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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진 송신부님 댁에 다녀오다
  • 전순란
  • 등록 2015-09-22 15:5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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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1일 월요일, 맑음


밤중에 일기를 쓸 시간이면 다가오는 유혹이 있다. 글을 쓰는 대신 책을 읽고 싶은 맘이다. 그러고 나면 숙제하기 싫은 아이처럼 일기는 자정 너머로 밀리고 자다가 졸다가를 거듭하노라면 자정을 훨씬 넘어 일기장을 닫게 된다. 내가 막 잠자리에 들고 나면 조금 뒤, 새벽 4시 30분이면 보스코가 일어나 서재로 간다. 간밤에 내가 잠을 잤는지 마는지 도통 모르는 남자다.


오늘도 일기장 옆에 놓인 소설책을 폈다가 다시 놓고, 눈에 안 띄게 방석으로 덮어두고, 그러다 책이 질식이라고 할까 봐 다시 꺼내들었다 방석 위에 올려놓는다. 그래도 자꾸만 그리로 눈이 가서 아예 건너 방에 갖다놓고 온다. 할 일 미루며 딴전을 부리는 아이 그대로다. 일기 쓸 시간에 서성대는 나를 보면 보스코가 까닭을 묻곤 하지만 “걍~” 외에는 할 말이 없다.





며칠 전 송신부님이 전화를 하셨다. 우리가 귀국보고를 해야 하는 터인데 궁금증을 드린 게 죄스러워서 오늘 삼랑진으로 갔다. 국도로 단성까지 가서 의령을 거쳐 군북에 이르고, 거기서는 군북~동창원까지 짧은 구간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거기서 다시 25번 국도를 타고 밀양으로 가다가 삼랑진으로 빠진다.


그런데 오늘은, 보스코의 극력 반대에도 불구하고(그는 조수여서 발언권만 있지 결정권은 기사인 내게 있다), 국도로 마냥 가보기로 했더니만 함안~마산~창원을, 그것도 시내 한복판을 다 통과해서 진영으로 데려다 준다. 보스코는 어디를 방문하면 늘 상대방 대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더라도, 미리 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데 오늘 어지간히 속이 탔을 게다.



중간에 송신부님의 독촉 전화가 한번 오고, 점심시간 10분전에야 가까스로 도착하고서도 “12시 전에 이 전기사(全技士)가 모셔다 드린다고 했죠? 날 믿으세요, 믿어!”라고 큰소리쳤더니만 보스코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빙그레 웃고 만다. 그래도 전기사를 해고시킬 것 같지는 않다. 해고시키기에는 너무 이쁘고(?) 너무 유용한(!) 운전수니까...




제시카 교수님이 바지락전과 옥잠화전을 부쳐 전식으로 내시고, 참치회에다 함양에서 키운 철갑상어알이 (내가 갖고 간) 고르곤졸라 치즈에 얹혀 흰포도주와 곁들여 나왔다. 나로서는 하루 세 끼 먹어도 좋은 메밀국수도 나와 두 사리나 먹었다.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로 쪄 온 살을 그간 1kg 쯤 뺐는데 오늘 물거품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상냥하고 정겨운 제시카 교수님의 특선요리는 도무지 사양할 수가 없으니 어쩌랴?




교수님 댁을 잠시 가서 둘러보니 화가요 미대교수님답게 꾸며놓은 집과 정원에 금년 여름 송신부님댁 기와를 갈면서 걷어 놓은 기와를 가져다 손수 담장과 축대 위에 장식하여 기왓장담으로 변신시켜 놓으셨다. 생활에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놀라운 솜씨에 송신부님도 그분에게 ‘설치미술의 대가’라는 별명을 붙이신다.


송신부님댁 잔디밭은 그 동네에서 제일가는 예초기 기사가 깎았다는 말처럼, 거의 예술적인 기풍이 있어, 평소 보스코가 깎아놓은 휴천재의 ‘철학적’ 조성물, 다시 말해서 ‘라이안의 처녀의 쥐어뜯긴 머리카락’같은 잔디밭만 보아온 나에게는 감탄에 감탄을 자아낸다.


제시카 교수님댁과 정원 




신부님 댁에서 돌아오는 길에 산청에 들러 미루한테서 카메라를 돌려받았다. 올 여름 이탈리아와 알프스에서 본분을 다하여 겨우 사랑땜이 끝난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보스코가 함부로 비틀어 액정이 나가고 말았다. 과연 보스코가 받은 ‘기계파괴의 은사’는 여전히 효험을 발휘하고 있다. 미루가 진주까지 들고 갔다 헛걸음 쳤으니 내가 서울 가서 고쳐야겠다.


‘유무상통’에서 엄마를 보살피는 아줌마가 사진을 찍어 보냈다. 엊그제 밀차를 밀고 다니시는 사진에, 오늘은 그림교실에서 엄마가 딴 노인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시는 모습이다. 아무것도 않고 당신 방에 들어앉아 잠만 주무시던 엄마가 그림교실에 나가셔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크레용으로 돛배에 색칠을 하고 계시는 사진은, 우리 시우가 유아원에서 그림 그리던 사진만큼 우리에게 빅 뉴스다.


이화 여전 국가대표 농구선수가 밀차를 밀어서 걷고 


40년대의 국민학교 선생님이 밑그림에 크레용 색칠을 하는 모습은 우리를 서럽게 한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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