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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고통은 고통 받는 이들 옆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 끌로셰
  • 등록 2021-10-21 15:34:14
  • 수정 2021-10-23 12: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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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회변화를 추구하기 위해 모인 이들을 향해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 제도와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지난 16일 제4차 민중운동세계모임(WMPM)에 보내는 비디오 메시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토지, 주택, 노동 분야에 관한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전의 사고방식 고수하는 것은 “생태파괴와 인종학살을 의미”


교황은 먼저 “(지난 5년간) 많은 것이 바뀌었다”며 “이 변화들은 돌아올 수 없는 반환점이 되었다. (…) 모든 사람, 조직, 국가 그리고 전 세계에 숙고, 식별, 선택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전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진실로 자살과 같을 것이고, 좀 더 강조하자면 생태파괴와 인종학살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교황은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무너진 사람들과의 만남, 소통 등을 비롯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카드로 만든 성처럼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전 세계적 고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로나19만큼 관심을 받지 못하는 세계 각지의 ‘소리 없는 고통’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교황은 ”무관심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고통 받는 세상의 1/3이 거대 미디어와 의사결정권자들의 관심에 들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라며 ”기근으로 인한 연간 사망이 코로나로 인한 사망보다 많다. 그러나 이는 뉴스가 되지 못한다. 이는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개인적 변화도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경제적 모델을 수정하여, 이러한 모델들이 인간적인 모습이 되도록 만드는 일도 필수불가결하다면서 “이러한 상황들을 생각하다보니, 내가 성가신 질문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꼽은 사회변화에 필요한 구체적 조치들

 

교황은 먼저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거대 제약회사들을 향해 개발도상국 등에서 자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백신 특허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국제 금융, 신용기관을 항해서는 개발도상국들이 “자기 민족의 기본적인 필요를 담당할 수 있도록” 이들의 채무를 청산해달라고 요청했다.

 

다음으로 광산, 석유 등 거대 채굴기업을 향해서는 “숲, 습지, 산을 파괴하는 일, 강과 바다 오염시키는 일, 먹을거리와 사람들을 오염시키는 일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식물 종자, 식품 등 전 세계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는 거대 식품기업들을 향해서는 ”가격을 부풀리고, 기근으로부터 빵을 빼앗고 마는 독점적 생산 분배 체계 강요하는 일을 멈추라“고 요구했다.


군수 산업체에 대해서는 ”폭력과 전쟁을 조장하고 고향을 잃은 수백만의 생명과 수백만의 목숨이 드는 끔찍한 지정학적 게임을 부추기는 산업활동을 완전히 멈추라“고 호소했다.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거대 기술기업들을 향해서는 ”혐오 발언, 그루밍, 가짜뉴스, 음모론, 정치적 조작의 확산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인간의 약점과 취약점을 악용하는 일을 멈추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언론을 향해서는 ”탈진실(post-truth), 가짜 정보, 비방, 중상모략의 논리를 멈추고 인간 형제애와 더불어 가장 깊이 상처받은 이들과 공감을 쌓는데 기여하라“고 주문했다.

 

다음으로 교황은 미국 등 사실상 전 세계 차원에서의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강대국들을 향해 “지구상 어느 나라에 대해서든 도발, 봉쇄정책, 일방적 제재를 멈추라”고 주문하고 “분쟁은 UN과 같은 다자적 포럼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끊임없는 이윤의 논리에 따라 이 체계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 이제 이 열차의 속도를, 수렁으로 빠져드는 통제 불능 열차의 속도를 줄일 시간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불관용, 외국인 혐오, 빈곤 혐오라는 포퓰리즘적 담화에 함께 맞서야 한다”며 이러한 사고방식은 “우리 민족을 가르고 우리의 시적 능력, 즉 함께 꿈꿀 수 있는 능력을 깎아내리고 무력화 시키는데만 쓰일 따름”이라고 경고했다.

 

교황은 또, 사회변화를 꿈꾸는 이들에게 “되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꿈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꿈은 현상을 유지하려는 이들에게 언제나 위험하다. 꿈은 강자의 이기주의와 약자의 체제 순응적 태도가 강요하려는 경직된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다”라며 “꿈은 우리에게 부과된 좁은 한계를 초월하고 가능한 새로운 세상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우리는 모두 (팬데믹을 벗어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게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이다’라고 생각하는 순종적인 용인을 그만두어야 한다. 이러한 체념은 ‘우리’를 파괴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꿈꾸는 것’의 예시로 지난해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을 언급했다. “사회적, 인종적 불의에 관한 이러한 식의 반응은 정치적 조작에 의해 악용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 핵심은 이 죽음에 대한 시위에 집단으로서의 ‘사마리아인’이 있었다는 점”이라며 “이러한 움직임은 권력 남용으로 인해 인간 존엄에 생긴 상처를 보고 길 건너편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보편적 기본소득(UBI), “전 세계가 생필품을 누릴 수 있는 제도”


교황은 메시지 말미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능케 해줄 구체적인 조치”로서 보편적 기본소득제와 노동시간 단축을 제안했다.

 

먼저 보편적 기본소득(UBI)에 대해 “전 세계가 기본적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재원을 인간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바른 일이며, 사회 일부의 부가 공정하게 분배되면서도, 그것이 특히 중산층에게 짊어질 수 없는 짐이 되지 않도록 조세, 재분배 계획을 세우는 것은 정부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반적으로 이러한 문제에서 분쟁이 생겨나면, 가장 고통받는 것은 중산층이다. 오늘날의 거대한 부는 세대를 걸친 수천 명의 과학적 연구와 기술적 혁신이라는 노동의 산물임을 잊지 말자”고 제안했다.

 

다음으로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서 교황은 “최소임금과 더불어 노동시간 단축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이는 진지하게 탐구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황은 “19세기 노동자들은 12시간, 14시간, 16시간을 일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달성했을 때, 일부의 예측과는 반대로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았다”며 “그러니 나도 강조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적은 시간 일하는 것은 우리가 어느 정도 시급하게 탐구해야 한다’. 과업에 짓눌린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는, 실업에 짓눌린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필요하지만, 충분치는 않다며 “이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도, 소작농, 안전한 집조차 없는 가정,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토지권, 주택권, 노동권을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당면한 거대한 환경 관련 과제도 해결해주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 조치들을 언급한 것은 이것들이 가능한 조치이며 우리를 바른 방향으로 인도해줄 것이라 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UN이 제시한 지속가능한 개발목표(SDGs)를 언급하고 “불행히도 이것들이 우리 민족과 변방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공동의 과제를 공유하고 모든 사람을 참여시키는 일의 중요성을 상기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나는 ‘세상은 변방에서 더욱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변방의 소리를 듣고, 변방을 향해 문을 열고, 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상의 고통은 고통 받는 이들 옆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라고 강조했다.



[필진정보]
끌로셰 : 언어문제로 관심을 받지 못 하는 글이나 그러한 글들이 전달하려는 문제의식을 발굴하고자 한다. “다른 언어는 다른 사고의 틀을 내포합니다. 그리고 사회 현상이나 문제는 주조에 쓰이는 재료들과 같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의식은 같은 분야, 같은 주제의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그 논점과 관점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해외 기사, 사설들을 통해 정보 전달 뿐만 아니라 정보 속에 담긴 사고방식에 대해서도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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