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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성찰
  • 안명옥 주교
  • 등록 2015-04-15 16:28:50
  • 수정 2015-04-16 14: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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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옥 주교 (마산교구장)



이른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주기를 맞이합니다. 이 참사로 인해 너무나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고인들을 추모하고, 그동안 온갖 고통과 씨름하면서 고달프게 살아온 유가족들과 애도의 뜻을 같이 합니다.

오늘 이 추모의 자리에 저는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 싶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을 비라 보는 눈이 확연하게 대립합니다. 한 편에서는 긍정적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려고 하는가 하면 다른 편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외는 아닌 듯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월호는 이제는 잊어야 할 사건으로, 미래를 위해 덮어야 할 기억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해 4월 16일 이후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린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 것처럼 그렇게 처신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유족들의 울음이 그치지 않았고, 유족들의 아픔과 상처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자 이들은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였고, 그마저 여의치 않자 유족들에게 모욕을 주기도 했습니다.


다른 편에서는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묻는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것이 아픈 기억이라 할지라도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국민들이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 삶의 의미, 국민의 자세, 국가의 역할을 그 근원에서부터 다시 성찰해야 하는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저는 사건과 역사적 사건을 구분합니다. 사건은 어떤 일이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일종의 신문 기사 또는 방송 매체의 뉴스 거리로 자리매김 합니다. 사건은 눈물과 절규로 가득 찬 비극의 순간을 늘 반복되어 온 평범한 일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늘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이와는 달리 역사적 사건은 일어난 하나의 사건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헤아리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깊이 성찰합니다. 비록 일어난 사건이 참혹하고, 두려움 가져다주고 불안과 좌절감을 폭로한다할지라도 그것들을 숨기거나 은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려 내고 재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하고 간직해서 교훈을 이끌어 냅니다.


그렇다면 이곳에 모인 우리 모두가 이 순간 취해야 자세는 분명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을 사망자 또는 실종자라는 익명의 추상적인 암호나 기호로 축소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희생자들의 죽음으로부터 결코 숨기지 말고 은폐시키지 말아야 할 의미를 발굴해야 합니다. 죽음을 기억하여 우리 함께 공유해야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궁극적으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 함께 더불어 공존, 공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모두의 비극이고 책임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발언을 저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발언은 따뜻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언어로 들리지만, 자칫 세월호 참사를 통해 생긴 죽음을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식의 보편적 현상으로 인식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비극이고 책임이라는 발언은 정작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로 하여금 나만의 책임이 아니고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에 내가 책임질 것은 없다는 식의 이른바 무죄의 알리바이를 가능케 합니다. 우리 모두를 공법으로 몰아가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매우 교묘한 이중적인 측면을 함축하는 발언입니다.


세월호의 사건을 통해 주목해야 할 것은 가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입니다. 가족을 이루는 구성원 중에서 한 사람의 죽음은 그 당사자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공유하며 살던 다른 구성원에게도 깊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죽음으로 가족 구성원 사이에 맺어진 유대감과 연대감도 깨어지고 살아남은 가족은 살아남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야 하는 회한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월호의 참사로 가족을 잃고 깊은 상처에 시달리는 유가족들에게 일부 국민들은 유가족의 자격을 따졌습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목숨을 걸고 단식했던 어느 아버지는 이혼했다는 이유로 의심 섞인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는 유가족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폭력이기도 합니다. 이혼한 아버지는 죽은 자식을 위해 슬퍼해야할 권리도 없는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세월호의 참사를 통해 국가란 도대체 무엇이며 우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씨름해야만 했습니다. 국가는 유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달래고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기 보다는 치안을 유지하고 사고의 흔적을 지우려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교통사고 가운데 하나의 교통사고 정도로 그 의미를 폄하시키고 축소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어떤 참사의 순간에도 국가가 앞장서서 국민의 생명을 구하고,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사고를 수습하는 가장 단단한 조직이라고 믿었으나 실제로 국민의 눈에 비친 국가는 허둥대며 헛발질만 하는 무능한 조직이었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후안무치한 조직이었습니다.


국민의 믿음은 불신으로 변해버렸고 민심은 국가를 불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면 하늘도 우리의 국가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민심도 떠나고 하늘도 외면하는 국가의 존립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참으로 풀기 어려운 난제 앞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을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참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의 법체계, 행정 시스템, 제도, 관행, 그리고 모든 국민의 의식이 국민의 목소리, 특히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잘 듣는 방향으로 개조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그냥 지나가는 손길로 적당히 스치는, 그래서 나도 당신들의 아픔에 동참했다는 인증서를 발급하는 투의 정책이 아니라 진정으로 아픈 영혼을 섬세하게 쓰다듬고 어루만지고 가슴에 품어주는 따스하고 온기 넘치는 정책의 변화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도덕적 진공상태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 마음가짐도 회복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다시금 되새겨 주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국가의 일차적인 책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참으로 소중한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지도 못했고 보호하지도 못했습니다. 그것이 규정이든, 제도이든, 시스템이든 인간의 생명을 우선하는 의식이 너무 미약했고,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세월호에 탑승한 생명들이 참으로 소중하다고 생각했다면 그 생명을 구하고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이 허무하기조차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아들어야 합니까?


서로가 자신의 물질적인 욕망과 이익을 챙기는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생명을 너무나도 가벼이 여기고 있습니다. 그 결과가 참혹한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가볍게 보는 시각이 있는 한 우리는 대형 참사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국민은 국가가 보여주었던 무능에 분노했고, 이러한 무능한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나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책임지지 않는 자들 때문에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전히 고통을 당하고 있고, 눈물은 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곳곳에서 죽음은 있으나 여전히 어디에도 부활은 없습니다. 희생자들이 죽음을 뛰어넘어 부활 하는 날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추모 미사를 봉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우리 모두 두 손을 모아 기도합니다.


덧붙이는 글

안명옥 주교 : 마산교구장. 2015년 4월 13일 사파공동 성당, 세월 1주기 미사 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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