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3일 목요일, 맑음
성무일도 아침기도를 하면서 시편 86편을 읽는데 보스코가 “주께서 민족들을 적발하시며...”라는 구절을 읊다가 기도를 하다 말고 ‘적발’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내게 묻는다. “찾아낸다는 말 아냐?”라고 반문하자 “‘적발(摘發)’인지 ‘적발(籍拔)’인지 모르겠는데, 옛날에 과거(科擧)에 합격한 사람들을 조정이 호적을 조사해서 집안에 역적이나 적서(嫡庶)의 사유가 있는지 뒤지는 일종의 ‘신원조회’였어. 그 적발로 태어난 위대한 시인이 하나 있어. 과거시험에 ‘홍경래난(洪景來亂)’이 주제로 나오자 적군에게 항복한 ‘김익순’을 성토하는 글을 써서 장원급제했데. 그런데 어머니가 김익순이 자기 친할아버지였다고 일러주자 자기 글이 부끄러워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다 죽은 시인 김싯갓이 바로 그 사람이야....”
우린 기도를 드리다가도 문제가 나오면 사전을 찾고 책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곤 한다. 요즘 읽는 미사복음인 ‘요한복음’이 날마다 “‘빵’ ‘빵’ ‘빵’”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산다.”는 말씀이 나온다. 그런데 최후만찬 석상에는 요한복음만 ‘성체건립(聖體建立)’을 싹 빼놓았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이 그 대목에 대신 나오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 보스코의 강조점이다.
공관복음서의 건립성체 대목에서도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하여라.”라는 구절이 ‘공동번역’ 성서에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라고 잘못 번역되었다고 40여년간 호소해온 것이 보스코였다. 그의 발언과 강연을 주교단이 묵살해왔지만 새로 번역된 가톨릭판 ‘성경’에서는 그 구절이 바로잡혔다.
미사라는 예식을 거행하고 보약 먹듯이 영성체 하는 일과, 최후만찬이 끝나자마자 체포되고 단 하루만에 사형당하고 매장당하는 예수님의 운명에 참여하는 일, 스스로 빵이 되어 남에게 먹히고 남의 발을 씻겨주는 봉사하는 일은 전혀 별개로 보인다. 보스코가 마치 ‘전도사’처럼 강연하고 다니는 ‘사회교리’를 가톨릭 신자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까닭이 성찬의 성사를 오해하는데 있다는 그의 주장이 그럴 듯하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아침 일찍 미루씨가 축하전화를 하고서는 전화기에 대고 축하노래까지 불러줬다. ‘페친’과 ‘카친’들한테서도 많은 축하를 받았다. 지난 17일에 장성에서 ‘성삼의 딸들’이 거행한, 수녀원 건축의 기공식에 못 간 탓으로 오늘 내 생일턱을 그 수녀님들에게 내기로 하고서 장성으로 갔다. 수녀원 가까운 한우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그 자리에 못 온 자매를 위해서 고기 한 덩어리를 아껴서 싸들고 가는 모습에서 수녀님들이 얼마나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지 보기에 흐뭇했다.
돌아오는 길에 포클레인으로 터를 고르는 병풍산 밑의 수녀원 공사장에 들렀는데 공사하던 이들이 일꾼들의 간식을 싸들고 찾아오는 수녀님들을 반기는 환한 얼굴을 보고 성심성의껏 일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느님의 손바닥에 자기네 작은 손들을 살며시 올려놓고 다소곳이 그 인도하심을 바라는 수녀님들의 모습에서 참 신앙을 배운다.
장성에서 돌아오는 길, 남원 ‘금풍제’라는 저수지에 들러 수녀님들이 저녁으로 싸주신 샌드위치를 먹는데 식전기도로 “이렇게 잔소리를 열심히 하는 여자를 아내로 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로는 멍청해도 저를 가득히 채워주는 아내를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면서 웃고 있는 보스코의 모습이 저녁노을보다 더 아름답다.
남편이 끓여주는 ‘3분미역국’은 못 먹었지만, 작은아들이 트위트로 주문한 케이크를 남원에서 찾아들고 와서 밤늦게 진이네랑 함께 자르고 포도주로 건배를 하였다. 뒤이어 두 아들과 카톡밴드로 수다를 떨고, 며느리의 축하전화를 받고, 손주들의 얼굴을 영상으로 보니 오늘도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