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고 기억하는 행사를 하던 중 어느 정체불명의 젊은이가 태극기에 불을 붙인 모양이다. 이 소식을 들은 새누리 당의 김진태 의원은 그 젊은이의 행동을 국가를 부정하는 행위로 규정하였다고 한다. 국가를 표상하는 물건을 손상했으니 국가에 위해를 가했다는 논리다.
그 소식을 뉴스로 보면서 나는 2013년 5월 초순,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었던 윤창중이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를 수행하던 중, 교포 인턴 사원을 호텔방에서 성추행하고, 정신 차려 보니 심상치 않자 겁을 집어먹고 공무고 뭐고 허겁지겁 도망을 쳐서 귀국 해버린 사건을 떠 올렸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정치사를 털어도 그와 같은 일이 또 있을까 싶은 사건이었다. 정치인 개인의 추문이야 심심찮게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가 간의 공적인 외교 중에 벌어진 그와 같은 초유의 일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럴 리 없다며 거짓말은 하지만 미국에겐 개나 다름없는 현재 한국 정권의 신세를 감안하면 윤창중의 국격을 손상한 죄는 삼족을 멸해도 씻기지 않을 죄다.
당시 청와대는 ‘나라의 품위를 손상시킨 죄’를 물어 윤창중을 해임시켰지만 주변에 길들여 풀어 놓은 극우수구세력의 개들은 일제히 “윤창중 개인의 실수이므로 ‘국격-나라의 체신’에 연결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며 대신 거품을 물어 주었다. 불과 딱 2년 전 일이다.
사실은 이 불길한 정권이 부정(선거로)으로 나라를 채간 그 순간이래로 작금의 세월호 참사에까지 권력과 재력을 쥔 이들을 동원해 부도덕함과 기고만장으로 무장시켜 국격을 마구 손상시키고 있는 현상을 매일 보고 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돈으로 농락하던 김진태는 마침 요즘 선거의 시절에 태극기를 손상하는 일이 곧 국가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바람을 잡는다.
품위. 그렇다면 교회의 품위는 어떠한가? 나라의 품위에 교회는 어떤 책임이 있을까? 교회는 가르침과 실행의 일치, 처신의 엄정함과 겸손함으로 국가와 국민의 품격를 자극하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최근 몇 가지 우리 교회의 행위를 보면서 가야할 길이 참 멀다는 생각을 한다.
2010년 주교회의는 춘계총회를 마치면서 당시 정부가 추진하고 있었던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성명서를 한국주교단의 이름으로 채택한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서울대교구의 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께서는 당신 명의가 소속해 있는 한국주교단의 성명서를 결정적으로 뒤엎는 내용의 인터뷰를 어느 한 종이신문에 했다.
이를 보면서 내 머리 속에 첫 번째로 날아 와 든 것은 그 인터뷰의 내용보다는 “아, 앞으로 그 교구장께서는 당신의 신부들과 신자들에게 어떤 순종과 겸손을 가르치고 요구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충격이었다. 교구장 스스로 자신이 속해 있는 주교단의 의사에 순종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음의 본을 보이는데 그 교구장의 교도권이라는 것이 교구민과 신부들에게 먹히기나 할까?
“나는 입이 비뚤어 비록 ‘바담 풍’이라고 밖에는 발음 할 수 없지만 너는 ‘바람 풍’이라고 해야 하느니라”며 가르치는 어리석은 훈장 이야기나, 옆으로 밖에는 움직일 수 없는 게가 제 새끼만이라도 바로 걷기를 원하는 어미 게의 이야기는 우화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교회의 품위를 추락시키는 짓은 죄인이 아니라 거룩함을 쥐고 있는 이가 저지른다는 것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때의 문상. 평신도들과 수도자들과 국민들은 몇 시간을 줄을 서 기다려 겨우 몇 초간 추기경의 얼굴을 뵐 수 있었던 상황에서 줄을 뚝 가로지르며 (어떤 이는 뒷짐을 지고) 나타난 권력자와 재력가의 공인된 새치기는 교회의 세심한 배려라고 봐야 할까?
권력들과 재력들에게 “오지 않아도 되나 부득이 오려거든 안주머니에 아무 것도 넣어 올 생각 말고 줄을 서서 기다리라”고 했다면 참으로 김수환 추기경을 영원한 안식에 모시면서 우리 교회는 한 층 더 깊어진 품위와 권위를 가지고 국가에게도 품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최근의 핵에너지 문제와 관련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의 성명서 파동-그야말로 파동이지-이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일부 교회의 리더십이 보여 주었던 아쉬움은 쓰려면 손끝이 감당할 수 없이 아리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문과 세월호 참사를 대하는 그 분의 태도. 우리를 방문해 주시고 보여주었던 교종의 행동과 말씀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로서의, 교회가 지녀야할 참된 품위를 본다.
그 품위는 많은 공부를 해서야 얻을 수 있는 것도, 유력가들을 곁에 친구로 두어서 얻어진 것도, 정치적 수단을 발휘해 오른 소위 ‘좌’의 직무가 보장해 주는 것도, 가식적으로 잠시 동안 노력을 쏟아 보여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품위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의 뿌리에 닿아 있는 어떤 본령이 진정성의 옷을 입고 발화된 상태일 것이다. 비록 종교적으로 거룩했고, 기도와 가르침의 실행에 있어서 남에게 뒤지지 않았던 당대의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과 사제들, 예수님에게 회칠한 무덤에나 비유되고 조롱을 받았던 그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느님 앞에 내 놓으려 내내 두 손안에 꼭 쥐고 있었던 그 두 닢에 남아있었을 가난한 과부의 온기. 교회의 품위는 그런 진정성과 작음에서 보여 지고 지켜지는 어떤 것이리라고 생각해 본다. 終.
석일웅 : 작은형제회 수사. 생태영성이란 말이 멋있어 보여 아직 산만한 덩치의 철없는 꿈을 꾸는 수도자이다. 작은 것에 삐지고 받는 상처를 맛있는 것 먹는 것으로 푼다. 나이를 핑계 대면서 경당 보다는 휴게실을 더 궁금해 하고 성경보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더 잘 듣는다.