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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오늘 자비의 희년이 시작된다
  • 김근수 편집장
  • 등록 2015-12-08 11: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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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8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폐막된지 50주년 되는 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비의 희년 시작을 12월 8일 선포한다. 자비의 희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지난 2000년 우리는 희년을 지냈다. 25년 주기로 희년을 맞는 가톨릭교회의 관례를 따른다면 다음 희년은 2025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관례를 깨고 10년을 앞당겨 올해 희년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만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이어갈 절박함이 크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교회에서 많이 사라졌다는 반증이다.


희년은 구약에서 누구에게 선포되었는가. 가난한 사람들, 노예와 빚진 사람들에게 자비의 희년이 선포되었다. 희년은 하느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 선택하시는 행동이었다. 희년과 자비는 오직 가난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일이다.


그렇다면 희년에는 자비보다 정의가 더 어울리는 단어 아닐까. 정의와 자비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희년은 부자에게 정의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뜻한다. 강자에게 정의를 요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희년의 핵심이다.


자비와 정의는 분리될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런데, 어느덧 그리스도교에서 자비와 정의는 마치 모순인 것처럼 상극인 것처럼 오해된 면도 있다. 자비를 강조하는 사람은 충실한 신자로 여겨지는데, 정의를 강조하는 신자는 종북에 가까운 의혹마저 받곤 한다. 아주 잘못된 풍조겠다.


자비를 강조하면서 정의를 물타기하는 버릇은 나쁘다. 정의 없이 자비 없다. 부자에 대한 정의의 요구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자비와 직결된다. 정의를 모르는 자는 자비를 언급할 수 없다. 


오늘 맞는 자비의 희년에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1.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계승한다. 

2. 자비의 희년은 정의의 희년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를 현대 세계에 개방한 역사적 사건이다. 시대의 질문과 요청에 교회는 적극 응답한다는 것이다. 그 정신이 어느새 많이 잊혀졌다.


한국 가톨릭 신자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제대로 배웠는가. 성직자들은 신자들에게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제대로 교육했는가. 2000년 지난 신약성서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판국에 겨우 50년 지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가지고 그러냐고 말할 셈인가. 성서를 가르치지 않아도 뻔뻔하게 잘 사는데, 그까짓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육이 별거냐고 반박할 셈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기억하고 정의를 강조하는 것이 오늘 시작하는 희년의 주제겠다. 이제라도 성직자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신자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기를 빈다. 성서교육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성서와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은 도서관이나 박물관 구석에 보관된 고문헌이 아니다. 오늘 살아 숨 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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