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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말’과 ‘행동’이 의미하는 것
  • 지성용
  • 등록 2021-12-30 15:5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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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미사에서는 시작할 때 ‘참회의 기도’를 한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지은 자기성찰로부터 하느님과의 만남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는 생각이 말로 드러나고 말은 행동으로 드러나기에 하루 동안에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되짚어 본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자기 객관화’를 수련할 수 있는 좋은 예식(禮式)이다. 자기를 객관화하는 능력은 한 인간이 얼마나 성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척도다. 


우리 사회는 지금 모진 진통을 겪고 있다. 과거의 부와 권력을 누리던 기득권 보수 세력들과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진보세력의 줄다리기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보수는 수구에 가깝고 진보는 어정쩡하다.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라는 말은 여러 영웅이 각 지역을 차지하고 서로 세력을 다투는 시대를 말했지만, 정작 지금 우리에게 영웅은 찾아보기 힘들고, 표리부동한 이들의 ‘할거(割據)’로 시민들은 촛불로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 


거짓과 위선


위선은 선을 꾸미는 것이다. 없는 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리고 거짓은 사실과 어긋나는 것이다. 사실과 어긋나는 것을 사실 같이 꾸미는 것, 허위(虛僞)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위선과 거짓, 허위가 횡행하고 있다.


강기훈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한 김기설(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씨의 유서를 대신 써줬다는 혐의로 구속수감 됐다. 2015년 재심 결과 강 씨는 24년 만에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2018년엔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하고 검찰에 사과를 권고했다. 그러나 해당 검사였던 국회의원 곽상도는(지금은 의원직을 사퇴한) 단 한 차례도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파렴치했다. 그는 한편 “정의연이 할머니들을 앵벌이 시켜서 돈을 벌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과 존엄을 위해 오랜 시간 싸워온 ‘정의기억연대’를 거칠게 비난해왔다. 


2019년에는 조국 전 장관의 가족들을 향해서 그의 딸이 대가성이 있는 장학금을 수령 했고, 포르쉐라는 고급외제 수입차를 타고 다닌다는 극우 유튜브 방송을 인용하며 앞길이 구만리 같은 학생과 한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데 앞장섰다. 사실은 그가 말한 것과는 전혀 달랐다. 모두 거짓이었다. 그는 말 그대로 ‘정의’를 사냥했다. ‘정의’라는 말을 가지고 있는 쪽을 공격하여 ‘너도 다르지 않잖아!’, ‘오십 보, 백 보야’,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는 줄 알아!’라는 식의 사회 부정적인 통념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한 검사질로 국회의원으로 평생을 호의호식했던 그가 말년에 모진 수렁에 빠져들었다. 그의 서른 살 아들이 한참 시끄러웠던 대장동 개발 공사하는 회사에 입사하여 6년 후 퇴직금으로 50억이라는 돈을 받게 되어, 뉴스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정작 포르쉐 외제차를 타고 다닌 것은 다름 아닌 곽상도 그의 아들이었다. 


이런 정의와 불의가 혼재한 상황은 끊임없이 국민을 혼란으로 몰아갔다. 검찰개혁의 선봉에 서 있던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과 더불어 보수 세력들은 총결집했다. 그의 아내 정경심 교수를 ‘사모펀드’로 몰아가며 ‘마녀사냥’ 하기 시작했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털어 온 가족이 수사대상이 되었다. 일부 국민은 사실 여부의 확인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조국 장관의 가족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사이버 폭력을 가했다. 더군다나 학생들, 진리를 향한 열정으로 누구보다 사회를 비판적, 분석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청년 학생들이 뉴스에 보도된 몇몇 사실들을 확대해석하며 대중시위를 조직했다. 물론 특정 정당의 활동을 하던 청년들로 이후에 밝혀지긴 했지만, 괴벨스의 선동에 독일 사회가 유대인을 향한 분노를 조직했던 것 마냥, 학생들이 여럿 모여들어 의로운 이들의 불공정(?) 의혹을 성토했다. 


