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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통째로 바꾼 한 마디…“나를 따라라”
  • 이기우
  • 등록 2023-01-14 12:25:58
  • 수정 2023-01-14 12: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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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alling of Saint Mathew, Caravaggio


연중 제1주간 토요일(2023.1.14.) : 히브 4,12-16; 마르 2,13-17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마르 1,10)고 마르코가 증언한 것은, “아, 하늘을 쪼개시고 내려오소서”(이사 63,19) 하고 내다보았던 이사야의 영향일 것입니다. 


과연 강생하신 메시아께서는 거짓의 현실을 쪼개는 날카로운 말씀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십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그리하여 이 창조의 전망 하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히브 4,13).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과정에서 기적들을 일으키셨기 때문에 그 소문이 삽시간에 전국에 퍼져서 군중이 모여 들었습니다. 하도 모여 들어서 그분은 마을을 벗어나서 호숫가로 나가셨습니다만, 뒤따라 나온 군중을 물리치실 수는 없어서 그들만 따로 모아 놓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 후 어느 날 그분의 말씀을 유심히 듣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예수님께서 세관 앞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는 레위 지파 출신 알패오의 아들로서 세리였던 마태오였습니다. 


세리라는 직업 덕분에 돈을 많이 모으기는 했지만 징세 방식의 부당함 때문에 동족으로부터는 기피 인물로 취급을 받던 그가 우연히 군중 속에 끼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제껏 살아온 인생에 대해 회의를 심하게 느끼며 갈등하던 중에 자신을 찾아오신 그분을 만나게 된 것인데, 심란해진 그의 심중을 예수님께서 알아차리기라도 하신 것처럼, 세관에 앉아 있다가 우연히 마주친 듯 그에게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라”(마르 2,14ㄴ). 제자로 부르시는 그 한 말씀이 마태오의 심중을 갈라놓고 쪼개었습니다. 그리고 두말없이 “일어나 그분을 따랐습니다”(마르 2,14ㄷ). 이 순간에 마태오의 마음이 어찌나 반가웠었는지, 그는 자기 집에 예수님을 모시고 대접하면서 군중 속에 섞여 그분 말씀을 듣고 제자들의 뒤를 따라 오던 이들까지 모두 불러 자리를 함께 하였던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들도 자신처럼 소외된 처지로 살아가던 동료 세리들과 당시 죄인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죄인들의 잔치’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던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던지,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르 2,16) 하고 대놓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당시 풍습으로 볼 때 음식을 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친구로 맞아들이는 것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처신은 율법에 대해 상당히 심각한 도전으로 율법 학자들은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노골적인 조롱에 대해, “건강한 이들에게야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마르 2,17ㄴ)는 말씀으로 대꾸하셨습니다. 이어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ㄷ)고 덧붙이신 말씀은 그들의 위선을 쪼개시는 날카로운 힘으로 그 당시 상황의 본질을 드러내 주는 동시에 죄스러움과 의로움의 자리를 역전시켜 주었습니다. 실상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율법을 무기로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억누르며 자신들은 치부하던 죄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세리였던 레위 마태오에게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 하고 던지신 말씀 한 마디는 그의 일생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으므로, 그는 그분의 제자가 되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현장을 따라 다니며, 그분의 말씀을 귀 담아 들었다가 나중에 자신의 복음서에 모아서 소개하였습니다. 재물에 대한 영민함 대신 말씀에 대한 영민함이 발휘된 셈입니다. 


마태오가 집대성해 놓은 이 설교모음은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예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시는 말씀이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마태오를 거쳐서 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까지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음을 실감하도록 성령께서 역사(役事)하신 결과입니다. 


이러한 창조의 과정은 악을 선으로 위장하고 거짓을 참으로 위장한 세력에 의해 둘러싸여 진행되지만, 언제나 이 위장된 상황을 날카롭게 쪼개시는 말씀의 힘에 의해서 이룩되곤 합니다. 이 말씀에서 병든 이들이 치유를 받고, 죄인들이 의로워지며, 새로운 아나빔들이 된 이들에 의해 새 하늘과 새 땅이 더욱 널리 퍼져 나갑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죄를 반대하기 때문에 오히려 죄인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시는 예수님의 노선은 조심스럽게 계속되어야 하고 견지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의인으로 자처해온 위선자들과 죄인으로 낙인찍혀 소외된 이들을 역전시키신 예수님의 복음선포 활동에 대해 들으셨습니다. 본시 의로움과 죄스러움은 하느님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예수님께서 확연히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의로운지도 죄인으로 소외된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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