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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세월호 미사 강론
  • 임 루피노
  • 등록 2015-04-20 11:03:30
  • 수정 2015-04-20 11: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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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빕니다.


재의 수요일, 오늘은 그리스도인들이 40일의 여정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이 여정은 우리 삶의 축소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여정의 끝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고, 돌아가신 분의 몸, 그리고 다시 일으켜지신 분의 현존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여정을 “회개의 여정”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께 되돌아가고,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며, 나의 형제자매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들었던 예수님의 말씀은 기도, 자선, 단식이라는 종교의 회개 실천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회개란, 그저 “기도와 자선과 단식을 진심으로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라는 말씀은 아닐 겁니다. 오히려 기도나 단식 같이 겉보기엔 종교적인 것들이 오히려 하느님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는 안타까운 당시의 현실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회개는 하느님의 진면목을 문득 마주하게 되는 사건입니다. 그분은 참된 선이시기에, 거짓 선, 위장된 선, 위선은 모두 사라집니다. 기도도, 자선도, 단식도, 모두가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이고, 여기에서 종교는 비로소 종교가 됩니다.


그런데, 종교가 참된 선이신 성부를 망각하고 외면하기 시작하면, 공동체나 사회의 현실과 무관한 개인의 기도, 복을 구하는 기도에로 흐르게 되고, 자선도 불행을 조장하는 사회구조는 보지 않고서 어려운 이들을 돕는 일회성 자선에 머물게 되며, 단식도 사회적 반성과 실천이 증발된 개인적인 보속행위로만 강조하기 십상입니다.


결국 그런 종교는 입으로는 겸손과 봉사, 희생과 형제애를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성직주의와 권위주의를 실천하게 됩니다. 또 말로는 소통과 대화를 지향하면서도, 현실에 만연한 교회의 계급적 불통구조를 직면하려 하지 않게 됩니다.


또한 성직자들은, 하느님이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자신은 하느님 백성, 가장 작고 고통 받는 이들의 발을 씻어주는 봉사자가 되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지난 가을 팽목항에서 주교님을 모시고, 많은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모여서 미사를 드리던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불어온 찬바람에 많은 신부님들이 바람을 피해서 천막 안으로 들어오셨고, 그 안에 있던 연로한 신자분들은 천막 밖으로 밀려났던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자리에서조차, 신자들과 수도자들이 성직자들에 밀려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우리 종교인들의 부정할 수 없는 일면임이 드러난 자리였습니다.


한 사회의 진실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인 종교가 이런 위선의 기도, 위선의 단식, 위선의 자선을 실천할 때, 그 사회에서 종교는 제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기성 종교와 사회가 십자가 사건의 의미를 이른바 “물타기”하면서 망각되기를 바랐듯이, 오늘날 한국에서는 기성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과 그 의미를 “물타기”하면서 사람들이 빨리 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십자가를 진 수많은 예수들 중 하나가 세월호참사의 유족들입니다. 이 십자가 사건에는 얼마 전 법원에서 진실로 밝혀진 국정원의 대통령선거 개입과 총체적 부정선거라는 초유의 위헌 행위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대통령직도 근거가 없는 것임이 명백한 진실임에도, 세월호의 희생자들이 국가의 손에 의해서 목숨을 잃었음이 분명함에도, 그 사실 앞에서 청와대와 정부를 포함한 한국의 기성 사회는 위선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거대항공사의 부사장도, 탐욕스런 대기업의 총수들도, 언제나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때마다 앞에서는 “희생자-코스프레”를 하고, 뒤에서는 서슴지 않고, 예수님을 범죄자로, 세월호 참사의 유족들을 나쁜 사람들로 조작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누구도 깨끗한 거울에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비춰보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실 회개사건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거울에 비춰볼 때 일어납니다. 참된 기도, 참된 단식, 그리고 참된 자선도 그 때 이루어집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내 얼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얼굴은 나병에 걸려 형체가 모두 일그러진 병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자신의 얼굴임을 봅니다.


그 순간, 놀랍게도 그 얼굴이 바로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십자가에서 죄인으로 처형되신 분의 얼굴임을 알아봅니다. 이것이 회개사건입니다. 진실을 외면하고 덮어버리고 왜곡시키려 할 때는, 결코 회개사건도 하느님사건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회개사건은 단순히 윤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존재적이고 실존적이며 공동체적인 사건입니다. 필경 기성화 된 종교, 시스템이 되어버린 종교는 회개사건의 윤리성만을 강조하면서,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착하게 순종만 하면 된다고 가르칠 것입니다.


불편한 진실은 종교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하느님 사건”에 물타기를 하고, 종교 스스로는 이 모든 사태에 대해 아무런 잘못도 책임도 없다고 하면서, “의인-코스프레”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과 부정의 태풍이 몰아쳐서 “대한민국호”라는 배가 침몰해가는 데도, 한가하게 2015년도의 우리교구 사목방침이 가정을 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의 하느님 백성은 헌법과 선거법이 유린되고 인권을 침해당하는 온갖 폭력 속에서 울부짖고 있는데, 종교지도자들은 신자비율, 교세증가, 성전신축과 증개축 등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상황에서 종교는 팔짱을 끼고서 자신의 위신만을 세우려고 하는 겁니까. 왜 머리에 재만 바르고서, 참회와 반성은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겁니까.


왜 침몰해가는 이 사회, 속속들이 썩어있는 현실 속에서 스스로 예수님처럼 투신하고 복음적으로 혁신되어 이 사회의 해방구가 되기를 두려워하는 겁니까. 왜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거대한 거짓과 위선에 침묵의 면죄부를 주면서 자기 안위만을 찾고 있는 겁니까.


왜 회개의 여정을 실제로는 거부하면서, 말로만 회개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재의 수요일, 그러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향한 온 삶을 건 여정을 다시 새롭게 출발하자는 날입니다. 오늘은 거울에 우리들 자신의 얼굴을 비춰봅시다.


우리 신앙의 핵심으로 초대하는 이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늘 하느님이라는 신비를 가슴에 품도록 합시다. 하느님은 높은 권좌에 머물러 있는 현존이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하느님이고 수많은 이들이 그 하느님을 쫓아갑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낮은 데로, 낮아서 어둡고, 낮아서 배척 받으며, 낮아서 죽음이 깃든 자리로 흘러내리는 살아있는 하느님이심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믿고 추구하는 생명은 바로 여기에서 태어납니다. 우리의 참회와 회개가 나 자신에게서 시작해서, 고통 받는 이들과의 연대에로 나아가고, 모두 함께 한국천주교회와 이 땅을 하느님의 현존이 가득한 생명과 평화의 자리로 만들어 갑시다.


아멘.


덧붙이는 글

임 루피노 : 작은형제회 소속으로 서울에 살고 있으며, 수도생활을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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