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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2일 토요일 아침, 전북도교육청 대강당에서 <고등학생을 위한 인문학 콘서트>가 있었다. 첫 시간은 ‘인문학적 글쓰기, 삶이 글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사회자가 강사 소개를 간략히 한 후 바로 강연이 이어질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회도, 강사 소개도 학생들이 직접 준비했다. 그리고 다음 강사 소개와 사회자 역할도 참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원을 받아 채워나갔다.
이번 콘서트는 총 5회에 걸쳐 이뤄졌는데 첫 강연자가 유시민씨라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유시민씨를 보러간 자리였지만 긴 강연시간 동안 집중해서 듣고 다양한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내 새끼 마냥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자리이기도 했다.
특히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 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 것 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라는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차분히 읽으며 마지막 강사소개를 마치던 학생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야구 모자를 쓴 편안한 차림의 유시민씨가 단상이 아닌 청중의 좌석 앞에 서서 항소이유서 잘 썼다고 소개받긴 처음이라며, 자신의 고교시절이 이러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말로 강의의 막을 열었다.
학생들 셋만 모여도 왜 모였는지를 추궁 받는 시대를 지냈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잠시 했다. 이어 유시민씨는 젊은 나이에 지나치게 어렵고 딱딱한 책들을 읽으며, 진지하게 조국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썼던 그 시절 항소이유서가 결코 잘 쓴 글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긴 세월이 흐른 뒤 강연장에 선 그가 명료하고 부드러운 어조로 자신의 삶이 녹아든 이야기와 더불어 인문학이 무엇인지, 글쓰기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했다. 그리고 학생들을 위한 문학적 글쓰기보다는 논리적 글쓰기에 도움이 될 것들을 덧붙였다.
이 글에는 논리적 글쓰기에 대한 그의 강연내용을 자세히 서술하지는 않겠다(우리는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대신 부족하지만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 내가 그 날 배우고 느낀 것과 이 땅에서 더 긴 세월을 살아야 하는 학생들이 어떤 삶을 꿈꾸며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고 살면 좋을까 하는 바람을 정리했다.
우리는 글 잘 쓰는 사람을 글재주가 좋다며 부러워한다. 춤 잘 추고, 노래 잘 하고 말 잘 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듯. 왜 그럴까? 특기가 있으면 아무래도 자신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럼 왜 자신이 잘 드러나길 바랄까? 인간은 삶이 짧고 덧없고 부질없음을 알기에 외로움이라는 걸 느낀다. 그래서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윤택한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더욱이 글쓰기는 춤, 노래, 말로는 전하기 힘든 자신의 생각, 느낌, 감정, 논리, 욕구들을 좀 더 명확히 전달하기 좋은 수단이기에, 글쓰기는 학업성적과 무관하게 꼭 이루어져야 할 작업이다.
그럼 글재주는 타고 나는 걸까? 절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없다. 어떤 분야든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강연을 통해 극소수의 천재적 글쓰기가 아닌 우리 삶을 드러내는 글쓰기에 대해 배우고 공감했다.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을 잘 알아채는 훈련을 하고 자신의 정보를 타인에게 정확히 전달하려 하고, 타인의 살아있는 삶을 바라보고 여러 삶들을 책을 통해 만나면 자연스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물론 그때그때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록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메모든 일기든 녹음이든 기록을 남기는 수고가 필요하다. 기억의 저장고는 유한하고 누구에게나 ‘알아차림’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런 수고들이 쌓여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글쓰기로 길을 열어줄 것이다.
강사 소개를 했던 김승기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때를 떠올려본다.
“유시민 선생님을 소개하려고 자료를 찾다보니 제가 알지 못했던 사실이 참 많았어요. 단순히 ‘어떤 경력을 지닌 사람이구나’가 아니라 그 분이 살았던 시대와 그런 글들을 쓸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도 찾게 되고, 또 그걸 친구나 후배들에게 전해주려고 하다 보니 여러모로 공부가 많이 됐어요. 스스로 무언가 찾아보고 알아 가는 게 정말 새로웠어요.”
마지막으로 너희보다 조금 먼저 인생의 길을 걷고 있는 선배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의 생각과 결단을 토대로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그 자리에서 함께 들었던 이야기를 통해 너희 앞에 놓인 삶 속에서 찾아야 할 귀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봤으면 좋겠구나. 단순히 글 잘 쓰는 비법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기 자신에게 묻는 기회를 찾으렴. 삶의 글쓰기란 결국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원하는 방식으로 떠날 수 있는 여행과 같은 것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