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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 [이신부의 세·빛] 시대의 징표는 어둠에서도 온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10-12 12:54:04
  • 수정 2021-10-12 12: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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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 화요일(2021.10.12.) : 로마 1,16-25; 루카 11,37-41 

 

사도 바오로는 로마 방문을 앞두고 그 동안의 선교 활동 과정에서 알게 된 신자들이 로마에 살고 있었으므로 이들을 고리로 다른 신자들에게도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서 로마서를 썼습니다. 


그제까지 20년 동안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를 거점으로 해서 소아시아 일대에 복음을 전해온 그는 당시 지중해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을 간직하고 있었고, 다시 로마를 거점으로 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하는 지향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로마에 대한, 로마 복음화에 대한 꿈은 바오로에게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를 쓰게 된 결정적인 집필 동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신으로 숭상하는 황제나 짐승 형상 앞에 경배하고 있었고, 이를 거부하던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공공연히 박해를 일삼았습니다. 심지어 황제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교외의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바에서 밤에 몰래 모여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거나, 그동안의 탄압에 대한 복수로 로마 제국에 대한 반란을 꾀할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퍼뜨렸습니다. 

 

그래서 우상숭배 풍조가 횡횡하고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악소문이 퍼져 있던 상황에서 황제는 신자들을 굶주린 사자들의 먹이로 내어주거나 검투사들의 사냥감으로 죽이는 온갖 사회적 불의는 물론 하느님을 모독하는 등 종교적으로 불경스러운 짓도 공공연히 저지르고 있었던 로마 제국을 후대의 역사가들이 ‘로마 문명’이라고 불러주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이 이룩한 일이 문명스럽기는커녕 야만의 극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이 험악하고 살벌한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신자들은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오로는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이기 때문”(로마 1,16)이라는 말로 격려하였습니다. 이것이 로마서를 쓰게 된 집필동기였습니다. 

 

그런데 로마 제국만 야만스러울까요? 


자본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세상에서는 노동자들이 착취당하기 마련이고, 이들은 노동자로 산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물론 이들을 위해 노동과 노동자들을 천시하는 사회 구조를 복음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벨기에의 까르뎅 신부는 청년 노동자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복음적으로 살 수 있도록 1925년에 가톨릭노동청년회(J.O.C)를 조직했습니다. 노동헌장이라고 불리우던 최초의 사회회칙 ‘새로운 사태’를 레오 13세 교황이 반포한지 한 세대만이었습니다. 

 

급속하게 산업화되어 가던 1970~80년대 우리 사회에도 이 운동이 도입되어 많은 신자 청년 노동자들이 복음을 읽고 기도하며 노동조합 운동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독재 정부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로 사는 것도, 노동자 운동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자각한 신자들의 활동도 생겨났습니다. 훗날 추기경으로 서임된 까르뎅은 젊은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격려하였습니다. “여러분의 작업대가 성찬을 집전하는 제대입니다. 여러분의 일이 거룩한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출신의 정치인이 대통령 후보가 된 이 나라에서, 대외적으로는 세계 10위권에 진입한 지 이미 오래인 이 나라에서, 대내적으로는 노동이 천시되고 노동자가 노예로 취급받으며 삶의 벼랑에 내몰리고 있는 야만적 현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환경이 삶의 벼랑이 아닙니까? 먹고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하느님을 생각할 수도 없고, 미래를 대비할 수도 없으며, 이웃을 넉넉히 바라볼 수도 없게 하는 이 상황이 야만이 아닌가요? 

 

시대의 징표는 빛에서만이 아니라 어둠에서도 옵니다. 하느님과 그 뜻을 부끄럽게 여기게 만드는 시대 사조는 아무리 대세라 하더라도 좇아갈 것이 아니라 몰아내야 하는 악입니다. 사도 바오로와 함께 우리도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을 사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드러내는 거룩한 일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을 감추지 말고 당당하게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느님께서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삼으시어 당신 권능을 발휘하십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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