나중에 정작 기소된 것은 표창장 위조, 업무방해죄였다. 그것도 억지에 가까운 검찰의 면피용 기소였지만 정작 당사자 정경심 교수는 4년을 선고받았다. 그렇지만 대학 학력을 위조하고, 의심스러운 석사, 박사 학위로 총장을 했던 최성해 총장은 수사나 기소도 되지 않았고 유은혜 교육부는 그의 체면을 살짝 세워주며 사건을 흐지부지 마무리하였다. 정작 불의한 이들의 숱한 부조리와 불공정을 외면하고 말하지 못했던 학생들이 갑자기 등장했다. 그것도 서울대, 고려대 등의 소위 스카이 명문대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정작 부모 찬스로 오늘날의 입시제도의 혜택을 받았던 학생들이었다. 


그런 정의와 불의의 프레임에서 ‘정의로운(?)’ 검사로 스타가 된 윤석렬 전 검찰총장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 국민 앞에 나섰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이 폭발한 것은 아니다. 방사능 유출은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한열은 부마사태’, ‘세금을 왜 거두냐?’, ‘유주택자, 청약통장’, ‘주 120시간 노동’설, ‘대구민란’, ‘안중근과 윤봉길’을 혼동하고,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에서나 하는 것’이라는 둥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을 연신 뿜어댔다. ‘가난한 자들은 불량식품을 먹도록 둬야 한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어설픈 인용은 시민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일전의 ‘민중 개, 돼지론’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그는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었고, 시민사회의 보편적인 인식과 이해에도 한참 뒤 떨어지는 그저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고립된 인식의 한계와 같은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특정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無黨)층을 대변한다며 무당(巫堂)과 무속(巫俗)을 찾는다. 손바닥에 왕(王)자를 써 놓고 토론회에 참가하여 나는 ‘왕’이 될 것이라는, 강한 자기 암시를 주며 무속과 주술에 심취해 있는 정황들이 여럿 발견되었다. 이에 언론에서 집중보도 되며 저잣거리의 우스갯소리로 회자 되자 갑자기 어느 날 교회에 성경책을 들고 가서는 찬송가를 부르고 손뼉을 치며 ‘주(主)여’를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내로라하는 서울지역의 목사들이 모여 전 검찰총장에게 안수기도를 해 준다. 일전에 개신교계에선 남의 절에 가서 행패를 부렸던 몰지각한 신자들을 대신해 사과했던 교수를 우상숭배니 뭐니 하며 퇴출시키려 아우성을 치던 목사님들이, 윤석렬이 무속신앙에 주술에 우상을 숭배해도 권력이 묻어 있으니 관대하게 맞아주며 반가이 안수한다. 이 정도면 종교는 졸피뎀이 된 것이다. 


언론의 이중잣대와 청년 학생들의 선택적 정의


장제원이라는 국회의원이 있다. 그의 아들 래퍼 ‘노엘’은 음주운전과 운전자 바꿔치기 등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재판 이후 집행유예를 받고 자숙의 시간을 갖는 줄 알았다. 그런데 2021년 9월 다시 무면허 운전으로 음주측정을 거부하며 경찰관을 머리로 들이받았다. 그는 이전의 음주운전 사고로 집행유예 기간이었음에도 다시 이런 중대범죄를 저질렀지만, 구속도 되지 않았고 더구나 음주측정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음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경찰의 해명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국회의원 장제원은 조국 전 장관 문제 당시 “자식에게 문제 있는 공직자는 공직자의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열을 뿜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아들을 두고 보았을 때 장제원 의원은 당장에 의원직, 공직을 그만두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국회의원 공직을 유지하고 세비를 받고 있다. 


조국 장관의 딸 조민 양의 문제는 시시콜콜한 문제까지도 기사화시켜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던 언론이, 장제원의 아들 노엘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관대하게 언론 조명을 피해가게 해 주었고, 청년불공정을 부르짖으며 아빠찬스를 말하던 학생들도 이 문제에서는 너무나도 관대하게 침묵했다. 특히 곽상도의 아들은 퇴직금 산재 명목으로 50억 원을 수령 했다는데 대한민국 산재공화국에서 산재로 50억을 받은 일은 역사에 기록될만한 사건이다. 삼성반도체와 산재 문제를 가지고 싸워온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문의해봐야 할 사항이다. 윤석렬 대통령 후보의 장모와 아내의 여러 가지 고소, 고발 문제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가 어렵다. 보도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전의 조국 장관의 경우에는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며 수십만 건의 기사를 양산해냈던 언론이 아니었던가.


