왔다. 왕토사상이 현실의 공간에서 작동한 것이 바로 수조권(收租權)이다. 토지로부터 나오는 수확량 가운데 일정량을 국가에서 토지사용료의 개념으로 거두는 것이다. 수조(收租)는 오늘날 용어로는 지대(地代)를 걷는 것을 말한다. 정확하게는 공공지대(公共地代)다.


수조권과 대토 소유한 특권계층의 등장 


세금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세금과는 다르다. 토지의 사용으로 인한 수확량이 발생했을 때 징수하는 것이므로, 일반세금과는 달리 사용료의 개념이다. 경작하지 않은 빈 땅에 대해서는 수조권이 발동되지 않았고 세금도 거두지 않았다. 토지사용시장이 예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내려왔던 것이다. 수조 즉 사용료를 납부하면서도 점유권(경작권)은 인정하고 세습도 가능해주었기 때문에 땅문서가 존재했지만, 국가가 징수하는 수조의 권리는 엄연히 존재하면서 내려왔다.



고대부터도 세상이 점차 복잡해지면서 사적 소유개념도 등장한다. 농사공동체의 개념이 옅어지고 새로운 권력자 혹은 중간권력자(귀족)가 득세하는 세상이 되면 토지는 사용적 존재에서 소유적 존재로도 다변화하게 된다. 일부이지만 왕으로부터 대토지를 하사받아 소유한 지주계층이 등장한다. 귀족과 사원 등의 특권세력이다. 이들은 국가에 대한 부담을 지지 않고 토지생산물을 독점하여 소유하면서 소유권을 정착시킨다.


일반백성에게도 이러한 소유적 개념이 받아들여져서 양도나 매매도 가능해졌다. 다만 이런 경우에도 수조권은 유효하였다. 그러나 대토지를 소유한 특권 세력이 득세하면 국가의 재정이 빈약해지고 백성의 부담은 과중해진다. 민심이 이반되고 왕조가 흔들린다. 왕조교체기의 배경에는 예외없이 토지제도의 문란이 있었던 것이다. 한나라 때 동중서(董仲舒)라는 이는 “백성들이 토지를 매매할 수 있게 되자 부자의 밭은 천백 리를 이어지나 가난한 자는 송곳으로 찌를 땅도 없다”고 했다.


대토지 소유의 폐해가 심해지면 민란이 나거나 왕조가 몰락했다. 우리도 신라말 고려초 때 그랬고, 고려말 조선초 때 그랬고, 구한말과 일제강점의 격변기가 그랬다. 언제나 왕조 말기가 되면 귀족이나 기득권층들이 토지를 독과점하면서 백성의 삶이 피폐해진다. 민심이 사나워지면서 왕조교체의 에너지가 형성되는 것. 역사는 반복된다.


이상의 왕토사상과 수조권이 말해주는 것은 토지가 소유물로 다루어지기보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용’ 중심의 존재였다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여 치수를 하고, 관개를 하는 노력이 들어가므로 생산수단으로서의 토지는 개별적 존재 이전에 공동체적 존재였다고 할 만하다. 동아시아 문명권의 왕토사상의 배경에는 농업의 특징이 함께 하고 있다.


토지사용개념의 실종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현대적 토지문제의 시발점은 일제강점기다. 어디까지나 국토의 일부에 국한되었던 소유권의 개념을 전국토에 확장해서 적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주적 입장의 개혁이다. 토지소유제와 소작제를 고착화시킨 것. 토지를 생산에 사용하든 안하든 사적 소유의 재산이라는 개념으로 재산세가 징수된다. 생산에 의해 징수되는 토지사용료인 수조권의 개념이 어느새 실종된 것이다.


남북분단도 토지문제의 이데올로기가 원인이다. 분단 후, 서로 이기려고 토지개혁을 경쟁적으로 했다. 남북 모두 토지의 개혁이 있었고 이를 통해 부의 평등을 이루는 기회를 가졌다. 북한은 그 이후 사정이 간단하지 않지만, 남한은 이제 그 효과가 한계에 달했다. 땅을 싸게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불평등이 되살아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불평등이 완화되면 세월이 흘러 다시 집중이 심화되는 일이 되풀이됐다.


