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를 바치러 갈 때 주로 가지고 다니는 책 중에 우리가 흔히 성당입구 사무실에서 구입 할 수 있는 ‘매일미사’ (주교회의 발행)가 있습니다. 주일 미사뿐만이 아니라 평일 미사에 대한 독서와 복음 그리고 그날의 말씀에 대한 ‘오늘의 묵상’ 글이 매일 실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렉시오 디비나(거룩한 독서)를 하면서 주로 매일미사 책을 활용하기 때문에 렉시오 디비나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하는 ‘묵상’을 더욱 깊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오늘의 묵상’에 대하여 올 해 2015년 1월부터 2월 까지 실려 연재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박기호 다미아노 신부님의 오늘의 묵상 글을 읽어가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그 동안 매일미사 책에서 전혀 접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차원의 신선한 묵상 글을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경 말씀에 대한 ‘사회교리적 접근 방식’의 글들 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회교리라고 일컫는 신앙의 사회적 차원에 관한 글들을 성당 안에서 공식적으로 쉽게 만나볼 수 있지는 않습니다. 기껏해야 ‘정의 평화 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정도에 그쳤던 것이 사실 입니다. 그런데 올해 1~2월에 걸쳐 연재 되었던 매일미사 책의 ‘오늘의 묵상’ 글들이 바로 그러한 사회교리적 내용들을 그날의 복음에 맞추어 해설한 형식 이었습니다.
그 중 제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1월 3일에 실린 ‘현대판 악령인 물질주의’ 를 호되게 비판한 글의 전문을 소개합니다.
◈1월 3일(토) 주님 공현 전 월요일
- 1독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습니다. (1요한 2,29~3,6)
-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이시다. (요한 1,29~34)
오늘의 묵상: 사람들은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여 지배하고 강제하는 것은 권력이고 자본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일제 식민 통치와 우리의 군부 독재 시절은 무력으로 지배한 강제의 역사였다. 세상이 반대로 바뀌어 버렸다. 이제는 내가 나를 지배한다. 특근이나 휴일 잔업을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 많이 하고 돈 많이 받겠다.’ 고 나선다. 정치 사회적인 비리나 비정한 문제들은 귀찮다며 외면하고, 협박하지 않아도 부자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세상 사람들은 문제 해결의 열쇠는 돈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를 행복의 전령이자 문제 해결사로 숭앙하는 데는 보수와 진보도 종교도 학문도 차이가 없다. 그래서 모든 정치 공약이, 모든 희망 사항이 경제고 민생밖에 없다. 자신이 이미 물신 우상의 광신도가 되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다.
돈과 정부는 어떻게 세워졌는가? 돈과 정부를 만들 때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라는 말처럼 국익으로 민복을 이루어 고루 잘 살아 보자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돈과 권력이 고통과 눈물을 만들어 내는 원죄 장치가 되고 말았다. 전쟁, 폭력, 핵무기, 원자력 발전소, 재개발, 공공 부채 등 ‘세상의 죄’를 끊임없이 낳는다. 돈의 소유욕과 권력의 지배욕은 자신을 지키려고 다른 이들의 행복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는 생리 구조를 가졌으니 어리석은 물건들이다.
세례자 요한은 진정한 문제 해결은 하느님의 사랑을 복구하는 십자가의 헌신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외친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을 정화하시고 죄를 소멸시키시고자 제물로 어린양이나 송아지가 아니라 당신 자신을 직접 바치셨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구원자시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사회교리적 내용의 글을 언제 단 한번이라도 매일미사 책에서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그런데 아쉽게도 위와 같은 묵상 글들이 2개월간 틈틈히 지속 되다가 3월부터는 갑자기 다른 집필진의 글로 바뀌었습니다.
바뀐 집필진의 묵상 글 또한 훌륭하고 영적 신심이 깊은 글들이지만, 아쉬운 점은 그 전의 2개월 동안 간간히 언급 되었던 사회교리적 묵상 글들은 확연히 줄어 들었다는 점 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한번 묵상 글을 맡은 집필자가 보편적으로 1년을 연재 하는데 비해 박기호 다미아노 신부님의 묵상 글은 단 2개월만에 끝났다는 것도 안타까웠습니다.
더구나 매일미사 책 전체의 편집인이신 강우일 전 주교회의 의장님에서 김희중 주교회의 의장님으로 바뀌신 시점이 2월 달이라서 혹시 글의 내용에 대한 전체적 방향설정에 인위적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하여 본인이 매일미사 편집부 측에 직접 문의한 결과, 그러한 일은 없었으며 2개월간만 연재한 것도 박기호 신부님 ‘본인’의 계획이었으며, 매일미사 책의 편집인이 바뀐 것과 오늘의 묵상 글 집필자가 바뀐 시점이 거의 일치하는 것 또한 ‘우연의 일치’일 뿐 다른 어떠한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저의 과대한 추측도 문제이지만 세상만사 ‘우연’의 결과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각자의 상상에 맡기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