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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바에 흐르는 적막
  • 전순란
  • 등록 2015-07-21 11: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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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7월 19일 일요일, 맑음


주교님과 쟌카를로 신부님 그리고 경리 알퐁소 신부님 세 분만 드리는 아침 미사였다. 미사예물을 드리고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우리나라를 위해서, 미루네와 우리 두 집안을 위해서 지향을 올렸다. 주일이어서 사제들이 없는 이웃본당들에 미사를 드리러들 나가시고 정말 움직이기 어려운 분들만 남은 셈이다. 


저 북쪽에 가 있는 빵고신부도 오늘 무려 네 대의 미사를 드렸단다. 두 분 사제가 두 본당과 성지 등 세 곳을 공동으로 사목하는데 한 분이 편찮으셔서 이 젊은 임시 보좌가 네 번이난 미사를 드려야 할 만큼 이탈리아 사제성소는 심각하다. 




알퐁소 신부님마저 오전 내내 이웃 디비노 아모레(Divino Amore) 성지에 고백성사를 주셔야 한단다.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고 기적적 치유의 영험이 있다고 알려진 그 성지는 토요일이면 자정 넘는 시각에 로사리오와 성가를 하면서 로마 도심에서 아피아가도와 아르데아티나 가도를 걸어 거기까지 50여리를 행진하는 신도들이 끝없는 행렬을 이루곤 했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칼리스토 카타콤바 문간방에서 만 2년을 살던 1997~98년의 일이다. 이제는 그나마도 들을 수 없으니 밤중이면 이곳 카타콤바에는 정말 무덤의 적막이 흐른다.


▲ 성서학자 쟌니 신부님, 산타르치시오 원장, 경리 신부님과...


시칠리아 손님들이 와서 요며칠 떠들석하던 회원식당도 조용해졌다. 안젤라, 그라지아, 마리안나라던 아줌마들이 자기네 라구사 본당 주임을 하시던 원장님을 찾아왔다가 원장신부님을 모시고 떠나버리자 노인들만의 고요함이 다시 돌아왔다.          


미루네를 아침에 라테란 성당 앞에 데려다 주고 쟌카를로 신부님이 쥐어주신 버스표 세장씩을 나누어 주고서 오붓한 로마관광을 즐기도록 떠나보냈다. 현지어도 모르면서 지금쯤 어디서 뭘 보고 있나 궁금도 하지만 인간이란 “두 발 달린 짐승”이어서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으려니 하였다. 어렸을 적엔 호기심으로 “궁금혀 궁금혀”가 이어졌는데 늙어가니까 다 큰 사람들을 두고도 괜한 기우에 “궁금혀 궁금혀”가 늘어난다.



▲ 오늘 미루네가 관광한 곳들...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을 순방하는 ‘지역평의원’ 클레멘트 현신부님을 방문하려 11시 30분에 총본부가 있는 피사나로 떠났다. 체코 사람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인 70년대에 아우와 함께 공산권을 탈출하여 수도사제가 된 분인데 80년대 초 보스코랑 함께 살레시안대학교에서 공부해서 알고지내는 사이다. 


더구나 한국 선교사로 파견왔고 한국관구의 관구장을 역임한 끝에 최고평의원이 되어 아시아 전역을 감독한다. 금주 금요일에 로마를 떠나면 무려 4개월간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전역을 돌고 12월에야 로마로 돌아오신다.



총장신부 이하 최고간부와 총원 실무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총장신부님과의 기념촬영도 하였다. 살레시오 수도원은 어딜 가나 손님을 식구처럼 친절히 대해주므로 우리도 그들이 피붙이처럼 느껴진다. 하기야 작은아들이 가서 한 형제를 이루어사니까 우리 피붙이이기도 하다.





오후에 이곳 수도원 경리신부님과 숙박비 계산을 하였고, 참 무뚝뚝해 보이는 그 신부님은 내일이면 우리가 떠난다고 저녁식탁에서 아이스크림과 그라파를 돌리면서 우리 여정을 축하해 주었다. 무뚝뚝한 남자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친절을 보이면 그 모습이 더욱 귀엽다.


저녁식사를 끝내가는데 부엌의 그라시아가 나를 가만히 부르더니 대문에서 서성이는 동양사람들이 우리 일행이 아니냐고 묻는다. 자기들을 데리러 오라고 도심으로 날 부르지 않고 쟌카를로 신부님이 주신 버스표만으로 카타콤바까지 돌아왔으니 오늘 로마 관광은 성공적이다.


쟌카를로 신부님은 저녁후 예의 그 소나무 아래 누워서 당뇨로 퉁퉁 부은 두 다리를 의자에 걸치고서 “난 지금 반은 맛이 갔어.” 탄식하신다. 오래오래 함께 일해온 회원들이 세상을 떠나거나 소임을 떠나고 혼자 남는 일은 수도자에게도 견디기 힘든 고독이리라. 


빠르든 늦든 당신이 묻혀야 할 살레시안 묘지의 철책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시선에는 이미 영원을 향해서 눈감을 준비와 더불어, 가서 당신이 40년간 가꿔오신 정원이 '아름다웠다고 말씀 드릴' 미소도 한데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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