‘독재타도’를 말하는 독재의 하수인들


그들은 끊임없이 독재정권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언론의 공정하지 못한 보도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려는 언론중재법을 ‘대통령의 독재법’이라 부르짖는 사람들은 공수처법, 부동산3법, 대북전단금지법 등의 입법을,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몰아가며 독재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을 하는 이들은 군부독재 시절의 떡고물을 나누어 먹으며 성장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승만은 한국전쟁 이전과 이후에 국민 백만 명을 학살했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는 긴급조치 위반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불의의 죽음을 당했던가! 인혁당 사건으로 사라져간 꽃다운 청춘들을 우리들은 잊었단 말인가!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 전두환 군사쿠테타에 저항하는 80년 광주민중항쟁으로 죽어갔던 꽃다운 청춘들의 죽음을 잊었는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한열, 강경대, 김귀정, 천세용, 박승희, 얼마나 많은 이들이 독재정권과 싸우며 피눈물을 흘리며 성장한 민주주의의 역사인가? 


오늘날 한류 문화의 세계화로 오징어게임, BTS,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한글 열풍, 세계적인 비약을 하는 한국경제의 소프트 파워가 과연 독재자들의 문화감시와 불랙리스트로 가능했던 일이었을까? 그러한 독재의 서슬 퍼런 칼날 아래에서는 한마디 말도 못하고, 고시 공부에 부동산 투기에 자기 출세의 길을 걸었던 곽상도나 윤석렬, 장제원 등의 정치인들이 독재정권을 타도하겠다는 말을 할 때면 어처구니가 없다. 대한민국 시민 민주주의의 성장은 우리나라의 각 분야 전문화를 가속 시켰고, 노동생산성을 향상하는데 창의융합형의 인재를 양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는 하다. 독재의 하수인들, 독재의 떡고물을 받아먹고 성장한 이들이 문민정부와 참여정부의 정책과 행정을 독재로 몰아붙이며 발목을 잡아 왔다. 지난 수십 년간 국회에서는 얼마나 많은 소모적인 논쟁이 끊이지 않았는가. 국민은 일류로 성장했지만, 정치인들은 여전히 삼류, 아류의 길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대장동 문제로 들썩이는 정국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했는가. ‘부동산 공화국 대한민국의 집과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누가 대장동의 수익을 나누어 받았는가? 누가 그 막대한 이익을 가져갔는가?’를 돌아보면 그 안에는 독재의 하수인들이 여럿 숨어 있다. 언론인이라는 사람이 막대한 부의 중심에 앉아있는 것을 보면서 여러 수상한 정황들이 알려진다. 박근혜 정부의 법조인과 정치인들을 고문으로 위촉해서 이후에 생겨날 사법 리스크를 관리하려고 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도 대장동 개발에서 민간에게 돌아갈 막대한 이익의 일부를 공공의 이익으로 환수했던 경기도지사가 설계자라며 의혹을 부풀린다. 거기에는 아주 교묘하고 교활한 속임수가 숨겨져 있다. 물론 설계는 선출된 권력, 도지사의 정치적 상상력과 행정력으로 진행이 되었겠지만, 그 안에서 움직여지는 수천, 수만의 직원들의 불의와 불공정, 일탈을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것은 도지사 일인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당시 도지사 이재명은 부정한 이익에 대해 ‘청렴이행서약서’를 이미 제출받았고, 문제가 불거지자 바로 배당 중단 및 자산동결 권고를 성남시에 내렸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은 문제를 만들어 문제를 덮는다. 더 큰 문제는 검찰 권력이 고발을 사주했다는 일이었다. 검찰총장 개인의 가족 문제를 검찰공권력을 가지고 방어하려 했던 것이다. 공적인 검찰이 검찰총장의 사적변호사 역할을 한 것이다. 검찰총장이 제 식구의 문제를 짚어내는 언론사를 고발하도록 사주한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스템 운영에 치명적인 사건이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들은 뒷전에 두고 대장동 문제를 도지사의 게이트로 만들어 가려고 언론과 검찰은 지금도 물타기를 진행 중이다. 대장동 개발은 민간이 가져가려는 막대한 이익을 공공영역에서 상당 부분을 환수한 행정 성공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소모적인 논쟁으로 또 누군가를 음해하거나 무너뜨리려 하는 것은 이제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언론은 사실과 진실을 바르게 보도해야 한다.


