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 4. 16. 불교포커스에 쓴 글 ‘잘못 아니나, 참회하는 아난처럼 - 동국대 총동창회의 분열을 보며’(기사 보기)를 다시 재구성해 쓴 것이다. 9년 전에는 동국대 총동문회장 선임과 관련된 내용이고 이번에는 이사장 문제이지만, 두 사안의 성격이 비슷하고 해결 방법도 같다고 보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쓰기로 한 것이다. - 香山
조계종립 동국학원은 그곳에 소속된 교수·재학생·동문과 교직원이나 재단 임직원들만의 소유가 아니다. 그야말로 ‘불교(佛敎) 진흥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는 ‘천만 불자 전체의 자산’이다.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 결과적으로 불교 진흥에 기여하는 학교가 되려면, 이 점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온 나라 불자들의 소망과 희망을 담아낼 수 있으면 그들의 지원도 끄집어낼 수 있다.
학교가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면 많은 불자들이 자발적으로 학교 발전을 위해 나설 것이다. 그 책임은 누구보다도 먼저 재단 임직원·교수진·동문들에게 있다. 그러나 현실 상황은 우리의 바람과는 전혀 반대이다.
동국학원 재단이 분규에 휩싸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다른 사립학교 재단의 분규 양상과 달리, 이곳의 싸움에는 학교 운영이나 교육 철학을 둘러싼 다툼의 성격이 거의 없다. 조계종단의 정치 싸움이 연장되어 이전투구(泥田鬪狗)가 계속될 뿐이다.
재단의 중심축이 바뀐다고 해도 나아진 적이 없다. 그때까지 ‘들판(野)’ 에 있으면서 ‘권력자(與)’를 공격하던 쪽에서 중심을 장악하면, 이제는 새롭게 ‘들판’으로 쫓겨난 쪽에서 덤벼든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이 쉽게 끝나지도 않는다.
서로 “우리는 부처님 법에 따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고 말하고, “천만 불자가 내 편”이라고 우기며 싸움을 벌이지만, 그 말을 그대로 믿는 불자들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싸움의 당사자들은 ‘손해날 것이 없다’고 여긴다. 싸움을 위해서는 세속 사회의 법과 권력에 호소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니 동국학원의 싸움에 ‘부처님 가르침’은 하나도 없다. 해결하는 방법에도 ‘불법(佛法’은 없고, 세속 사회의 탈법과 권모술수가 난무할 뿐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켜본 동국대학교 재단이사회는 가끔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는 듯하다가, 다시 또 회오리 속으로 휘말리는 것이 거의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희망’이 안 보이는 곳이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 그렇지 않은가?
이번 분규는 과거와 성격이 다르다. 재단 이사회 내에서의 싸움이 아니라, 이사장 개인의 자격을 둘러싼 재단 외부의 여러 세력, 그리고 학생들의 갈등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 대표의 단식이 40일을 넘어갔다. 이제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나는 일면스님이 정말 ‘자신이 주지로 있던 절의 탱화를 훔쳤는지?’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 다만 의혹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분명한 해명을 하지 못했다는 느낌은 있다. 느낌이 그렇다고 해서, 그 의혹을 사실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을 것이고 따라서 나는 일면스님에게 그 문제로 사퇴하라고 권고하지 않는다.
그러나 설사 이 분의 말대로, ‘탱화 절도 의혹이 사실이 아니며’ 그래서 계속 ‘이사직을 수행할 뿐 아니라 이사장을 다시 맡아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할지라도, 자신이 하는 일 때문에 큰 혼란과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모든 것을 버리고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 혹시 이 ‘버리고 떠나기’에 성공한다면, 오히려 이 분은 ‘동국대학교와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그 이름이 오래도록 남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물러나기를 거부하다가는 동국대학교에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광동학원과 생명나눔실천본부의 운영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무리하게 총무원장 3선을 추진하려다 멸빈을 당했던 의현(義玄)원장을 비롯해서, 더 많이 가지려다가 모든 것을 잃고 말았던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돌아보아야 한다. ‘버리는 것이 사는 길이다.’
스님이 잘 알고 있는 내용이겠지만, 참고로 옛날이야기 하나를 해본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뒤, 제일결집(第一結集)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난다(阿難) 존자가 법을 암송하기 전에, 이 자리에 참석한 장로 스님들이 아난다 존자에게 다섯 가지 잘못을 들어 참회를 요구하는 일이 일어났다.
“첫째, 중요하지 않은 소소한 율이 무엇인지 세존께 여쭈어보지 않은 잘못, 둘째, 바느질을 하다가 세존의 옷을 밟은 잘못, 셋째, 세존께서 열반하신 뒤 여인들이 먼저 뵙게 하여 그들의 눈물로 세존의 법체(法體)를 더럽히게 한 잘못, 넷째,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물러 주시라’고 세존께 간청하지 않은 잘못, 다섯째, 여인의 출가를 세존께 간청하여 허락하시게 한 잘못이 있습니다. 이 잘못을 인정하시오.”
이런 질책을 받은 아난다 존자가 하나씩 해명을 하면서 이렇게 마무리를 한다.
“예, 그렇게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행동[惡作]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자님들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인정하겠습니다.”
남전(南傳) 『율장(律藏)』 「소품(小品)」에 전하는 이 일화를 들어 일면스님에게 한 말씀 드리고 싶다.
“설사 스님의 뜻이 순수하고 원력이 크다고 할지라도 대중이 ‘그것이 잘못이다’고 원하면 물러나는 것이 올바른 불제자의 길입니다. 아난다 존자에게서 그 모범을 잘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지 않고 있습니다. 더욱이 스님이 물러나야 한다며 학생이 수십 일 넘게 단식을 계속하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이제 진퇴를 분명히 하여야 합니다. 이사장 욕심, 재단 이사 자리 훌훌 털어 버리십시오!”
동국대 재단이사회가 하루 빨리 정상을 되찾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누가 이사장이 되든 조계종단 정치 싸움의 연장선에서 계속되는 분쟁에 휩쓸리지 말고 순수하게 학교 발전을 위한 일을 추진하여야 한다.
굳이 희망을 이야기하자면, 종단 정치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이 오로지 학교 발전을 간절히 바라고 그 원력을 실천에 옮길 능력을 갖춘 분이 이사장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