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16일 월요일, 비
“하느님의 이름을 이런 짓을 정당화하는데 이용하는 것은 신성모독일 뿐이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테러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답변이다. 인류를 구원한다는 종교, 현재 세계 최대의 두 종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인류 멸망을 앞당기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증오와 전쟁을 펼치고 있는 국제상황에 교황은 깊이 우려하고 있다.
보스코가 대사시절 행정을 맡은 적 있던 마리아루이사가 파리에 있다가 이번 테러를 겪으면서 “개 같은 이슬람인들”이라는 이탈리아 우익 신문(Libero)의 사설 제목에 경악하여 페이스북에 “그러면 모든 시칠리아인들은 마피아란 말이냐?”라며 일반화하고 싸잡아서 증오를 불러일으켜서는 안된다는 반론을 폈다가 엄청난 시비에 휘말리고 있었다. 보스코는 그니의 용감하고 건실한 입장을 지지하는 댓글을 보냈다.
이탈리아의 의료행정을 연구하며 볼로냐에 가 있던 문선생이 어제 귀국하여 남편 김원장님과 함께 우이동 집을 방문하였다.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거의 향수병에 걸렸다가 따님이 찾아와 마지막 한 주간을 보내고 앞당겨 귀국한 길이었단다.
부부가 함께 있을 적에 때로는 상대방이 없으면 더 편할 것도 같고 문제도 적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지만, 두 남녀가 서로 기대어 사람 人자로 살아갈 적에 늘 보람과 행복을 느낀다는 만고의 진리를 상대방의 부재시에만 새삼 체득하다니... 아무도 없는 캄캄한 집으로 돌아와서 전등을 켜고 난방도 되어 있지 않은 차디찬 방으로 들어설 적에 ‘쏴아~’ 몰려나오는 외로운 한기를 어찌 견뎌낸다는 말인가? 그래서 딸이 귀국하는 날 자기도 짐을 싸들고 떠났단다.
문섐은 이탈리아에서도 공공의료가 가장 잘 돌아가는 에밀리아-로마냐(볼로냐 지역) 일대의 의료제도를 관찰하고 방문하고 실무자들에게서 듣고서 한국의 보건복지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파악하고 온 길이니 언젠가 좋은 정부의 좋은 의료행정에 반영시킬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 두 부부는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이탈리아에서 함께 지냈던 열흘과 그 뒤에 문섐이 볼로냐와 그랄리라에서 오티나 선생이랑 보낸 얘기들을 나누면서 많이도 웃었다.
김원장님은 이번 영덕의 원전유치반대 주민투표에 도우미를 자처하여 다녀온 얘기를 들려주었다. 전직 시립병원장님의 주민투표 감시도우미는 엄청난 인재 낭비이기도 하다. 오로지 정부의 속임수와 한수원의 사기로 결정된 원전건설을 주민 90%가 반대한다는 투표를 강행한 사건이다. 그러나 경상도 영덕에서, 그 시골에서 관청의 온갖 협박 속에서, 이장과 군직원들과 한수원이 6.25때 완장 찬 사람들처럼 눈을 부라리고 협박성 현수막을 둘러치고서 주민을 감시하는데도, 주민 전부가 반대행위를 과시한 사건은 현재의 민심을 잘 반영하는 사례가 되겠다. 그래도 박근혜는 이를 묵살하고 기어코 원전건설을 감행할 것이란다.
저녁 7시에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국정화 노동개악 반대 천주교 시국미사”가 거행되었다. 제1독서처럼 이민족 일본과 야합하여 온갖 악을 저질러온 친일파들이 정체를 드러내고서 친일행위와 해방 후의 반민족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무리들을 가톨릭 신앙인들이 어떻게 척결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가난한 이들과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고민하는 자리였다. “반민족, 반민주, 반생명, 반평화... 너를 무슨 이름으로 부르랴?”는 사제단 성명서는 천주교 신자들의 의지를 결연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미사 후 광화문까지 행렬지어 가면서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시청광장을 가득 메우고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성직자 수녀 신자들의 결의가 대단해 보인다.
저 1979년 10월 26일 새벽, 한 달 만에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풀려나던 보스코! 그리고 그날 저녁 울린 한 방의 총성으로 끝장나버린 유신정권! 그 당시 최고최악의 위세를 덜치던 유신정권의 급작스런 종말을 예고하는 글을 썼던 보스코가 “개구리 뒷걸음질하다 황소 밟아 죽이는” 우스꽝스러운 사태가 35년뒤 또 일어날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