왕토사상이 지배했던 왕조시대에도 토지에 대한 기본정신은 경자유전(耕者有田) 그리고 농자득전(農者得田)이었다. 땅은 필요한 사람이 쓰도록 하자는 것. 하지만 현재도 문제다. 과거 농지의 식량생산기능에서 이젠 고밀사회의 주거문제로 불이 붙었다.


우리의 인구밀도는 비정상적으로 높다. 수도권은 더 심하다. 한강수계에 가용수량이 집중된 요인도 있어서,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5,200만 인구 중 절반의 인구와 절반이상의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가주지만 따지면 인구밀도가 유럽의 5배쯤 되고, 아시아의 홍콩 못지 않다. 원래 부동산문제·토지문제가 심각해질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런 심각성을 경시한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저금리 세상의 금융 개입과 법인들의 잔치


부동산은 감가상각되는 건물을 별도로 하면 순전히 토지의 문제다. 토지의 가치는 장소적 가치다. 장소적 가치는 개인의 활동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공적인 투입에 의해 좌우된다. 공동의 노력인 세금으로 길도 놓고 상업지역과 같은 제도적 혜택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런 장소적 가치로 인해 높은 수준의 가치가 매겨지고 그로 인한 이득이 발생한다. 하지만 미실현된 미래가치가 현재화 되면서 불로소득이 발생하고 시장경제에 왜곡을 가져온다. 적절하고 공정한 환원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반세기동안 금리가 꾸준히 내렸다. 땅값은 미실현가치인 미래지대를 모두 현재가치로 환산한 값이므로 할인율과 이자율에 민감하다. 가령 금리가 10%에서 1%로 내렸다면 그 자체로 10배의 상승요인이 발생한 것이다. 저절로 10배가 뛰는 것, 엄청난 폭등이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금융권은 토지를 담보로 한 대출을 풀었다가 약간의 금리상승기에 대출을 줄이는 식으로 해서 개인으로부터 토지보유력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가 법인들의 토지보유를 부추긴 것이다. 지금 한국은 가용토지의 태반을, 금융을 등에 업은 크고 작은 법인들이 쓸어 담고 있다. 경제활동기업이라는 이름 아래 새로운 귀족과 기득권층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전세대출을 동원하기도 하고 온갖 금융기법이 동원된다. 항간에 전세제도를 비판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은데 전세가 문제가 아니라 금융의 속성을 제어하지 못한 것이 문제인 것이다. 금융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므로 방임하면 공익가치를 훼손하기 마련이고 이를 제어하는 일은 공동체의 몫이다.


▲ (자료출처=이투데이)


여기다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의 비중이 너무 크다. 5,200만 중 1,700만의 사람이 보유한 땅값이 3,200조원인데 비해, 27만에 불과한 법인들이 소유한 땅값이 무려 1/3에 해당하는 1,200조원이나 된다. 부동산 외에 현금보유액도 어마어마하다. 법인 보유 아파트도 많다. 그중 태반이 경제활동에 사용되고 있지 않은 땅이다. 국민의 땀과 국가혜택으로 돈 번 기업들이 그 번 돈으로 땅에 묻어두었다. 선의의 기업도 이 흐름에 편승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지금 서구화의 물결 가운데 토지와 관련한 폐단의 하나는 금융자본의 토지지배다. 금융세력의 자산증식 수단이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것이 지난 반세기의 큰 과오다. 금융의 문제는 부동산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자본과 금융의 권력화가 가장 손쉽게 달성되는 곳이 부동산이다. 부동산게임의 승자는 개인이 아니라 법인이고, 법인을 좌우하는 금융세력이다.


더 이상 부동산에 대한 금융혜택이나 금융지원의 총량을 늘려서는 안 된다. 줄여야 한다. 지금 2019년 김정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비업무용 부동산 과세강화법안이 2년째 표류되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설사 법안이 통과되어도 추진력 발휘가 미지수다. 무릇 법안이란 세간의 관심에 따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는 법. 정책의 초점이 되도록 해야 한다.