영의 식별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의 삶과 그가 쓴 글, 그리고 그의 삶을 증언하는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이냐시오는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움직임들에 잘 대응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영들의 움직임에 민감하며 하느님에게서 오는 움직임과 그렇지 않은 것을 신중하게 분별하는 사람이었다. 이냐시오에게 이런 영적 인식은 매우 중요했고, 하루 종일 잠시도 방심하지 않았다. 영적 인식은 그의 모든 영성 생활과 저술에서 중심을 차지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상반된 영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이와 짝을 이뤄 이 움직임을 파악하고 현명하게 대응하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이른바 ‘영의 식별(discernment of spirits)’이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불의한 것인지 식별하기가 쉽지가 않다. 우리 시대의 악은 이제 교묘하게 중도 혹은 진보, 민주, 자유의 탈을 쓰고 위장한다. 극명했던 악의 활동이 이제 간교하게 혼돈과 위장으로 죄를 덮고 무죄한 이들을 수렁으로 밀어 넣고 있다. 지난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서, 독재의 앞잡이들과 수혜자들이 독재타도를 외치고 있다.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사법시험을 보고 출세의 길을 펼쳐나갔던 이들이 독재타도를 말하며 민주주의를 외친다. 


대장동 화천대유 문제의 핵심과 실체는 50억 클럽 국민의 힘 5적, 관련 인사들과 숨어 있는 무수한 토건족, 부패한 관료들과 전·현직 율사들이 끼어들어 막대한 수익을 거두어간 사건이다. 윤석렬 고발사주 사건은 검찰권력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욕망과 야욕을 만들어 가다가 덜컥 걸린 것이다. 학문을 수행하지 않고 항문에 침이나 맞으면서, 정법 도사 유튜브를 보라며 동료 정치인의 가슴팍을 탁탁 치는 무뢰한이 대통령을 한다는데 언론은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의 팩트체크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대통령 후보가 된다는 이가 국민을 향해 인터뷰하면서 소리치는 것은 이제 다반사다. 후배 감사들에게 수사 똑바로 하라고 소리친다. 국민들은 먼저 제 장모나 제 아내 문제를 제대로 수사하라 말하고 있다. “형제여! 먼저 네 눈의 들보를 꺼내라!” 예수님의 말씀이다. 


말을 들어보면 생각을 알 수 있고, 생각을 알게 되면 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고 그가 어떤 일을 해 왔는지 가늠할 수도 있다. 소문이라는 것이 그렇다.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에 저명한 이들을 만나보면 거품 낀 사람들이 참 많고, 때로는 악평에 놓여있는 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커다란 가르침을 얻으며 진짜를 만난 때도 있었다. 세평(世評)이라는 것은 얼마나 가벼운 것인가! 우리는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종합적으로 바라보며 그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희망하고 있는지 알아보고 미래 그들을 통한 우리들의 운명을 가늠해야 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을 선출했다고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우리들 운명의 주인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선출한 공기(公器)를 통해 우리는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을 보라. 그리고 바르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역사의 중요한 판단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악은 항상 작은 것 안에서 시작하고 움직인다. 작은 말 한마디가 그를 드러낼 수 있고, 작은 행동 하나가 그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그들은 아주 작은 것으로 모두 드러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공동선> 2021년 11-12월호에도 실린 글입니다.


[필진정보]
지성용 신부 : 인천교구 송림동성당 주임신부, 인하대학교 인문융합치료 전공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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