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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병두] 선배 지도자들의 잘못을 분명하게 밝히는 일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 이병두
  • 등록 2015-10-23 10:50:03
  • 수정 2015-10-27 15: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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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가톨릭프레스에 몇 차례 칼럼을 쓰면서 한국 가톨릭의 반성을 촉구하기도 하고 다른 이웃 종교들과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첫 번째 칼럼에서는 특히 바깥세상의 문제에는 비판의 수위가 다른 어느 종교에 비해 높았던 한국 가톨릭이 정작 ‘내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데 대하여 ‘안타까움’이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하면서 그 ‘이중적 잣대’를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조선 말기에 정부의 공인을 받은 이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보여준 ‘한국 가톨릭의 친일과 반 민중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에 대하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신성국 신부가 지난 10월 7일에 쓴 <일제 총독부의 친일주교들>(관련기사 보기)과 10월 21일에 쓴 <한일 강제 합병의 숨은 공로자 가톨릭교회>(관련기사 보기)를 읽으며 가슴이 후련하기도 하고, “한국 가톨릭에 아직 희망이 있구나!”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하였습니다. 


신 신부는 두 번째 글을 이렇게 마무리하였습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과거의 당사자들을 힐난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을 파악하고 일제강점기 동안 고통을 받거나 억울하게 희생당한 분들을 기억하며 참회의 마음으로 기고하는 것임을 밝혀둔다.” 


신 신부의 글 두 편을 읽으며 저는 지난 2007년 4월 17일 ‘불교포커스’에 문사철(文史哲)이라는 필명으로 쓴 <‘위장 惡行’과 ‘위장 善行’ - ‘지암 이종욱 위장 친일론의 허구성(虛構性)’>(관련기사 보기)이라는 글을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제가 8년 전 이 글을 쓰던 심정도 신 신부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개인을 욕하거나 그의 후손(또는 문손)을 매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교계 지도자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은 영령과 그 후손들에게 불교인으로서 사죄하고, 앞으로 우리 불교계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겠다’는 바람[願]과 희망의 마음이 컸을 것입니다.


불교와 가톨릭, 특정 종교를 가릴 것 없이 광복 70년이 되었어도 아직 문중주의, 종교 이기주의와 호교(護敎)론의 ‘감옥’에 갇혀 세상과 역사를 바르게 보지 못하며 ‘불가피한 선택’이나 ‘위장 친일’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얼마 전 감명 깊게 본 영화 <우먼 인 골드, Woman in Gold>의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오스트리아 유대인 출신의 주인공 마리아 알트만과 젊은 변호사 랜드 쉔베르크가 시가 1,500억 원짜리 명화(名畵)를 되찾는 실제 과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영화의 전체 줄거리도 감동을 줍니다만, 저는 특히 후베르투스 체르닌이라는 오스트리아 기자의 행동에 오래도록 마음이 머물렀습니다. 


▲ 후베르투스 체르닌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 마리아 알트만, 랜드 쉔베르크와 알베르투스 체르닌 (사진출처=네이버 영화)


그는 UN 사무총장까지 지낸 당시 대통령 발트 하임의 나치 전력을 파헤져 낙마시켰고 그 때문에 많은 오스트리아인들에게서 ‘배신자’라는 욕을 먹기도 하고 이런저런 모욕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그가 또 다시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 명화를 원 소유주에게 돌려주어 미국으로 반환하는 소송을 적극 지원하게 됩니다. 


나중에 주인공과 변호사가 “왜 우리를 도와주었느냐?”라고 묻자 후베르투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들로서 내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아버지에게 나치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서,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에게 아버지 대신 사죄, 참회하겠다고 결심하였다. 발트 하임의 나치 전력을 파헤친 일과 이번에 두 분을 돕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후베르투스의 말이 맞습니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존경한다면 그가 ‘위장 나치당원이었다’거나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므로 죄가 없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지 않고, “내 아버지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들과 그 후손들을 위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나선다”고 하여야 마땅할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서양 출신의 뮈텔 및 드망주 주교와 조선 출신의 노기남 대주교가 저지른 잘못을 덮어주는 수준을 넘어 그들을 선양하고 기념관을 세우거나 지암종욱(창씨명 廣田鐘郁)의 친일행위가 “불교를 살리기 위한 위장 행동이었다”고 억지를 부리지 말고, “일제 강점기 고난을 겪고 있던 식민지 백성들에게 우리 선조 지도자들이 저지른 잘못을 대신 사죄, 참회합니다. 앞으로 다시는 우리 종교계에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고 다짐하며 실제 행동에 옮겨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과거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을 교묘하게 왜곡하여 ‘부일 협력자를 민족운동가나 애국자’로 둔갑시키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질책을 아끼지 않고, 그들이 큰소리치는 분위기를 만드는 세력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위장 惡行’과 ‘위장 善行’ - ‘지암 이종욱 위장 친일론의 허구성(虛構性)’>은 불교 포커스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보기)











[필진정보]
이병두 : 문화체육관광부 전 종무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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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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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mem2015-10-23 13:17:15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을 보면 오히려 마음 이 편해 집니다.
    속죄하는 마음 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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