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용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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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복음은 얼마나 큰 위협인가
성경(聖經)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거룩한 경전’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과 인간의 기원,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주관하신 하느님의 업적을 회고하며 그들 손수 체험한 신앙을 기록하여 후손들에게 전했다. 성경은 오랜 역사 속에 펼쳐진 다양한 체험이나 사건들을 통해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구원역사를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메시지를 담아 전해 내려온 회고 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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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그 본질적 기능 회복을 위하여
종교와 사회변화의 문제를 다루는 과거의 학설들은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 중 한 가지 입장은 마르크스적 전통주의로 간주될 수 있는 데 이것은 종교변화를 종속변수로, 사회변화를 독립변수로 보는 관점으로 사회의 어떤 변화가 발생하면 그 여파로 인해 종교변화가 따른다고 보는 입장이다. 종교가 사회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경우에도 마르크스는 종교가 사회변화를 자극하기 보다는 그것을 방해하거나 억제한다고 주장했다.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나 기능은 사회질서나 제도를 유지, 통합하는 것이지 결코 변화나 개혁은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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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이란 무엇인가?
영성의 빈곤 내지 부재는 대전환기에 처해 있는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여겨진다. 일상생활 안에서 다양하게 표출되는 주교들과 사제들, 수도자, 평신도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복음적이라고 보기 힘든 경우가 허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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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지 맙시다 : 공동체 안에서 사목자들의 진정성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목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신자들이 스스로 조정할 수 없는 문제들만을 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자들이 하고 있거나 할 수 있는 조정에 사목자가 개입하면 그 공동체나 본당은 구성원 전체가 리더가 되는 공동체로 성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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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는데, ‘공동체’라는데 외롭다
우리는 모두 외롭다. ‘함께’라고 하는데 ‘공동체’라고 하는데 외롭다. 심리학자들은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인간 발달의 목표로 본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자유’에의 부름이라 하며 하느님이 창조한 대로 참된 자신이 되는 것을 자유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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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지우고 감춘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알다. 『논어』의 「위정편(爲政篇)」에 나오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우리는 여말선초, 불교에 대한 정도전의 기획을 보며 최근의 교회 개혁에 대한 방법론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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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화 : 거짓희망의 유포, 남발하는 힐링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 이스가리옷 유다가 돈 때문에 예수를 배신한 사실을 우리 모두는 기억하고 있다. 신앙인이 돈으로 예수를 배신하는 모습은 우리 시대에도 드물지 않다. 돈과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고위성직자들이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대기업 총 수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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젯밥에만 관심 가지는 종교, 무릎꿇고 반성해야
성경에는 간음하던 여인이 회당 앞에 끌려온 이야기가 있다(요한 8,4-5). 흥분한 사람들이 예수에게 묻는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사람들은 예수에게 간음녀에 대한 판결을 묻는다.생각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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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과 가정 그리고 성(性)
『사목헌장』 제1부는 정치-세속적 관점에서 교회를 다룬다. 즉, 인간에 대한 교회의 소명이 무엇인지 밝힌다. 교회는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대사회 건설에 무엇을 권고해야 할 것인가? 세상에서의 인간 활동은 무슨 궁극적 뜻을 지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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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토착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 것인가
한국교회의 기원에 대한 논의들은 차치하더라도,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온 1784년부터 한국교회는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시작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한국교회는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형성된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