언론 책임이 무거운 이유


땅값은 미래지대에 대한 예측에 의존한다. 예측은 정보와 그에 근거한 판단에 좌우된다. 언론은 의제를 설정하고 정보에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개입시킨다. 그 견해에 의해 땅값이 요동치는 것이다. 언론 권력이 행세하기 좋은 마당이다. 예측은 팩트가 아니므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문제는 한국의 언론은 게임의 심판자가 아닌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 통계를 보면 주요언론사의 부동산 보유가 상당하다. 언론종사자의 부동산 보유도 일반국민보다 훨씬 윗길이다. 서울거주 언론사 임원의 43.6%가 강남3구에 살고 있다(2018년 6월 뉴스타파 보도). 종부세와 같은 토지소유자의 불이익문제를 다루는 그들의 태도는 공정할 수가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그런 자세는 국민들에게 가감없이 읽힌다. 젊은층뿐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불신받는다. OECD 최하위의 언론신뢰도는 무얼 말해주고 있는가?


원래 땅값은, 상승요인이 발생하면 상승요인이 파생하는 상승력보다 항상 더 큰 상승가를 보이는 한편, 하락요인이 발생해 하락하기 시작하면 실제가치보다 폭락하는 경향이 있다. ‘미래에 대한 예측’에 의존하므로 그 편향성이 수치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실현되지 못한 가치임에도 예측에 대한 믿음 때문에 땅값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 허수적 특성에 땅값문제의 본질이 있다. ‘예측과 믿음’이라는 특성 때문에 땅값은 소유자 및 거래능력자라는 소수의 판단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들의 전망이 설득력을 얻으면 그 전망이 땅값시장을 지배한다. 그들에 의해 오른 땅값은, 하락요인이 있다 하더라도 중대한 반전이 있기까지는 그들은 하락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소위 호가와 실거래가가 차이나는 이유이자, 아파트주민들의 가격담합이 성공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부동산의 예측에는 엄격함이 적용되어야 한다. 금융의 자발적 하수인이 된 언론이 시장왜곡에 의한 경제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정의에 민감한 한국인


한국인은 공동체의 보편가치를 존중하는 기질이 있다. 범상치 않은 지정학적 여건 아래 오랜 역사 속에서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 계승시켜온 우리의 본질이다.


이번 촛불정권은 그런 길을 갈 줄 알고 청년들을 위시한 웬만한 백성들은 욕망을 덮어두었는데, 요즘 졸지에 거지가 된 느낌이다. 기회의 총량은 적어지고 경쟁은 격렬해졌다. 집값은 너무 올라서, 전엔 십수년 부지런히 모으면 가능했는데 이제는 평생 모아도 어렵다. 소수의 개인이 전체 국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토지를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되고 있다. 그걸로 자산증식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청년 세대의 분노엔 정당한 이유가 있다. 촛불정권이 정의를 실현해주리라는 기대 때문에 그 욕망을 접고 있었는데, 전혀 그럴 조짐이 없으니, 그 욕망을 접어두었던 자신이 속은 것 같고, 속은 그 자신이 어리석은 것 같아서 더욱 분노에 차 있는 것이다. 출산도 결혼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들에겐 헬조선이다.


토지제도에 큰 변화가 올 때가 되었다. 공자말씀이 군사와 식량과 믿음 가운데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은 믿음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국가가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믿음이 있어야지, 그게 무너지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지금의 부동산 정책은 금융부문이 원하는 방식으로 국민을 양극화의 공범으로 몰고 가고 있다. 금융이 주인이고 백성은 대리인이다.


부동산상승을 매개로 이자를 착취하는 구조다. 그 대열에 가담하면 밀린 이자를 일거에 갚을 수 있는 지가앙등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지가앙등의 심리적 공범이 되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불신받는 이유다. 이런 욕망에 편승하는 내로남불의 정치세력도 있다. 백성을 부동산 양극화의 공범으로 몰고 가는 정책을 어떻게 계속 추구한단 말인가?


▶ ②편 보기



이원영(수원대 교수, 생명·탈핵실크로드순례단장)


덧붙이는 글

이 글은 < 오마이뉴스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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